· 노란 머리에 귀 뚫고 입사, <무한도전> 타고 질주

'예능이 제대로 대접받는 시대' 주도

                                                                ▲시상식에 선 김태호 피디ⓒ mbc 제공


김태호 프로듀서(35)는 MBC의 간판급 신세대 PD다.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을 통해 ‘예능이 제대로 대접받는’ 시대를 주도하고 있는, 방송가의 ‘뉴 웨이브(New Wave)’다. 끼와 개성, 감각이 잘 조화된 제작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일터’에서 그를 지켜본 선후배들은 무엇보다 열정과 성실성이 돋보이는 연출자라고 칭찬한다.

  
그에겐 최신 트렌드를 잡아내는 비상한 재주가 있다.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맴돌다 사라지기 십상인 소재들을 적기에 에피소드로 채택하고, 시청자들이 무릎을 치고 포복절도할 자막을 넣어 가공해내는 재능을 발휘한다.
‘PD는 프로그램으로만 말한다’는 방송사의 오랜 속설은 그에게 해당되지 않는다. 피어싱(귀 뚫기), 난해한 헤어스타일, 개성 만점 의상이 그를 말해준다. 그리고 자막을 통해 시청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한다. 지난 2007년 연말 ‘MBC 방송연예대상 시상식’에서는 그의 튀는 의상과 인사말이 뜨거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시청자들을 자극한다. 시청자들은 그의 소재 선택이나 구성 방식, 제작 방법에 대해 인터넷 게시판이 후끈 달아오를 정도로 적극적인 의견을 낸다. 칭찬도 많지만 게시판이 비난으로 도배될 때도 있다. 그러나 그는 모든 논란을 팬들의 관심으로 이해하고, 프로그램 추진의 에너지로 승화시킬 줄 아는 영리한 피디다.

김 PD는 2002년 공채를 통해 MBC 예능PD로 입사했다. <논스톱 4>, <코미디 하우스>의 조연출을 거쳐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상상 원정대’, ‘라이브 쿠킹쇼! 미스터 요리왕’, ‘푸드 스포츠, 미스터 요리왕’ 등을 연출했다. 또 2005년 10월부터 <무한도전>의 전신인 <강력추천 토요일-무모한 도전>과 <강력추천 토요일-무리한 도전>, <강력추천 토요일 무한도전 - 퀴즈의 달인> 등을 제작했다.

지금 하는 <무한도전>의 지휘봉은 2006년부터 잡았다. 선배들이 ‘그간 고생했는데, 앞으로 어떤 프로그램을 맡고 싶나’하고 물었을 때 과감하게 ‘개그맨 유재석씨와 같이 하고 싶다’고 했더니 이뤄졌다고 한다. 


                                                           ▲무한도전 팀 ⓒ mbc 제공
 

그는 <무한도전>에서 유재석, 박명수, 노홍철 등 고정 출연자들의 캐릭터를 절묘하게 끌어내고, 강화시켰다. 그리고 그들과의 ‘찰떡 소통’을 이뤄내며 ‘봅슬레이 국가대표 선발전’, ‘댄스 스포츠’, ‘벼농사 특집’, ‘좀비특집-28년 후’, ‘여드름 브레이크’, ‘식객’, ‘돌아이 콘테스트’ 등 독특한 에피소드를 히트시켰다.
독특하고 유머러스한 자막은 팬들의 열광을 이끌어내는 양념 구실을 톡톡히 했다. <무한도전>은 출연진이 모델로 나온 달력이 순식간에 동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이어갔다.

<무한도전>의 영광은 최근 5년간의 ‘상복’으로 확인된다. 2006년부터 연속 3년간 ‘MBC 방송연예대상-네티즌이 뽑은 올해 최고의 프로그램상’을 받았다. 2007년에는 ‘MBC 프로그램 제작상-공로상’과 ‘최우수 프로그램상’, 2008년에는 ‘제20회 한국PD대상 TV예능부문 작품상’과 ‘제44회 백상예술대상 TV예능부문 작품상’, ‘MBC 방송연예대상-PD들이 뽑은 최고의 프로그램상’을 거머쥐었다.
2009년에는 ‘제36회 한국방송대상-연예오락부문 프로그램상’과 ‘TV연출상’, 2010년에는 ‘제22회 한국PD대상-TV예능부문 작품상’을 받았다. 이젠 <무한도전>의 ‘무한질주’가 과연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가 방송가의 관심사다.


안방에 죽치고 사는  ‘TV 키드’

김PD는 충남 보령시 대천읍에서 태어나 고려대 신문방송학과를 다녔다. 어린 시절 성격이 내성적이었던 데다, 놀 거리가 별로 없어 방안에서 TV 보기를 즐겼다고 한다. 인근에 바다가 있었지만 부모님이 “점쟁이가 물가에 가면 빠져 죽을 팔자라 했다”며 말리는 바람에 얼씬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더욱더 안방에 죽치고 사는 ‘TV 키드’로 변해갔다. 그러다가 문득 TV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소년의 마음엔 장차 아카데미상이나 그래미상을 받을 만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솟구쳤다.

그는 대입 수학능력 시험이 끝나자마자 당시 유행했던 마이클 잭슨 헤어스타일로 머리를  바꿨다. 그리고 대학 생활이 무르익을 무렵 본격적으로 방송사 입사 준비를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시사상식을 익히는 속도도 더디고, 글쓰기 실력도 친구들만큼 늘지 않았다. 종합일간지 한 부를 읽는데 무려 6시간이나 걸려, 혹시 스스로가 ‘난독증’이 아닌가 의심할 정도였다고 한다.

“종합교양과 논작문 실력은 친구들이 더 출중했기에 저는 현재의 화두가 뭔가, 트렌드가 무엇인가에 집중했습니다. 그리고 저만의 색깔과 감각을 갖추고 싶었죠. 대학시절 외모 때문에 ‘동남아 출신 교환학생’이라고 불렸는데, 그것도 개성으로 승화시켜야겠다고 결심했죠. 이런 모든 것들이 언젠가 경쟁력이 될 수도 있겠다 생각한 것이죠.”


대학생 김태호는 그래서 광고동아리에 들어갔다. 짧은 시간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훈련을 하기 위해서다. 광고는 대략 15~30초 안에 오디오나 비디오 이미지를 통해 소비자를 사로잡아야 한다. 그러니 15초마다 메시지나 웃음이 쏟아지게 해야 하는 예능 프로그램의 구성 원리를 미리 익힌 셈이다. 드라마, 영화, 연극, 뮤지컬도 닥치는 대로 봤다. 조금씩 작품에 대한 감각과 자신감이 생겼다.

 

                                                         ▲무한도전 팀 ⓒ mbc 제공


그의 배낭형 가방은 판도라의 상자?

졸업을 앞두고 언론사 시험 공고가 나올 때마다 도전했다. 동아일보 인턴기자에 합격했다는 전화가 왔지만 ‘방송쟁이’가 되려는 꿈을 버릴 수 없어 포기했다. SBS는 마감 시간을 놓치는 바람에 원서 접수조차 못했고 제일기획은 최종 면접까지 올라갔으나 재학증명서를 기한 내에 제출하지 않아 탈락했다.

결국 MBC와 인연이 닿을 모양이었다. MBC는 그해 면접 때 예년과 달리 ‘색깔 있는 연출자’를 찾는데 집중했다. 노란 머리에 피어싱을 하고 온 그에게 면접위원들은 ‘옷을 어디서 샀느냐’는 질문부터 던졌다. 외모, 옷차림, 발상 모두 자기만의 색깔로 완벽하게 무장한 그는 ‘준비된 수험생’이었다. 합격이었다.

 
입사 후 그는 10대부터 30대까지, ‘첨단 세대’와 소통하는 데 능력을 발휘했고, 성공했다.  그래서 언제나 그가 메고 다니는 배낭형 가방을 궁금해 하는 동료들이 많았다. 뭔가 기발한 것들이 가득 들어있는 ‘판도라의 상자’가 아닐까 하는 얘기도 돌았다.

“사실은 몇 권의 책과 노트북 컴퓨터가 다죠. 노트북은 최신 트렌드와 인터넷의 화젯거리를 살피는 데 씁니다. 프로그램 소재는 일상생활에서 찾아요. 창의적 생각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굳이 갖지 않고 쉽게 번뜩 떠오르는 것들을 영감으로 여기죠.
서점에 자주 가서 닥치는 대로 책을 봅니다. 책 한권을 손에 쥐면 끝까지 다 읽지 않고 중간정도 읽다가 새 책을 보는 경우가 많아요. 영화를 보거나 여행 중에 신화의 인물이나 배경을 접하게 되면 <그리스 로마신화>를 다시 찾아 연계성을 따져보는 식이예요.”


그는 집에 와서도 일을 한다고 아내가 핀잔을 줄 정도로 ‘일 중독’ 증상을 보인다. 그가 추구하는 작품 세계는 ‘재미’와 ‘웃음’이 요체이지만 그 속에도 시청자들이 같이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를 던졌으면 하는 계산이 깔려 있다. 그러나 어려운 사람들이 자신의 아픔과 상처를 드러낸 대가로 시혜를 얻는 방식의 ‘공익 버라이어티’에는 부담을 느낀다고 말한다.

<무한도전> 다음으로 그가 보여줄 작품은 어떤 것일까? 자만하지 않고, 멈추지 않고, 언제나 ‘튀는’ 그이기에, 그의 다음 행보가 벌써 궁금해진다.


김정섭 /성신여대 방송영상저널리즘스쿨 원장/前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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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디어로그 칸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