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국정농단을 목도한 시민들이 촛불을 들었던 의미를 제대로 깨닫지 못한 정치권들은 지난 2년간 각자의 이해관계만을 앞세우며 대립과 갈등을 지속했다. 촛불정부를 내세운 현 정부도 촛불이 원했던 새로운 대한민국 건설을 힘차게 추진하지 못해 역풍을 맞을 수도 있는 상황에 처했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와 정치권이 우리 사회가 당면한 과제를 당리당략보다는 진지하게 논의하고 슬기롭게 헤쳐 나갈 틀로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를 운영하기로 하고 첫 회의를 열었다는 점은 환영할 만하다.
그런데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해결해야 할 과제에 ‘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이 민주주의를 위해 중요하다는 데 공감하고, 방송법 개정안을 본격적으로 논의한다’는 대목이 있기 때문이다. 문장의 전반부가 담고 있는 가치는 흠잡을 데 없다. 하지만 논의의 주체가 누구여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상설협의체에서만 논의할 경우 방송법이 정략적 야합의 결과물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의제와 달리 방송 독립성은 정치권의 합의에만 맡겨 놓을 수 없는 문제다. 방송의 비판·감시 기능은 정치권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고 정치권은 그런 방송을 자신들의 영향력 아래 두고 싶은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 국회에는 이재정 의원이나 추혜선 의원이 정치권 영향력을 배제할 수 있는 방안을 고려해 대표 발의한 방송법안이 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은 민주당이 당론으로 채택했던 박홍근 의원이 대표 발의한 방송법안을 중심으로 방송법을 개정하자고 주장해왔다. 이 법안은 민주당이 박근혜 정부 시절 방송장악이라는 최악의 상태를 벗어나고자 ‘차악’으로 선택했던 것이다. 이 법안에 따르면 특별다수제 결정 방식으로 정부·여당 추천 이사들이 사장을 일방적으로 선임하지 못하도록 했지만, 여야 정치권이 전체 공영방송 이사를 추천하도록 되어 있다. 이 법안은 비록 정부·여당이 일방적으로 공영방송을 장악할 가능성은 줄였다 하더라도, 정치권이 추천한 이사들로 구성된 이사회가 공영방송을 정치권의 놀이터로 전락시킬 위험성을 안고 있다. 상설협의체가 그들의 이익을 적절히 분배하는 구조를 가진 방송법안(기득권)을 포기하고, 방송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새로운 방송법 개정안을 고민할 수 있을까?
그러던 와중에 방송통신위원회가 지상파의 중간광고 허용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중간광고 도입이 아니라 부활’이라며 합리화하려는 방통위 상임위원의 말장난을 받아들이더라도 지금의 시청자들에게는 없던 중간광고를 봐야 하는 불편함이 새롭게 생기는 건 분명하다.
광고 방식이 프로그램의 내용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연구한 결과들도 있지만 이를 두고 논쟁을 벌이기에는 이 지면이 짧다. 최소한 불편해지는 시청자들에게 도입 필요성을 해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다른 매체보다 공공성을 더 담보해야 할 책임을 부여받은 지상파의 어려운 현실을 고려하면 공공성 실현에 필요한 재원 확보를 위해 중간광고를 고민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지상파의 광고 수입이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종편을 도입해서 광고시장을 교란했고, 공영방송의 공공성은 무시하고 시장 논리에 따라 유료 방송 중심의 정책을 펼쳐 온 당국에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을까? 아니 정책 실패의 책임을 물어 징계하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정책 실패를 교훈으로 삼아 이제는 공공성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실현할 종합적인 방송정책과 이를 담보할 방송법 개정을 논의해야만 한다. 정말 지상파는 중간광고를 도입해주면 앞으로 최소 10년이라도 공공성 구현에 필요한 재원 문제를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아도 될까? 중간광고 도입 찬성 여부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방송이 안고 있는 과제들을 땜질식으로 처방하는 게 아니라 근본적 대책을 세울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근 가짜뉴스가 세인의 주목을 받았다. 언론들이 가짜뉴스 만연을 염려하고, 대책들을 언급했다. 정부는 피해를 줄이기 위해 강력한 가짜뉴스 제재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가짜뉴스를 막을 절대적인 묘안이 있을 리는 없지만 가짜뉴스를 제재하는 대증요법보다는 우리 사회가 단 몇 개라도 신뢰할 만한 언론을 갖는 게 더 궁극적인 해법이라고 생각한다. 신뢰할 만한 언론 중 하나가 바로 장악되지 않은, 독립적인 공영방송이다. 최근 권력과 유착된 사장을 물러나게 하고 구성원과 시민들의 지지를 받은 사장을 맞이한 양대 공영방송의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의 질적 변화는 그 가능성을 보여줬다. 단지 지난 정권 당시 공영방송에 염증을 느끼고 떠난 시청자들이 쉽사리 돌아오지 않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독립성 확보를 위한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개혁, 공공성 실현에 필요한 재원 마련, 지식과 정보의 중심을 잡아줄 공영 언론의 신뢰성 강화 등은 정치권이 주도해서 이끌어낼 졸속적인 대증요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방송 관련 이해관계자, 학계 그리고 시민사회 등이 모여 사회적 대타협을 할 수 있는 논의 기구가 필요함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자 한다.
<김서중 |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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