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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미디어 세상]공영방송 장악 방지가 목표라면

국민을 대신해 국가 주요 대사를 논의해야 하는 국회는 요즘 휴업 중이다. 자유한국당 등 일부 야당이 방송법 개정 등을 요구하며 회의 개최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은 2016년 더불어민주당이 당론으로 발의한 방송법 개정안을 처리하자고 주장한다. 정권의 방송장악을 막기 위해서라는 명분이다. 그리고 오히려 민주당은 당론으로 정했던 개정안이 있음에도 일부 의원들이 새로운 개정안을 발의하고 당론을 바꾸는 모양새다. 얼핏 보기에 형식논리로만 보면 권력을 잡은 민주당이 태도를 돌변한 것처럼 보인다. 어째 이런 일이 생겼을까?

 

하지만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겉보기와 다르다.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이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공영방송을 장악하여 왜곡보도를 일삼았고, 자율성을 빼앗긴 공영방송 구성원들이 파업으로 저항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들은 저항 과정에서 해고되거나 징계 받고, 본업을 박탈당하는 등의 고난을 치렀다. 권력을 잡은 정권이 욕심을 부리면, 방송법을 악용하여 공영방송의 사장을 맘대로 임명하는 것이 가능한 현행 제도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 당시 민주당이 방송법 개정안을 내놓은 이유다. 공영방송 이사를 7 대 6의 구조로 선임하고, 어느 한쪽이 일방통행하지 못하도록 이사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사장을 선임하거나 추천할 수 있도록 하자는 내용이다.

 

눈치 빠른 사람은 즉각 파악할 수 있겠지만 어느 일방이 사장을 마음대로 뽑을 수는 없더라도 7인의 이사를 확보한 여권이 이사회 결정을 여전히 좌우할 수 있는 방안이다. 더군다나 포기할 수 없는 야권 이사 6인과 여권 7인이 이사회에서 정치권의 대리전을 펼칠 가능성을 더욱 높이는 방안이다. 지금 비록 정치권이 공영방송 이사 선임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측면이 있지만, 방송법 자체는 정치권이 아닌 방송통신위원회가 이사를 임명하거나 추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방송법 개정안은 역으로 정치권이 직접 이사를 임명하고 그 이사들이 사장을 선임하도록 하자는 뜻이니 반발이 없을 수 없다. 시민·언론단체나 학계에서는 당연히 비판이 나왔다. 민주당도 이 방안이 ‘차악’일 수도 있지만, 당시 정부·여당이 사장을 일방적으로 임명해 방송을 장악한 최악의 상황만은 벗어나보자는 취지였다고 해명했다. 더 좋은 개정안이 있어도 당시 방송을 장악한 새누리당이 받을 리 만무하다는 현실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다. 새누리당은 당시 이런 안조차도 받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니 민주당 안으로 방송법을 개정하자는 것이다.

 

정치권이 공영방송을 좌우할 수도 있는 차악의 방송법 개정안을 그대로 처리하는 게 맞을까, 아니면 방송장악의 가능성을 현저히 낮춘 새 방송법을 고민하는 게 맞을까? 공영방송은 정부나 사적 자본이 아닌 민주주의의 주권자인 시민의 관점에서 공익적 가치를 실현해야 하는 존재다. 따라서 권력 지향의 속성을 가진 정치권의 영향력을 최대로 줄이는 방향으로 방송법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물론 현행 방송법 체계에서도 공영방송 정상화 이후 MBC나 KBS에서 정치권의 입김을 배제하고 시민이나 구성원들이 선호하는 사장을 선출했다. 권력이 개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KBS에서는 사장 선출에 시청자인 시민의 의견을 일부이지만 직접 반영했다.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해 무작위로 모집한 시민 140여명이 시민자문단 이름으로 사장 후보들의 정책 발표도 듣고 질의응답 과정을 거쳐 평가한 결과를 선출에 반영했다. 지금 민주당의 새로운 안은 이런 시민자문단을 확장한 시민 ‘사장추천위원회’의 평가 결과만으로 사장을 뽑게 하자는 것이다.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위해 사장 선출 과정에서 정치권의 영향력을 완전히 배제하고, 실질적 주인인 시민에게 그 권한을 돌려주자는 의도다. 권력의 공영방송 장악을 막자는 게 자유한국당이나 야당들의 진정한 의도라면, 민주당이 당론을 차버렸다는 형식적 논리로 차악의 방송법안을 통과시키려 하지 말고 더 좋은 안을 깊이 있게 고민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다.

 

사장 선출 방법만이 아니다. 추혜선 의원은 이사 선임에서도 ‘이사 추천 국민위원회’를 이용하자는 방송법안을 제출했다. 국회 개정안이 아니어도 공영방송 이사를 선임하면서 정치권의 입김을 배제하고 방송통신위원회가 이사를 임명할 때 일정 수는 구성원을 대표하거나 직업적 전문성을 대표하는 소위 중립(독립) 이사를 포함하자는 시민단체 안도 나와 있다. 또 방송통신위원회는 정치권이 이사를 임명하면 방송통신위원회가 독립 이사를, 방송통신위원회가 임명하면 역으로 정치권이 독립 이사를 추천하는 완충형 이사 구성을 제안하기도 했다. 어떤 안이든 자유한국당이 이제 와서 태도를 바꿔 통과시키자는 기존 안보다는 진일보한 것이다. 살아 있는 권력이 기득권을 포기하겠다는데도 자유한국당이 지금과 같은 고집을 부리면, 이사 몇 명의 야당 몫을 확보하려는 기득권 옹호 행태로 비칠 것이다.

 

<김서중 |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