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빨리 변하고 혼돈스러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도 변화하고 학습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자신을 반복해서 재발명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뿐 아니라 미디어도 그렇다. 그런데 이것으로는 부족하다. 언론사가 있어 독자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독자가 있어 언론이 생겼다는 것으로부터 변화를 도모하는 것이다. 특별한 독자의 삶, 그것이 미디어다.
아주 커다란 공간을 차지하는 그놈을 펼쳐드는 데에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애정하는, 돈을 내고 산 물건도 아닌 녀석을 말이다. 여기서 본 것이 저기서 본 것 같기도 하다. 종이신문을 보지 않고 모바일 플랫폼에서 흘려본다. 본방을 사수하지 않고 몰아본다. 환경이 다르고 독자가 다른 사람이다. 누구나 똑같이 보는 범용 콘텐츠가 아니라 ‘오늘이라는 시간, 개인의 다양한 경험, 선별된 주관’에 다가가는 새로운 접점이 필요하다. 언론사가 말하는 방식은 알겠는데 내 삶은 아닌 것 같은 느낌에 대한 대답이 혁신이다.
차단된 공간을 선호하던 나는 사람들이 내는 약간의 소음과 아델의 ‘헬로’가 흐르는 곳을 찾아 글을 쓰고 있다. 큰길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들어오는 용인의 아파트촌 커피집은 주말에도 7시에 문을 열고 3층까지 사람이 차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1층은 금세 동네 사람들의 수다 공간이 되지만 2층 3층은 맥북을 펴놓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커피 한 잔을 누리는 사람, 책을 펼치고 망중한을 느끼는 사람,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즐기는 사람 등으로 가득하다. 개점시간 자동차에서 내린, 편한 옷차림에 은퇴한 느낌을 주는 두 팀의 노부부는 텀블러에 커피를 가득 채운 후 나들이를 떠난다. 캐나다 밴쿠버의 챕터스 서점에도, 후쿠오카의 쓰타야 서점에도 스타벅스가 들어와 있다. 이제 우리 서점들도 예외가 아니다. 도시 계획자들은 공동화된 지역에 제일 먼저 들어가야 하는 것은 ‘스타벅스’라고 말하기도 한다. 서점과 커피가 만나 콘텐츠를 삶으로 연결한다.
스타벅스는 이제 맥주와 와인을 판다. 온라인 블랙홀 아마존은 시애틀 대학가에 오프라인 서점을 열어 사람들과 가까워졌다. 그 서점을 가로질러 건너편에 있는 스타벅스에서는 저녁 무렵 대학생 넷이 와인 두 잔과 맥주 두 잔을 선 채로 마시더니 수다를 떨다 사라져 갔다. 리모델링을 통해 엉성하게 바뀐 교보문고가 가장 잘한 일은 ‘오디오’ 코너를 크고 넓고 다양하게 배치한 것이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이 등장하고 음악과 더 가까워졌으며, 내 삶과 공간에서 오디오의 지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삶과 스타일의 변화다. 삶과 스타일이 변하면 미디어 채널도 변한다. 챕터스 서점의 구성은 서점인지 잡화점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두꺼운 화보 중심의 지중해 관련 책이 한 권 놓여 있는 평대에서는 바다를 상징하는 색깔로 구성된 에코백, 스카프, 모자, 예쁜 그릇을 판다. 라이프스타일이 그렇게 구성되어 가고 있으니 분류법이 바뀐다. 팬이 많은 요리 코너를 가진 뉴욕타임스가 레시피 배달서비스를 시작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신세계백화점이 고객의 즉각적 반응과 비교, 결정을 위해 브랜드 중심이 아니라 편집숍처럼 진열을 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미디어 독자의 요구도 이러한 변화와 가까이에 있다. “나 방송이야” “나 신문이야” 이러지 말고 새로운 기술과 습관을 바탕으로 “빵 터지고 훅 가는 현실 세계에서 ‘내 삶의 친구’가 되어달라는 것”.
무라카미 하루키의 새 책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왜 개인과 주관적 관점을 강조하고 있는지, 7만원을 내는 알랭 드 보통의 강연에는 어떤 새로운 취향이 넘쳐나는지, 신문을 읽고 와 콘텐츠를 포스팅하는 경험은 어떻게 다른지, 필리버스터 연설을 묶은 단순한 책을 왜 30대 여성들이 제일 많이 샀는지, 아이폰을 쓰는 개발자들은 왜 나오지도 않은 테슬라의 전기차를 예약하고 기술이 가진 아름다움을 선점하는지, 장기불황 시대에 왜 ‘달리기’가 뜨는지를 연구하고 적용해야 한다. 미래를 잃어버린 세대가 이제 전쟁 이후 아버지 세대보다 못사는 첫 번째 세대가 되고, 어제보다 오늘 더 벌 수 있다는 기대가 틀릴 수 있고, 이제까지 배운 교육이 쓸모가 없을 수도 있고, 입사자가 희망퇴직자가 될 수 있는 시대를.
경제력을 가진 일본 전후 베이비부머, 즉 ‘프리미어 세대’를 타깃으로 한 쓰타야 서점이 말한다. “어른인 체하는 것이 가능한 공간. 깊이 생각하고 싶을 때, 무언가에 막혔을 때, 교감을 구하고 싶을 때 힌트를 얻고, 책과 차분한 공간 그리고 음악이 있는 서점. 그것을 찾아내기까지 풍성하게 제공해주는 곳.” 이것이 꼭 서점이어야 하는가? 어느 자동차 회사 임원에게 물었다. “자동차 회사는 기계 회사입니까?” “(손사래를 치며 말한다) 아뇨 아뇨. 전자 회사입니다.” 이렇게 말해주었다.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라이프스타일 회사입니다.” 언론사는 아닌가?
유민영 | 에이케이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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