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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미디어 세상]동성애 ‘문제’의 문제

- 5월 1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사상 처음 한국의 대선에서 동성애가 화두가 되었다고 언론들이 보도하고 있다. 적어도 4월26~27일 이틀은 정말 뜨거웠다. 사건의 발단은 25일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발생했다. 한 후보의 도발적 질문 이후 후보들의 발언에 대한 항의, 해명 발언 등이 이어졌다. 다소 혼란스러웠던 상황 전개에 대해 “동성애 문제는 이전 선거에는 거의 언급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에” 각 캠프가 이에 대한 대비를 하지 않았다는 진단도 내려졌다. 아마 이 말은 사실일 것이다. 이른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과 관련해 주요 후보들이 대부분 반대 입장이었고, 그러다 보니 언론도 대선후보들도 중요하게 다루지 않던 주제였다.

 

토론회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언론들은 “‘동성애 문제’가 쟁점으로 부각”됐다는 등의 표현을 쓰면서 이 ‘사건’을 다루었다.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 행동’ 활동가들이 문재인 후보의 연설 중에 개입하여 토론회 발언에 대해 사과를 요구한 사건은 온라인 세계의 논쟁으로 격화되었다. 홍준표 후보의 “동성애 때문에 에이즈가 창궐하고 있다”는 발언은 팩트 체크의 대상에 올라 정확하지 않은 정보라는 것이 확인되는 사건도 보도되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가 26일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열린 '천군만마 국방안보 1000인 지지선언' 기자회견에서 인사말을 하는 도중 성 소수자의 인권을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을 든 동성애자들이 항의구호를 외치며 문 후보에게 달려들고 있다. 권호욱 기자

 

언론이 사건을 보도하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닌가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언론이 이렇게 사건으로만 이를 조명하다 보니 정말로 문제가 되는 것 같다. ‘동성애 문제’로 표현한 것이 ‘의제’라는 의미였다는 점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성애 문제라는 표현 자체에 대해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진정한 문제는 ‘차별’이다. 동성애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동성애에 대한 차별이 문제인 것이다.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성소수자 문제를 동성애로만 언급하는 것부터 문제이다. 해당 발언과 관련한 대선후보들의 해명이 모두 군대와 관련지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남성 성별의 동성애자만을 상상하고 있다는 점도 비극이겠지만 말이다.

 

지난 며칠간 사건들이 연속 보도되면서 동성애 문제는 정말 문제가 되어 버렸다. 27일 성소수자 차별반대 시위자들이 문 후보의 멱살을 잡았다는 오보가 나가면서, 주요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 이용자들은 ‘동성애자’를 문제 삼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도움을 주었는데 그 은혜를 모르는, 혹은 진짜로 문제적인 발언과 행위를 일삼는 사람에게는 아무 말도 못하면서 가장 ‘우호적일’ 사람에게만 거친 방식으로 무례하게 항의하는 ‘트러블 메이커’가 되었다. 문제로써, 성소수자는 한국 대선에서 이제까지 역사상 가장 높은 가시성을 획득하고 있다.

 

이 가시성의 효과 그 자체 역시 문제이다. 온라인 공간에서의 이슈 증폭이 계속되면서 차별 문제를 확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성소수자와 그의 옹호자(ally)들은 온라인상에서 그리고 오프라인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했다. 이 존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가슴으로는 아닌데도 머리로 이해하여 이제까지 잘해줬는데도 불구하고 정치에 대해 이해가 없는, 정신 나간 성소수자들이 (나중에 가장 우호적일 후보를 공격하여) 자기 밥그릇을 엎고 있다”는 글의 ‘합리적인’ 태도를 칭송한다. 가끔 연대의 목소리가 발견되기는 하지만, 뉴스 댓글과 커뮤니티 댓글에서는 동성애에 ‘반대한다’는 압도적 의견들에 묻히고 있다. 근원적인 문제는, 실존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러한 ‘옹호론자’와 ‘반대론자’들이 벌이는 토론을 보고 있어야 하는 상황 그 자체다.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에게 나를 두고 찬성하나 반대하나 물어보지 않으며, 아무도 나를 문제라고 명명하지 않는 것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찬반토론이 ‘의견’이라는 이름으로 공적으로 전시되는 열등한 대우를 받는 누군가가 있기에 우대이다. 그러니 사회가 더 나아져야 한다면, 내가 받는 우대가 모두에게 적용되어 그것이 더 이상 우대가 아니어야 한다.

 

대선 국면에서 언론은 수많은 팩트 체크를 해주고 있다. 성소수자에 대한 정확하지 않은 ‘지식’과 ‘수치’는 팩트 체크를 통해 비판되는 순기능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언론은 후보들의 발언을 인용하거나 사건을 보도하면서 성소수자의 존재라는 팩트에 대해서는 확인해주지 않고 있다. 언론의 팩트 체크에서는 주로 과거의 발언과 지금이 일치하는가, 인용하는 수치가 정확한가를 중심으로 다뤄지는 모양새이다. 그러나 존재만큼 명백한 팩트가 어디에 있는가. 사건이 진행되면서 언론이 사용하거나 인용하는 표현은 ‘동성애 문제’, 동성애 ‘합법화’ 혹은 군대 내 동성애 ‘허용’, 동성결혼 ‘합법화’, 동성애 ‘엄벌’ 등이다. 이 표현들은, 인용이었다고 하면 ‘팩트’를 체크하여 정정되었어야 하고 언론이 직접 사용했다면 잘못된 것이었다. 이 사건들 속에서 무엇이 문제인지를 정확하게 알려주어야 했다.

 

한국기자협회의 인권보도준칙에는 “성적 소수자를 비하하는 표현이나 진실을 왜곡하는 내용, ‘성적 취향’ 등 잘못된 개념의 용어 사용에 주의한다”는 항목이 있다. 이 항목에 근거하여, 4월25일 직후의 보도에 대해 그리고 그 이후의 보도에서, 사건의 인용과 언론 스스로의 진단에서 사용한 표현들이 ‘비하하는 표현이나 진실을 왜곡하는 내용’이거나 ‘잘못된 개념’이 아니었는지에 대한 팩트 체크가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

 

김수아 |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