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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미디어 세상]드루킹 나비효과와 언론의 자기 반성

일본 침몰을 예언했다던 ‘드루킹’도 자신이 저지른 일이 이렇게 번질 줄 몰랐을 게다. 드루킹 나비효과라 부를 만하다. 네이버 댓글조작 시비로 발단한 사건은 인터넷 댓글의 정치적 영향력에 대한 시비로 이어지고, 포털의 댓글 서비스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을 거쳐, 이제 포털과 언론사 간 뉴스 제공 방식을 놓고 힘겨루기로 나가고 있다.

 

나비효과란 최초의 작은 움직임이 연쇄작용을 통해 걷잡을 수 없는 파급효과를 낳는 일을 뜻한다. 인터넷을 뒤져보면 쉽게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그중 정운호 나비효과라 불리는 이야기가 유명하다. 정운호에서 진경준, 롯데그룹, 우병우, 최순실을 거쳐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지는 파급효과를 지칭한다. 드루킹 나비효과가 향후 어떤 결말로 이어질지 모르겠다. 그러나 와중에 한국 언론의 자기반성의 계기가 등장하게 될 것만은 분명하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언론의 자기반성을 논하기 전에 먼저 포털 뉴스 댓글조작은 인터넷 여론조작이며 그래서 끔찍한 범죄가 된다는 주장부터 검토해 보자. 모두가 이 주장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넘어가는 바람에, 이후 몇 가지 논점이 흐트러졌다. 드루킹이 포털 아이디를 대량 생성해서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해 댓글을 조작한 일은 분명 문제가 되며, 따라서 수사당국은 해야 할 일이 있다.

 

내가 우려하는 일은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을 계기로 시민들 간 자유로운 의견 교환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규제론자들의 득세다. 이들은 포털 댓글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매크로를 허용하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고 말한다. 뉴스 댓글 전체가 왜곡된 소통을 낳는다고 진단한다. 도대체 이런 규제가 기술적으로 가능한지, 법적으로 타당한 일인지, 그리고 규제한다고 해도 누가 해야 할 일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한 가지는 분명하다. 정부가 나설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정부는 시민의 자유로운 여론 형성에 기반해서 형성한 법을 집행할 수 있을 뿐, 여론 형성 과정 자체에 개입해서는 안된다. 정부가 법을 어기며 개입하면 무도하며, 없는 법을 만들어 개입하면 그 법이 위헌이 된다. 전자는 원세훈 국정원 댓글 사건과 김기춘 블랙리스트 사건이 대표 사례고, 후자는 인터넷 실명제 위헌 판결과 전기통신기본법 허위통신 위헌 판결이 대표 사례다.

 

우리는 또한 인터넷에서 시민의 자유로운 의사 개진과 사업자의 상업적 활동을 구별해서 봐야 한다. 시민 한 사람이 하루 종일 인터넷에서 댓글을 달고 있다면, 동료 시민으로서 그가 생업은 도대체 어떻게 하는지 염려해 줄 수 있을지언정 그의 시민적 덕성을 폄하할 도리가 없다. 실은 그의 정치적 참여행위 덕분에 정부와 언론이 조금이라도 더 긴장해서 일을 할 것이므로 이로써 얻는 이득을 생각하면, 그에게 일부 빚지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사업자가 돈을 벌기 위해서 댓글 공간을 휘젓고 다닌다면 이건 이야기가 다르다. 특히 불법적 방식으로 정치권과 거래하면서 다른 시민의 의사 개진을 방해하는 일을 한다면 문제가 된다. 시민들과 인터넷 사업자들이 함께 경계하고, 모니터하고, 고발할 일이다.

 

나는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을 계기로 시민들의 댓글활동 규제론을 설파하다가 슬쩍 포털 책임론으로 몰아가는 일부 언론을 보며 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사태가 터지기까지 포털도 잘한 일 하나 없지만, 실은 언론이야말로 그 잘한 일 하나 없는 사태를 낳은 인터넷 뉴스 생태계에 공존하는 무책임한 서식자이기 때문이다. 뉴스 이용자의 관점에서 보면 이 요점이 분명히 보인다. 요컨대, 언론은 애초에 왜 우리나라에서 뉴스 댓글이 ‘뜨거운 서비스’로 떠올랐는지, 그리고 왜 아직도 뜨거운지 그 이유를 뉴스 이용자의 관점에서 생각해 봐야 한다.

 

역사에 반사실적 가정법은 소용없다지만, 나는 만약 뉴스 품질이 높았다면, 2000년대 초 인터넷 포털과 언론사가 제공한 뉴스 댓글 서비스가 그렇게 폭발적 인기를 얻을 수 없었을 것이라 믿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포털이든 언론사든 뉴스 댓글을 보면 기사의 품질, 특히 불공정성과 이념적 편파성을 비판하는 내용이 많다. 시민들은 댓글 공간에서 서로 싸우고, 정치인을 욕하고, 까닭 없는 글을 쓰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 내용은 뉴스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인터넷 뉴스 이용자들은 이제 댓글을 뉴스와 통합된 서비스로 이해하고 있다. 뉴스가 주장하는 바를 검토하고, 비판하고, 판단하기 위해 댓글을 참조한다. 실제 댓글과 함께 읽어야 납득이 되는 뉴스가 적지 않다. 심지어 뉴스 이용자 중에는 댓글을 인용하기 위해 뉴스를 공유하는 경우도 있다. 꼬리가 머리를 흔드는 격이라 해야겠지만, 애초에 가볍고 부실한 머리를 어쩌랴.

 

언론인들이 모를 리 없겠지만 지적해 둔다. 뉴스 이용자의 관점에서 보면, 어떤 경로로 이 뉴스를 보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뉴스 내용이 좋고, 보기 편하면 그만이다. 따라서 포털에서 언론사 뉴스를 링크하는 방법을 바꾸든 말든, 누가 포털 뉴스 제목을 결정하든, 심지어 누가 쓴 것인지도 상관없다.

 

언론인은 자신이 쓴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며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 누가 이들이 이렇게 쓰게 만들었나.

 

<이준웅 | 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