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평호 | 단국대 교수·언론영상학부
앵벌이. 사전에 따르면 앵벌이는 불량배의 부림을 받는 어린이가 구걸이나 도둑질 따위로 돈벌이하는 짓, 또는 그 어린이를 말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에 미디어 앵벌이가 떴습니다. 좋은 자리도 달라, 다 보도록 해주라, 돈 내는 것도 줄여 달라, 딴 회사 광고는 줄여라, 자기는 지금까지 못하던 광고도 하게 해주라…, 앵벌이의 요구는 다양합니다.
이유는 자신들이 초짜라는 겁니다. 좀 거룩한 말로 하면 유치산업이라는 거지요. 다른 이들은 어떻게 되든 초짜, 아니 유치산업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살 수 있다는 겁니다.
연전에는 문을 열기만 하면 일자리가 수만 개 늘어나고 세계적 기업으로 클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었고 그런 명분으로 미디어법을 날치기로 처리했었는데, 지금 그 같은 원대한 포부와 결기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중소기업, 아니 아예 초보기업이니 봐달라고 애걸복걸하고 있습니다. 애걸복걸이라기보다는 사실 협박에 더 가깝게 보이기도 합니다만.
그런데 알고 보면 이들은 사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힘이 세고 노련한 미디어 집단들입니다. 사실 이들이 앵벌이 같기도 하고, 아니면 이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고관대작이 앵벌이 같기도 하고, 아니면 둘 다 앵벌이 같기도 합니다만, 어쨌든 이들의 앵벌이는 상당히 성공할 것 같습니다.
좀 말이 거칠었습니다만, 이런 유의 앵벌이를 점잖은 말로 하면 ‘약탈’이라고 합니다. 약탈이 점잖은 말이 아니라고요? 잠시 설명을 드려보겠습니다.
물론 약탈이라는 말은 굉장히 강한 용어입니다. 그러나 정치사회적으로 쓸 때 약탈이라는 말은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공적 기구를 조직적으로 오·남용하는 행위, 다른 말로 하면 각종 제도적 기구를 동원하거나 공적 장치를 훼손시켜가면서 특정집단의 이익을 확보해주는 행위를 말합니다.
예를 들면 국가가 ‘자본 도우미’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이런 정부를 약탈국가, 또는 약탈정부(predator state)라고 부릅니다.
이 말은 제임스 갈브레이스(텍사스대 경제학과 교수, <불확실성의 시대>를 쓴 존 갈브레이스의 아들)라는 학자가 시장만능-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작금의 사회에서 나타난 정부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쓴 것입니다. 즉 사회공동의 이익이 아니라 자본의 이익을 위해 정부가 나섰다는 것이지요.
자본 도우미뿐이겠습니까? 기업이 아니더라도 약탈국가는 자신들의 뜻에 맞는 집단에 권력을 부여하거나(법을 만들어서), 금전적 이익 또는 보상을(예산배정이나 세금감면, 인사 같은 것을 통해서) 주는 방식으로 국가를 접수·운용합니다.
왜냐? 약탈국가·정부는 공공의 이익이라는 개념 자체를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아예 그것을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지난번 공정사회와 낙하산 인사라는 주제로 방송된 이 그걸 잘 보여주었지요.
말할 나위 없이 약탈은 국가만 저지르는 것이 아닙니다. 약탈국가 체제하의 각종 기구나 조직은 대체로 유사한 행태를 보이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방해되는 집단은 격리와 제거, 약화의 대상입니다. 방송사 사장을 무단으로 해임하거나, 사실상 쫓아내거나, 암묵적으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특정인의 방송출연을 못하게 하거나, 정부에 비판적인 기자나 PD를 징계하거나, 노사 단체협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하거나 하는 행태가 그것입니다.
지금 미디어 앵벌이 때문에 대한민국이 시끄럽습니다. 당연합니다. 사실 시끄러운 것은 문제가 아니지요. 무섭습니다.
이들 앵벌이들이 무슨 일을 벌일지, 그리하여 대한민국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를 생각해보면 온 몸에 소름이 돋습니다. 그래서 내년 선거를 통해 이 앵벌이들을 정리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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