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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칼럼+옴부즈만

‘갑의 횡포’ 다면적인 접근을

‘갑을관계’의 불공정성에 관한 사회적 논의가 한창이다. 시작은 남양유업의 영업사원이 대리점주에게 폭언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이다. 경향신문도 이 내용에 주목했다. 연일 보도를 통해 강매, 욕설, 협박과 같은 불공정행위의 문제를 지적했다. 나아가 ‘갑의 횡포와 을의 눈물’이라는 기획기사를 연재해 ‘갑을관계’에서 나타나는 불공정 사례들을 보도했다. 약자를 대변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사안을 분석적으로 접근하지 못해 문제 발생의 구조를 파악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는 일정한 한계를 드러낸다.


문제는 ‘을’의 진술에 지나치게 의존한 사례 중심 보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획기사는 백화점 판매직원의 열악한 근무조건 사례, 운수회사의 불공정한 위·수탁 사례, 특약점 ‘밀어내기’ 사례, 자동차 회사의 일방적 마진 결정 사례 등을 보도한다. 기사에는 ‘갑의 횡포’에 대한 ‘을’의 설명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뿐, 이들 간 계약의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지, 계약서상 독소조항이 있다면 어떤 내용인지, 불공정한 계약이나 계약 외적 횡포가 나타나는 구조적 원인은 무엇인지, 법령이나 제도와 같은 국가 개입의 내용은 무엇이고 어떤 문제가 있는지, 보편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문제인지 등, 사안에 대한 분석적 결론과 해결책 마련을 위해 필요한 기본적 내용들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남양유업 횡포에 분노한 대리점들 (경향DB)


고발 형식의 사례 보도는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는 효과가 있다. 기본적으로 ‘아버지 연배에게 폭언했다’는 것과 같이 금도를 넘어서는 윤리문제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어떤 ‘을’은 “조선시대 하녀와 다를 바 없다”고 했다고 보도한다. 이러한 사례들은 여론을 환기시키는 데는 일정한 도움이 된다. 그러나 사례에 집중하다보면 본질보다는 잘못을 저지른 행위자들에게 초점을 맞추는 감성적 보도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형성된 여론은 시간이 흐르면 잦아들기 쉽고 미봉책만으로 왜곡될 수도 있다. 해결책 마련을 위한 입법이나 제도화 과정은 일반적으로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분석적 노력이 선행되지 못하면 이 과정에 작용하는 여러 변인들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게 된다. 이로 인해 법률이 통과되고 제도가 마련된다 해도 충분한 해결책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례라는 특성상 보편성의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한계도 있다.


경향신문도 문제의 근원을 파헤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양유업 경영진의 “성의 없는 사과”를 계기로 불평등 계약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려 한다. 단순한 영업사원과 대리점 간의 문제는 아닐 것이라는 점이다. 본사의 압력이 있었을 것이라는 가정이 전제되고 영업사원도 ‘을’일 것이라는 주장이 뒤따른다. 더 나아가 구조적 측면을 거론하기도 한다. 백화점 입점업체들에 대한 불공정행위와 관련, 노동연구소 연구실장의 말을 인용해 “백화점은 매출을 늘리기 위해 입점업체 직원들을 밤낮으로 압박하지만 법적 규제는 거의 받지 않고 있다”고 분석한다. 또한 “백화점의 불공정행위를 막기 위해선 독과점 시장인 백화점 업계에 대한 정부 주도의 구조 재편작업이 있어야 한다”고도 지적한다. 불공정한 계약과 처우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시장 및 운영 구조, 이에 대한 정부 규제의 필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민주적 국가와 건강한 시민사회의 적절한 개입이 없는 방임적 시장에서는 이 같은 문제들이 예외적이라 하더라도 필연적으로, 때로는 일반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분석적 저널리즘의 차원에서 불공정행위에 대한 사회학적 논의가 이루어진다면, 사례로 드러난 영역 이외에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는 갑의 횡포를 밝혀낼 수도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들 간의 하청관계, 비정규직 문제 역시 대표적 갑을관계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유사한 문제들이 만연해 있다면 해법을 제안할 본격적 논의가 필요하다.


CJ대한통운의 횡포 눈믈로 호소 (경향DB)


보도의 관점을 다면적으로 확장해볼 필요도 있다. 택배기사들에게 횡포를 부리는 사람들 가운데 그들의 ‘고객들’도 있다면, 기사들을 ‘싼값에 부릴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의식이 사람들 사이에 확산되어 있는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소비자본주의가 풍요로움이라는 신화를 만들어내는 동안 노동의 가치와 인격을 지폐 몇 장과 바꿀 수 있다는 물신적 윤리의식이 사람들 사이에서 자라고 있었을지 모른다. 백화점 고객들이 판매직원들의 불합리한 고용조건 등 신분상의 약점을 간파하고 횡포를 부린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차별적 신분의식의 발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물질과 이기심에만 집착하는 이윤추구 방식은 천민자본주의의 대표적 특성이다. 이윤 극대화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사람의 인격이란 애초에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이 같은 문제들이 우리 사회에 나타나고 있다면, 일회성 사례 보도로 끝낼 일이 아니다.




한동섭 |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