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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리즈=====/최희진의 뉴스 속 인물

‘세계 도보여행 6년’ 책 5권에 담아낸 김남희

ㆍ“인생의 짐도 배낭 하나면 되지 않을까요”


최근 세간에 유행했던 단어를 빌려서 말하자면, 김남희씨(38)는 한국 사회와 ‘소통’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신문을 구독하기 시작했고, 예전이라면 보지 않았을 장르의 영화도 일부러 찾아봤다. 머지않아 터 잡고 살아야 할 땅에 대한 일종의 적응 훈련이다. 
 


                      김남희씨는 “여행객인 저한테 밥상을 차려주고 잠자리를 내준 이들은 모두 가난한 사람들이었다”며
                                                   “물질은 행복의 척도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강윤중기자

그가 ‘도보여행가’라는 이름으로 ‘외국물’을 마신 것이 올해로 6년째다. 전세계를 두 발로 꼭꼭 다져가며 적어내려간 여행과 성찰의 기록은 모두 5권의 책으로 세상에 나왔다. ‘소심하고 겁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 시리즈 4권은 한 대형 서점의 추천도서 목록에 오른 지 오래고, 지난 6월엔 경향신문 연재 글을 묶은 ‘도보여행가 김남희가 반한 유럽의 걷고 싶은 길’이 출간됐다.

이만큼 돌아다녔으면 배짱이 누구 못지않게 두둑해졌을 법도 한데, 그는 여전히 “내공이 부족하다”고 했다. 한국 사회의 속도에 휩쓸리지 않고 줏대있게 살려면 스스로를 더 단련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오는 9월 다시 비행기에 오른다. 정착하기 위해 떠나는 여행가 김씨를 지난 3일 서울 홍대 앞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한국에 돌아온 지 100일이 됐는데, 오랜만에 오면 서울도 다르게 보일 때가 있습니까.
“서울은 정 붙이고 살기가 점점 어려워져요. 원래 도시를 별로 안 좋아하는 데다가 밖에서 제멋대로 혼자 살다 들어오니까 속도도 너무 빠르고 다들 어쩌면 그렇게 곱고 예쁘고 화려하신지. 적응이 안 돼요.”


-그래도 요즘의 서울은 사건이 많아서 지루하지는 않을 텐데.
“저 촛불집회 진짜 열심히 나갔어요. 재미있더라고요. 집회와 시위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구나. 사람들이 기발하고 발랄해서 보는 것만으로도 좋던데요. 거기에 대고 배후니 괴담이니 하는 게 참…. 그게 정부 여당뿐이 아니라 기성세대의 모습이 다 그런 것 같아요. 사람들은 이렇게 빨라지고 진보하고 열려가는데 우리 (기성세대)는 닫힌 세계 속에서 닫힌 언어, 닫힌 사고방식 그대로 살아가는 것 같아요. 촛불문화제는 굉장한 배움이자 즐거움의 장이었어요.”


-바깥 세상을 그렇게 많이 돌아보시고도 배울 것이 남아있으신가요.
“다 못 배워서 계속 돌아다니는 거지요. 현명한 사람은 밖에 안 나가고도 방 안에서 세상을 다 본다는데.”


-모두 5권의 여행기를 냈습니다. 주머니 사정은 처음보다 나아졌겠어요.
“그렇지도 않아요. 처음 시작할 때 방 빼고 적금 깨서 여행장비를 샀어요. 다행히 방 뺐던 돈은 안 건드렸는데 그건 뭐 얼마 되지도 않는 거였고. 제가 여행한 지 올해로 6년째이고 책 쓰기 시작한 지는 4년이 됐는데 저축은 하나도 못했어요. 책으로 돈 별로 못 벌었거든요. 제 책은 여행책이라서 그런지 다들 빌려서 보세요. 이번에 서울에 들어온 것도, 아프리카 여행을 한 달 하고 나니까 돈이 떨어지더라고요. ‘가서 돈 벌어와야겠다’ 싶어서 온 거예요.”


-2006년 출간한 책을 통해 ‘카미노 데 산티아고’(산티아고의 길·야곱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이어지는 스페인의 성지 순례길)를 널리 알린 주인공인데. 이렇게까지 히트칠 줄 알았습니까.
“사람들이 좋아할 거라고 생각은 했어요. 저한테 정말 좋았던 경험이니까. 책을 쓰면서도 행복했어요. 이 얘기를 빨리 사람들한테 알려주고 싶었지요. 하지만 이 정도로 열풍이 될 줄은 몰랐고 이렇게 책이 많이 나오리라고도 생각지 못 했어요.”

-정말 마음에 드는 곳은 오히려 알리지 않고 아껴두는 여행가들도 있던데.
“여기에서도 걱정스러운 얘기가 들리더라고요. 알베르게(순례자 전용 숙소)들은 대부분 여행자들의 기부를 받아서 운영해요. 그런데 산티아고에 갔다온 분들이 인터넷 사이트에 ‘여긴 공짜, 여기도 공짜’ 이런 식으로 글을 남기시더라고요. 그건 공짜가 아닌데. 우리가 돈을 안 내기 시작하면 알베르게들도 결국 요금을 책정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가난한 여행자들은 어려워질 수 있거든요. 적은 돈이라도 꼭 기부를 해주셨으면 하고.

또 하나는 이라체 수도원이라고, 지나가는 순례자들을 위해 길가에 수도꼭지를 만들어놓은 곳이 있어요. 오른쪽에선 물이 나오고, 왼쪽을 틀면 포도주가 나옵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이 페트병에 포도주를 담아간다는 거예요. 국제적인 상식을 잘 지켜서 뒤에 오는 사람들이 편견 없이, 불이익 없이 여행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밖에 나가면 원하지 않아도 한국 대표선수가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해주셨으면 하는 거지요.”


-여행지를 선택할 때 특별한 기준이 있습니까.
“제 관심사는 주로 저개발국이에요. 자연만 빼어난 곳은 허전하고 아쉬움이 남아요. 아름다운 자연이 있고 거기 깃들여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따뜻하고 소박하면 그게 가장 행복한 여행이 되더라고요. 저는 이슬람 국가를 좋아하고 중동 주변 나라들이나 탄자니아, 인도, 네팔도 좋아해요. 사람살이를 ‘진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죠.”


-다음 여행지는 어디입니까.
“오늘부터 일어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9월 말에 일본 오키나와를 한 달 정도 걸어서 여행할 생각입니다.”


-오키나와는 왜 가십니까.
“제가 일본을 좋아해요. 그런데 마음 한 구석에는 (일본에 대한) 열등의식과 우월의식이 뒤범벅된 꼬인 사고들이 있더라고요. 일본에 깊이 들어가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자, 사람을 많이 만나고 친절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 어디일까, 일본 친구들에게 물었더니 오키나와라는 겁니다. 주일미군 기지 문제로 불거진 시민의식이라든가, 외부인들에게 열려있는 오키나와 사람들의 특성 등 여러 가지를 고려했을 때 이 섬에서 도보여행을 하는 게 제일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당초 남미를 마지막 여행지로 계획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남미는 일본에서 돌아온 뒤에 가요. 장기적으로 여행하는 세계 일주의 대단원은 중남미로 막을 내릴 것 같아요. 그런데 하고 싶은 게 하나 생겼어요. 혜초 스님이 갔던 길을 따라서 실크로드를 걸어서 종주하는 겁니다. 북한 지역을 통과해서 걸어가는 거지요. 남북 화해 무드가 조성되고 이 여행을 함께 할 파트너가 생기면 그때 해보고 싶어요.”


-여행을 마흔까지만 하겠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굳이 선을 정해놓은 것은 아닙니다. 인생을 건강하게 80년 살 수 있다고 했을 때 전반전은 유목하고 그 다음부터는 정착해야하지 않을까 해서요. 정착해도 여행을 안 한다는 건 아니에요. 지금처럼 8~9개월 여행하고 3~4개월 서울에 머무는 생활을 거꾸로 하는 게 되겠지요. 사실 체력이 점점 떨어져서 힘들어요.”


-체력 관리를 따로 하고 계십니까.
“집에서 운동하고 걷기도 하는데 체력이 많이 떨어졌어요. 장기여행하는 사람들은 먹을 것을 꼬박꼬박 못 챙겨 먹거든요. 1년 여행하면 만성위염 등 몇 가지 병에 걸린다고 하는데 그런 것들이 저도 있어요. 게다가 저는 채식을 해요. 밖에선 훨씬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요즘 젊은 친구들을 보면 ‘나이 들어서 빚 갚고, 젊을 때 빚내서 여행하라’고 얘기해요.”


-여행 외에 다른 관심사는 어떤 게 있습니까.
“정치나 사회 문제에 관한 책들을 다시 찾아서 읽기 시작했어요. 떠돌아다니느라 신문, 잡지, 텔레비전을 못 봐서 점점 바보가 돼요. 우리나라에서 어떤 일들이 생기는지도 모르고. 촛불시위만 해도 그래요. 사람들이 반대 의견을 얘기하면 (반박하고 싶어도) 논리가 너무 부족한 거예요. 공부를 해야겠더라고요. 촘스키 다시 읽고, 박노자도 읽어요.”


-외국에 오래 있다 들어오면 지인들과 대화하는 게 어렵겠습니다.
“모르는 게 너무 많아요. 청소년 여행학교를 여는 게 꿈인데, 재작년에 부천시에서 하는 청소년 여행학교의 강사로 나간 적이 있어요. 그런데 제가 청소년과 대화하는 법도 모르고 청소년의 관심사도 모르는 겁니다. 준비가 너무 안 돼 있더라고요. 그래서 음악도 더 열심히 들으려고 하고 영화도 봐요. ‘강철중’도 보러갔어요. 옛날엔 그런 영화 절대로 안 봤는데. 저는 좁고 틀이 많은 사람이에요. 여행 다니면서 조금씩 넓혀 가고는 있는데 그 안에 채워 넣을 게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글 쓸 때도 한계를 많이 느끼고요.”


-직업이 여행가이기 때문에 세상 물정을 잘 모를 것 같다는 ‘편견’이 있습니다. 혹시 재테크라는 것을 하시는지.
“작년에 여윳돈 500만원이 생겨서 처음으로 펀드에 넣었다가 죽을 쑤었네요. 남들이 해보라고 해서 생전 처음 해봤는데 ‘역시 나는 안되는구나’ 깨달았지요.”


-너무 뻔한 질문이긴한데, 미래에 대한 불안은 없습니까.
“불안함이 없을 수는 없어요. 그런데 보험 들고 저축하면서 은퇴 후의 삶을 준비하는 분들도 다 걱정스럽지 않으세요? 저는 여행을 통해서 덜 갖는 대신에 더 충실한 삶을 사는 법을 배워가고 있어요. 여행이 놀라운 건 그 점이에요. 배낭 하나에 인생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지고 간다는 것. 저처럼 장기로 떠나는 사람은 1년을 가는데, 이 배낭 하나에 1년 동안 필요한 모든 게 다 들어가요. 그렇게 따지면 사람이 100년을 못 사는데, 그래 좋아, 이만한 배낭 100개만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 그리고 신기한 게, 사람은 자기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돼 있어요. 꿈을 꾸면 그 꿈이 이뤄지고 길 위에 오르면 길이 스스로 알아서 또다른 길을 열어주더군요. 저는 여행을 통해서 하고 싶은 일을 찾았고, 평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계속 배우고 있기 때문에 손해본 게 하나도 없어요.”


-여행을 많이 다니는데도 나갈 때마다 좋습니까.
“밖에 있으면 안이 그립고, 안에 있으면 밖이 그리워요. 그래도 아직은 서울에서 사는 게 훨씬 힘드네요. 경제적인 것에 구애받지 않는다면 밖에서 생활하는 시간을 늘리고 싶고 더 오래 여행하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왜 밖이 더 좋은가요.
“일단은 우리 사회가 너무 답답해요. 모범 답안이 정해진 삶을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강요하고, 소수와 약자들에게 애정과 관용을 보여주지 않는 것 같아요. 너무 빨리 들끓고 너무 빨리 잊어버리고 너무 편견이 많고…. 저도 그런 틀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여행을 하면서 그것을 깨뜨리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물론 이전보다 나아졌다고 하지만, 저한테는 힘이 드네요. 좀더 내공을 쌓고 웬만한 것에는 까딱하지 않을 힘이 생기면 들어와서 정착하고 싶어요. 문명 전체가 나아가는 방향에 노(No)라고 말하고 등 돌려서 제 길을 갈 수 있는 용기를 쌓아가는 중인데 아직 그렇게 튼튼해진 단계가 아니기 때문에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무서워요.”


-그렇다면 이민을 가시는 방안이 있을 텐데.
“그럴 생각은 또 없어요. 제가 문제가 참 많은 게, 저는 우리나라가 좋아요. 애정이 있기 때문에 싫은 것들이 더 많이 보이고, 밖에 나가봤기 때문에 안에 있을 때 보지 못했던 것들이 객관적으로 보이는 거예요. ‘혐한주의자’는 아니거든요. 단지 더 좋은 사회,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데 일조하기 위해서 저를 단단히 다져가는 과정에 있는 거지요. 저는 우리나라에서 살 거예요. 작은 도시나 시골, 산골 마을에 들어가서.”


-이제 휴가철입니다. 이동하는 도중엔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을까요.
“저는 음악을 들어요. 기차로 이동할 때는 책을 읽지요. 일기 쓰고. 엽서도 많이 쓰고.”


-젊은 여성팬들을 위해 여행지 한 곳을 추천하신다면.
“저는 탄자니아가 엄청 좋았어요. 동물 사파리를 하면서 19마리의 기린에게 둘러싸였던 어느날 오후가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로 남아있어요. 광활한 대자연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미약하고 하잘 것 없는 존재인지 느낄 수 있지요. 좌충우돌하면서 허겁지겁 살아온 자신에게 선물을 주고 싶다면 몰디브도 권하고 싶네요. 아무 것도 안하고 물고기 구경하고 책 읽고 마음껏 쉴 수 있어요. 거긴 쇼핑할 것도 없거든요.”

<최희진기자 dai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