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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리즈=====/언론계 취업소식

‘열린 채용’ 외친 언론사들, 왜 후진하나/단비뉴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단비뉴스 http://www.danb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59


"특집으로 '고용난민 일자리 없나요' 시리즈까지 한 경향이 대다수 지원자에게 필기시험 기회마저 안 준 데 대해 얼떨떨해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지난 9월 7일 경향신문 서류전형결과가 발표된 후 언론인 지망생들이 많이 찾는 한 인터넷 카페에는 이런 내용을 포함한 '성토'의 글들이 무더기로 올라왔다. 2년 만에 수습기자 채용 공고를 낸 경향신문이 그동안 지원자 전원에게 필기시험 기회를 주었던 것과 달리 이번엔 서류전형을 통해 지원자들을 대거 탈락시켰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한겨레, KBS, 서울신문 등 '열린 채용'을 표방했던 다른 언론사들도 서류전형 부활, 지방대 배려 폐지 등 '후진'하는 추세를 보여 예비 언론인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경향신문의 경우 이번 서류전형에서 학교성적, 영어공인성적 등 몇 가지 요소를 표준화해 점수를 산정한 뒤, 이를 토대로 전체 지원자 1400여 명 중 300여 명에게만 필기시험 응시기회를 준 것으로 알려졌다. 경향신문 채용담당자는 단비뉴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전형이 전체적으로 급박하게 진행돼 필기시험 장소 섭외도 문제였고, 비용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 지난 여름 세명대에서 열린 대학언론인캠프에서 3기 참가자들이 강의를 듣고 있다. ⓒ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지난 4일 수습기자 최종합격자를 발표한 한겨레신문도 지금까지 없었던 서류전형을 올해 사실상 도입했다. 지원자에게 국어와 영어의 공인점수, 자기소개서, 취재계획서 등을 내게 한 뒤 국어와 영어 점수로 필기시험 응시대상자를 걸렀기 때문이다. 수험생들은 공인점수 등 이른바 '스펙'에 응시기회가 좌우되었다는 점, 탈락자의 경우 아예 읽지도 않을 자기소개서와 취재계획서를 내게 했다는 점 등에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지난해 공채를 하지 않았던 한겨레신문은 지난 2008년까지 채용공고를 통해 '나이 학력 성별에 따른 어떤 차별도 없다' '서류전형을 하지 않고 모두에게 1차 시험 응시기회를 준다' '토익 등 공인점수는 자격제한용이 아니므로 커트라인이 없다'고 강조해 왔다. 

 

서울신문도 지난 2008년 한때 서류전형을 폐지하고 지원자 전원에게 필기 응시기회를 주었으나 지난해와 올해 공채에서는 다시 서류전형을 실시했다.

 

지난 10월 26일 수습사원 최종합격자를 발표한 KBS의 경우는 정연주 사장 재임 시절인 2004년부터 2008년 공채까지 지방대 출신에 대한 인원 할당, 지원자의 출신지와 학력기록 등을 없앤 채 심사하는 '블라인드' 면접 등을 통해 신입사원을 뽑았으나 지난해부터는 사실상 이전 체제로 돌아갔다.

 

KBS의 한 현직 피디(PD)는 "2003년 이전에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이른바 'SKY'출신이 신입 기자 피디 중 압도적 다수를 차지했으나 2004년 이후 5년간은 30% 미만으로 낮아졌다"며 "그래서 명문대를 나오지 못한 나 같은 '천출(賤出)'도 입사할 수 있었는데 이젠 분위기가 다시 달라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KBS 신입사원 최종합격자 61명 중 비수도권 지방대출신은 18%인 11명으로, 2004년 이후 5년간 평균 30%대였던 것에 비해 상당 폭 줄었다.

 

이렇게 '열린 채용'을 표방하던 언론사들까지 과거 방식으로 복귀함에 따라 올해 언론사 채용에서는 거의 모든 언론사들이 영어 등 공인점수를 중시하는 서류전형을 실시했다. 또 여전히 지원서에 본적과 부모의 직업, 학력사항까지 기재하게 하는 언론사도 있었다.

 

이 같은 '역주행' 추세에 대해 수험생들은 물론 언론사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경향신문에 지원했던 신모(28)씨는 "올해 전형방식이 달라져 당황했다"며 "진보언론다운 모습이 아닌 것 같아 서글프다"고 말했다.

 

경향신문의 한 기자도 자신의 블로그에 "회사 내부는 물론 외부에도 왜 서류전형을 부활했는지 설명하는 절차가 필요하다"며 "그러지 않는다면 그동안 비판해온 관료 조직, 기업체들과 나은 게 무엇이냐"고 반문했다. 반면 다른 수험생 장모(28·대학원생)씨는 "비용 등을 고려해 회사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라며 "진보언론에게 과도한 윤리적 부담을 지우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한편 지난 4월 한국언론학회 주최로 열린 '미디어산업 인재 육성 세미나'에서 참가자들은 현재의 획일화된 언론사 시험 방식이 지원자의 창의성과 인성, 윤리의식 등을 평가하는 데 부적합하고 지나치게 사용자 중심적이라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 언론사들이 지속적인 산학 협력 등을 통해 예비 언론인의 자질을 다면적으로 평가하는 것처럼 우리 언론사들도 자질, 인성, 윤리의식 등을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선발방식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단비뉴스 이선필 기자  thebasis3@danb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