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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리즈=====/김종목의 미디어잡설

경향신문으로 본 1999년 이후 리영희 선생

리영희 선생은 일흔 넘은 나이와 지병에도 한국 사회의 우상과 싸우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남북한 평화, 인권, 언론, 국가보안법에 대한 리 선생의 말씀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수유+너머 고병권 연구원의 말을 빌자면, "리영희 선생은 ‘근거들의 근거 없음’을 지적하기 위해 근거 아래로 뚫고 내려가 ‘모든 근거들의 근거 없음’을 폭로"했고, “리영희 선생은 지식·정보를 전달하는 교육자이기 이전에 각성을 전달하는 교육자"였습니다. 
 
경향신문 인터뷰와 기사속에서 리영희 선생 족적을 찾아봤습니다. 경향신문이 재벌 언론이던 시절 리영희 선생 기사는 찾기 힘듭니다.  한화로부터 독립한 이후인 90년대 후반부터 리영희 선생이 등장합니다.

#1999년 08월13일자

 
전남 여수경찰서는 12일 한양대 리영희 대우교수(69)의 강연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 여부를 공안문제연구소에 감정 의뢰했다. 경찰에 따르면 리교수는 지난 6일 여수시 제2청사에서 열린 「일등 여수아카데미」 강좌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 한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가 아니며 북방한계선 남쪽이 우리 영해라는 주장도 잘못』이라는 등의 내용을 강의한 혐의다.

 

 
  

#2000년 1월20일자 

‘새천년 나의 구상’ 인터뷰 중 

"과거에는 대학생과 지식인들이 사회변혁의 중심축이었다면 새 세기에는 시민운동 세력이 정치권력과 대항하고 우리 사회의 모순을 혁파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21세기는 시민의 힘이 세상을 바꿔나가는, 시민의 시대가 되어야 합니다"

#2000년 01월20일자
 
총선시민연대는 19일 전체 대표자 회의를 갖고 21일 서울역광장을 시작으로 ‘낙선운동을 지지하는 전국인 서명’ 운동에 들어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중략) 정책자문단 공동단장을 맡은 리영희 한양대 대우교수는 이번 ‘유권자권리찾기 운동’의 성격을 ‘시민혁명’이라고 규정했다.

#2000년 02월14일자
 

‘선거 핵폭풍’ 유권자 정치혁명‘자고 나니 유명해져 있었다’ 13일은 총선시민연대가 출범한 지 꼭 한달이 지난 날이다. 지금은 우리 국민 중 총선연대를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지난달 12일 탄생할 때만 해도 지금의 총선연대를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중략) 총선연대의 명단은 실제 정당의 공천에서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실제 명단에 오른 일부 중진급 의원은 자진 사퇴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성과는 정치에 대한 시민 일반의 체념과 젊은이들의 정치 무관심을 일거에 깨뜨렸다는 데 있다. 리영희 한양대 대우교수는 "서양에서 150년 전에 이뤄졌던 유권자들의 시민혁명이 이 땅에서는 지금 일어나고 있다"면서 "정치개혁의 시금석을 시민단체들이 세웠다"고 평가했다.

#2000년04월11일자

정부가 10일 남북 정상회담 개최 사실을 발표하자 국민과 학계, 시민단체 등은 모두 "냉전 극복과 민족 화해를 상징하는 역사적 사건"이라며 매우 환영하는 분위기였다.(중략) 한양대 리영희 대우교수(언론학)는 "미국이 페리보고서를 작성하면서 북한에 대한 압살정책을 포기한 결과로 나온 산물"이라며 "북한측이 오랜 검증을 통해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과 철학에 대한 의심을 해소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2000년05월30일자

리영희 선생 경향신문 기고 <남북정상회담에 바란다> (1)눈높이로 마주서자

민족분단 반세기 만에 실현되는 평양 남북정상회담의 현실적 및 역사적 의의에 대해서는 이제 새삼스럽게 보탤 말이 없다. 오랜 적대관계의 종식을 예고하는 민족적 거사이며 20세기 냉전체제에 남은 마지막 폭발점을 제거하는 세계사적 사건이다.
(중략) 김대통령의 평양행은 53년 전 미국과 이승만씨 세력의 민족분단 단독정부 수립 획책에 반대하여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서 북위 38도선을 넘어가던 민족지도자 백범 김구 선생의 비장한 각오와 심경을 상기시킨다.
(중략) 제1차 정상회담에 기대하는 가장 중요한 합의는 그것이 한번으로 끝나지 않고 서울회담으로 이어지고, 더 나아가 지속적으로 계속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하는 것이다.
(중략)
우리 사회의 수구.반공주의적 일부가 강조하는 1대 1식 상호주의나 ‘등가교환’식 거래방식은 남북화해의 정신일 수 없다. 그것은 장사꾼의 이해타산이지 민족간의 화해의 방식이 아니다. 북한(동포)에게 주어지는 물질적 협력과 지원에 남한(동포)의 따뜻한 ‘마음’이 스며들어 있지 않다면 북한의 체제와 인민의 마음이 열리기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중략)
그러기에 며칠 뒤의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남북간에 주고받을 것이 그 무엇이든, 한쪽은 서서 주고 한쪽은 무릎꿇고 받는 모욕이 아니라, 주는 쪽도 받는 쪽도 반듯이 서서, 물질과 함께 존경의 마음을 주고받는 동포애적 정신이 꽃피기를 기다려본다.

 
#2000년 7월19일자

 
통일 이후 주한미군을 철수해야 하며, 그에 앞서 남북관계 진전에 따른 주한미군 감축 및 남북이 각각 맺은 주변국과의 군사동맹체제 해체 등이 선결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는 18일 국회 의원연구단체인 ‘21세기 동북아평화포럼’ 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주한미군 주둔문제 토론회 주제발표에서 이같이 말했다. 리교수는 이날
"휴전협정(53년) 이후 정전협정 위반 건수는 오히려 우리가 많았다"면서 "남한이 천사이고, 북한이 악마라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1년10월06일자

특별인터뷰/ 리영희 교수에 듣는다 "언론권력 국민힘으로 견제 마땅"  

지난해 겨울 뇌출혈로 쓰러진 이후 강연과 기고등 모든 외부 활동을 중단한 채 병마와 싸우고 있는 리영희 한양대 언론대학원 대우교수(72)는 당초 건강상의 이유로 인터뷰를 한사코 고사했다.
"그냥 인사라도 드리고싶다며 간청을 한끝에 어렵사리 경기 산본 수리산 기슭에 있는 자택을 찾았을때 리교수는 ‘수고스럽게 먼길을 왔는데 내게 알맹이 잇는 애기를 듣지 못해도 서운해 하지 말라’고 재삼 당부했다.주제가 자연스레 ‘언론과 언론인’등으로 옮겨가자 그느 카랑카랑한 어조로 거침없이 말을 쏟아냄으로써 ‘이시대의 이성(理性)임을 거듭 확인시켰다.



 
"시대가 변하면 직업의 기능과 역할이 달라지기는 합니다. 그러나 기자상은 변함이 없는 것이겠지요. 가려져 있는 사실을 파헤치고 그 사실을 토대로 진실을 규명하는 것, 정치권력 등 약자를 억압하는 사회적 강자들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이 기자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권력이라는 말이 정치권력만을 의미하는 시기는 이미 지났습니다. 최근 언론기관도 엄청나게 권력화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기자에서부터 언론사주까지 권력화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 언론인들은 자기반성을 해야 하고, 또 하나의 ’권력채널‘로 변해버린 언론기관들은 바로 국민의 힘에 의해 비판.견제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을 바로세우는 길입니다."


 
"미국의 언론인 조지프 퓰리처는 ’언론과 국가(The press and the state)라는 책을 통해 ▲항상 개혁과 진보를 지향하라 ▲부정과 불의, 부패에 항거하라 ▲불편부당하고 모든 당사자에게 공평무사하라 ▲불우하고 억압받고 힘없는 자들의 후원자가 되라고 후배 언론인들에게 당부한 바 있습니다(리교수는 서재에서 퓰리처의 저서를 들고 나와 설명을 계속했다). 이를 그대로 실천하면 바른 언론, 참 언론은 저절로 구현되겠지요. 그러나 불행하게도 30여년의 군사독재 기간동안 우리 신문과 언론인들은 이를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기자들이 진실에 접근하거나 깊이있는 기사를 쓰려면 취재원 못지않은 정보를 갖고 있어야 하며 해당분야의 전문가에 버금가는 지식을 쌓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기자는 청렴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때의 청렴함은 ‘궁핍’이 아니라 정도 이상의 사치에 빠지지 않는 ‘검소한 생활’을 뜻합니다. 청렴한 생활을 하지 않으면 권력을 상대로 싸움을 벌이거나, 진실을 파헤칠 때 마땅히 각오해야 하는 박해를 결코 이겨낼 수 없어요.
기자 스스로 타락하고 부패해서는 권력을 비판하기는커녕 권력층에 얕보이게 되고 굴복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청렴함은 진실규명의 전제조건입니다"


 
#2002년10월29일자
 

원로 언론인 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73.사진)가 최근 북한 핵문제와 관련, 미국의 대북정책과 국내 언론의 보도 태도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그는 지난 23일 오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언론노조와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주최로 열린 ‘북한 핵개발 시인 사태 및 언론 보도에 관한 토론회’에서 "한반도는 지금 미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과 대이라크 정책 등 일련의 강경정책으로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기 위해 모든 군사력의 7할을 한반도 주변에 배치했던 1994년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중략)


 
토론 전 모두발언에서 그는 "민족의 명운을 좌우할 이같은 중대 사태 속에서도 일부 신문은 발행인들의 철학과 부수 확장에 얽매여 파당적으로 지면을 운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략)

그는 이어 "지난 17일 북한의 핵개발 계획이 알려진 직후 국내 언론 보도에서 미국의 입장만 있고 북한의 협상 의도나 입장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을 보고 암담함을 느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양심적인 언론인들이 노력해서 반통일적이고 수구적인 세력들에 대항해 민주적인 언론 확립은 물론 민족과 국가의 번영을 기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3년04월01일자

 

국회의 이라크전 파병동의안 처리를 앞두고 일부 대학 총학생회가 동맹휴학을 선언하고 교수들이 학생들이 주최하는 반전집회에 참가키로 하는 등 반전 및 파병반대 시위가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중략) 또 리영희 전 교수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최병모 회장, 영화배우 장미희씨 등 각계 인사 50여명은 이날 서울 명동성당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미국의 이라크전 중단과 평화실현을 위한 ‘반전평화비상국민회의’를 구성한다고 밝혔다.

 
#2003년05월24일자
 
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가 노무현 대통령의 방미후 남북관계 및 대미관계에 대한 자세변화와 관련해 "노대통령이 변한 것이 아니라 무식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리교수는 지난 21일 CBS 시사프로그램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과의 인터뷰에서 "표현이 안됐지만 (노대통령이) 국가원수로서 국제관계의 기본적 움직임에 대한 이해나 지식이나 인식이 너무도 막연했던 것 같다"고 평가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노대통령이 TV토론에 나와 병자호란 당시 최명길, 김상헌의 예를 들면서 ‘굴욕외교’ 비판을 반박한 것과 관련해 "자기 변명을 정당화하는 자세가 상당히 위험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약소국이 원하는 게 본질적으로 옳으면 굴욕적 외교도 용인되지만 민족에 자해적인 내용을 정당화하면 곤란하다는 것.(하략)

 
#2003년09월15일자

 

<1970~90년 현대사 재조명 실록 민주화 운동> 제2부 /(22)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 

"내가 글을 쓰는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하고 그것에서 그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 없고, 이웃과 나눠 가져야 할 생명인 까닭에, 그것을 알리기 위해서는 글을 써야 했다.
그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지금까지 그러했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리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 괴로움 없이는 인간의 해방과 발전, 사회의 진보는 있을 수 없다"
(‘우상과 이성’ 머리글에서)
리영희는 자신의 예언대로, ‘우상과 이성’이 출간되자 유언비어를 유포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2년 만기의 징역을 살게 된다. 그의 글쓰는 행위는 ‘이성의 몸부림이었으나 우상들에게는 도전 행위였으며, 따라서 우상의 노여움을 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리영희는 1964년 조선일보의 외무부 출입기자 시절,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는 안건을 아시아.아프리카 외상회의에서 검토 중"이란 기사를 썼다가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적이 있다. 이를 시작으로 그는 80년대 중반까지 모두 아홉 번 체포되고, 다섯 번 감옥에 갔으며, 언론계와 교수직에서 각각 두 번씩 쫓겨났다. 진실을 추구한 대가는 이처럼 혹독한 것이었다.(중략)

부시가 이라크를 침공하던 날, 그는 한시를 지어 친지 몇 사람에게 팩스로 발송했다.

"否氏狂亂不知其終(부시의 광란이 끝을 알 수 없으니)
人類自尊卽面危亂(인류자존이 위란에 직면했도다)
錦繡疆土將變火海(금수강토가 장차 불바다로 변할지니)
韓民當呼反戰平和(한민족은 마땅히 반전평화 외쳐야)"
처음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이처럼 리영희는 평화주의자이다.



#2004년01월26일자

 

원로 연속인터뷰 리영희교수 "南이 北보다 더변해야 평화로운 재통합 가능" 

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75.사진)는 남북의 재통합을 위해서는 "남한이 북한보다 훨씬 더 많이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3년 전 뇌출혈로 쓰러져 아직 후유증이 가시지 않은 리영희 교수는 지난 17일 경향신문이 마련한 원로 인터뷰에서 한.미관계와 남북문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리교수는 "최근 국내의 반전세력, 민주화세력이 성장하면서 기득권 세력의 친미적 경향이 더욱 심화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정부나 국회의 힘으로 그런 구조를 개선하길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미 예속적 구조를 벗어나려면 국민 대중의 의식개선이 최우선"이라고 강조했다. 리교수는 "남북 재통합을 위해서는 변화를 통해 서로 접근해가는 체제수렴적 방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동.서독 통일 당시 서독의 사례를 거론하면서, "남한도 사회주의 정책과 정당을 이해하는 융통성 있는 사회로 발전해야 남북한의 평화로운 재통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얼마전 송두율 교수의 재판에 방청객 자격으로 참석했던 그는 "내가 정보부에서 조사받던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리교수는 몇년 전부터 건강 악화와 노환으로 인해 집필은 물론 바깥 나들이도 여의치 못한 상태. 그는 "지난 50년간 공자적 삶을 살았으니, 이제 여생을 노자적 삶으로 보내고 싶다"며 "요즘엔 괴테와 ‘도덕경’ 같은 고전을 주로 읽으면서 나의 내면과 우주에 대해 생각한다"고 밝혔다.


#2004년07월23일자


검찰은 22일 서울고법의 송두율 교수 판결에 불복하는 상고장을 대법원에 제출했다. 송교수에 대한 집행유예 판결이 있은지 하루 만이다.(중략) 이에 앞서 송교수는 21일 밤 서울구치소 앞으로 환영나온 지인들과 간만에 회포를 풀었다. 새벽 늦게까지 이어진 술자리에는 리영희 선생(75)이 밤 늦게 직접 차를 몰고 찾아와 송교수와 술잔을 기울였다.

#2004년09월17일자

보수원로들의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목소리에 대해 진보세력을 대표하는 원로들이 발끈하고 나섰다.

 



리영희 한양대 대우교수, 강만길 상지대 총장, 백기완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등 원로 71명은 16일 서울 중구 정동 대한성공회 성당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현재 진행중인 국보법 폐지를 위한 사회적 운동을 적극 지지한다"고 밝혔다.
 
#2004년11월05일자

"한반도에 다시 반공의 시대가 찾아올까 걱정됩니다."
원로 언론인 리영희 한양대 대우교수(75.사진)가 4일 서울 안국동 느티나무카페에서 시민단체 주최로 열린 ‘국가보안법 없는 세상, 희망의 미래를 여는 토론회’에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에 대한 우려로 말문을 열었다.
(중략) 리교수는 이 자리에서 "부시의 당선이 확정되면서 미국의 이익과 자신의 이익을 일치시키려는 (국내의) 정치.경제.문화.종교 세력들이 국가보안법 존폐 또는 개정 등에 관해 맹렬하게 자기 발언을 하기 시작할 것"이라며 "국보법 폐지 관련법안의 국회통과가 그다지 낙관적이지만은 않다"고 경고했다.
그는 국보법 폐지 논란과 관련해 "48년 총선 이후 유엔이 ‘남한 단독정부’를 인정한 것을 두고 국내 위정자들이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로 자의적인 해석을 한 것으로 미신에 불과하다"며 "북한을 불법적 반란집단이라고 간주하는 국보법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2004년12월29일자

강만길 상지대 총장, 리영희 한양대 대우교수, 김성수 주교(성공회대 총장), 한승헌 변호사(전 감사원장), 이효재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명예대표 등 학계.종교계.법조계.여성계 원로 74명도 이날 오전 서울 정동 세실레스토랑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보안법의 연내 폐지를 촉구했다.

#2005년04월02일자

"이번 모임은 ‘대화’의 출간기념회지만 실제로는 28년간 미뤄왔던 ‘우상과 이성’의 출간기념회이기도 합니다. 1977년 책이 나왔을 때 불안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선생과 저녁식사를 했는데 몇 달 만에 선생이 구속돼 출간기념회가 영원히 미뤄졌으니까요." 김언호 사장이 이렇게 운을 뗐다. (중략)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아쉬움이 많아. 직접 쓴 게 아니라서 나만의 구성.논리.문장을 구사하기 힘들었어요. 꼭 넣으려고 했는데 빠진 부분이 있더구만. 정말 가난했던 60년대 아내(윤영자 여사)가 ‘시장에서 소금.밀가루.설탕을 나란히 놓고 파는데 당장 필요한 소금.밀가루만 보이더라’는 말을 했어요. 그때 나는 관념과 객관적 실체의 관계를 떠올렸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 고생이 가슴 아파요."(중략)

화기애애한 저녁모임이 끝나갈 무렵, 김언호 사장은 리영희 전집을 출간하자고 제의했다. 그러나 그는 정중히 거절했다.



"50년 동안 글과 책으로 세상을 바꾸는 계기를 제공했고 그만큼 개인적 고초도 당했어요. 나는 무대 위에서 내려왔고 그저 후배들에게 어깨를 빌려줄 뿐이야. 내 어깨를 밟고 훌쩍 앞으로 뛰어나간다면 그게 행복이지. 이제 앞에 나서지 않으려오"



#2005년06월09일자

25년전 그는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구속됐고 대학 교수직에서 쫓겨났다. 5년전 2000년 6월초 김대중 대통령이 6.15 남북정상회담에 앞서 자문을 구하자 "한반도의 위협을 조성하는 원천은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라고 단언했던 사람이다.
그는 한국 현대사에서 ‘산 지식인의 표상’으로 불리는 리영희 한양대 대우교수(76)다. 리교수가 8일 뇌출혈 후유증으로 불편한 몸을 이끌고 오랜만에 대학 캠퍼스를 찾았다. 성공회대에서 ‘나의 역정, 펜으로 싸운 반세기’를 주제로 마련한 초청특강 자리였다. (중략)





그는 강연에서 ‘지식인의 역할’에 대해 "사회를 지배하는 잘못된 사상과 관습, 가치관 등을 절대시하는 ‘우상’에 도전하고 파괴하는 것이 이성적 지식인으로서의 의무이며 그러한 우상 파괴자로서의 내 임무와 역할을 자진해서 맡아온 시간들이었다"고 회상했다.(중략)

리교수는 또 6.15 남북공동선언 5주년에 즈음한 ‘한반도와 통일’의 화두에 대해 ‘우리 내부의 문제’에 먼저 눈을 돌려볼 것을 권유했다. "통일에 이르기까지는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북한은 시장경제를 부분적으로 도입하고 남한은 국가보안법 폐지 등과 함께 사회주의를 헌법에서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한 양측의 ‘체제 수렴’을 하려면 시간도, 철학도 필요하다. 남한의 경우 미국을 비롯한 외세에 대한 인식에서 보듯 바깥에만 눈이 있고 자기 민족에게는 눈이 없는 문제가 크다."

 
#2006년05월10일자


독립운동가 심산 김창숙 선생을 연구하는 심산사상연구회는 제17회 심산상 수상자로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사진)를 선정했다고 9일 밝혔다. 연구회는 "권위와 우상이 지배하던 어두운 폭력의 시대에 올바른 세계 인식을 갖게 한 리전교수가 평생을 항일 독립투쟁과 반독재 민주통일운동에 헌신한 심산 김창숙 선생의 정신과 부합돼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2006년05월18일자

한국기자협회는 ‘기자의 날’(5월20일) 제정 기념으로 올해부터 만든 ‘기자의 혼’ 상 수상자로 리영희 선생(사진)을 선정했다고 17일 밝혔다.




기자협회는 선정 이유로 "리영희 선생은 기사뿐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도 진실을 찾고 불의에 항거하는 기자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해 기자들의 사표로 삼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췄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 2006년09월05일자

일생 동안 허위와 우상을 깨고 그 속에서 진실을 알려온 ‘참 지식인’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77.사진)가 "이제는 지적 활동을 마감한다"고 밝혔다.
리교수는 최근 출간된 ‘리영희 저작집’(전12권.한길사)과 관련, 지난 3일 저녁 경향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한 개인에게는 무한한 욕심과 집착을 버려야 할 시기가 있는데 그 시간이 온 것 같다"며 "지금까지 쓴 글들을 묶은 저작집 출간으로 지적 활동, 50여년간의 연구와 집필생활을 마감하려 한다"고 말했다.(중략)

리교수는 지금까지의 글쓰기를 통해 "진실이 거울처럼 통하는 세상을 만들려고 애썼다"고 강조했다. "우리를 총체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거짓과 허위"를 밝히고, "진실을 가린 거짓으로 권력을 행사하고 지배하려는 개인, 집단, 사상, 이데올로기"를 드러내려 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에 대해 군 원로들이 반대를 표명한 것과 관련, "오늘날 남북문제, 작통권 문제는 과거 집권세력이 거짓으로 꾸며낸 논리체계들에 의한 것"이라며 "그들이 하는 소리야말로 내가 깨우치려고 한 거짓의 논리였다"고 말했다. (중략)
리교수는 "자기가 할 수 있는 한계를 깨달을 때 이성적 인간이라 할 수 있고, 마치 자기가 영원히 선두에 서서 깨우침을 줄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은 오만"이라며 "운명에 대해 겸손하게 받아들이려 한다"고 밝혔다.




#2006년09월19일자

"이 자리에는 여러분처럼 긍정적으로 도움을 주신 분들뿐 아니라 오랫동안 나를 반대.비판하고 내 글에 대해 온갖 때를 묻히고, 심지어 핍박을 가했던 분들을 모시고 싶었습니다."
허위를 깨고 진실을 밝히는 데 일생을 바친 ‘실천적 지식인’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77). 18일 저녁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리영희 저작집’(전12권.한길사) 출간기념 모임에서 그는 의외의 말부터 꺼냈다. 리교수는 50년 집필생활을 정리하는 감회를 밝히면서 "부정적인 것으로 생각했던 사람들, 세력들, 집단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밝혔다. "나의 대자(對者) 또는 적자(敵者)로서 위치를 가진 이들"이 오히려 자신을 더욱 단련시켰다는 역설을 이야기했다.
리교수는 "그들이 강한 눈초리와 채찍과 형무소를 마련해 내가 끊임없는 자기비판과 성찰을 하게 해주지 않았다면 내 글은 위태로워질 수도 있었고 그만한 정도나마 깊이와 정확성을 가지지 못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나를 영어의 몸이 되기까지 핍박을 가했던 사람들이 만약 나를 그렇게 감시하고 비판하고 억압하고 고통주지 않았다면, 내가 자칫 성격의 부족함 때문에 연구하거나 글 쓰는 데 경거망동했을지도 모르고 학문의 깊이를 그렇게(치열하게) 추구해서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흠 잡히지 않고 내 사상과 글과 책이 가능한 한 완벽해지도록 노력했을까 싶습니다."(중략)
그는 집필생활을 마감하기로 한 것과 관련, "명심보감에 ‘순천자(順天者)는 흥하고, 역천자(逆天者)는 망한다’고도 했고, ‘족함을 깨달으면 그 삶의 위험이 없다’(知足者無殆)고도 했다"면서 "이제 족함을 깨달을 때가 되었고, 어느 정도 깨달았다"고 소회를 밝혔다.

 
#2006년11월28일자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사진)가 제1회 단재언론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단재문화예술제전추진위원회는 27일 리 명예교수가 합동통신과 조선일보 기자를 거쳐 한양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우상과 이성’,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등의 저서와 심층적인 연구활동을 통해 민주화운동의 사상적 토대를 제공하는 등 단재의 기자 정신을 계승한 참 언론인이라고 선정 이유를 들었다.

 
#2007년04월30일자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Ⅰ- [3-2]한국을 바꾼 지식인/우리사회에 큰 영향 준 국내외 저술

해전사가 한국현대사를 보는 새로운 눈을 제공해 줬다면,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1974)는 세계를 보는 새로운 눈을 깨우쳐 준 책이다. 이 책은 베트남 전쟁으로 드러난 미국 대외정책의 추악한 본질을 폭로하고, 중국사회주의의 인간적인 모습을 그렸다.
냉전 이데올로기 교육을 받았던 대학생 김동춘(성공회대 교수)으로 하여금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을 줬으며 김세균(서울대 교수)이 "밤 새워 읽었고, 그 후에도 읽고 또 읽었던" 그 책이다. 이 책은 리영희(한양대 전 교수)의 ‘우상과 이성’(2명)과 함께 "사회과학도로서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을 깨우쳐 준 고마운 책"(신광영 중앙대 교수)으로 기억되고 있다. 신광영은 "이 저술로 인해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력이 가능함을 처음으로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Ⅰ- [3-1]한국을 바꾼 지식인
 

지식인들 사이에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된 지식인은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 최장집 고려대 교수 세 사람이다. (중략)
리영희(한양대 전 교수.77)는 지난해 9월 "지적 활동을 중단한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사상의 은사’로 기억되고 있음이 확인됐다. "시대의 흐름을 이끈 70∼80년대 학번들의 이념적.사상적 출발점"(강맑실 사계절 출판사 대표)이나 "한국사회에 보기 드문 보편주의, 국제주의자로 ‘지적 거인과 같은 존재’"(조효제 성공회대 교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왜 아직도 리영희인가. 홍세화(한겨레 기획위원)는 "87년 민주화의 분수령 이후 한국사회는 새 변화를 추동할 세력을 창출하지 못했다"며 "이것이 리영희 선생의 주 활동기가 87년 이전인데도 가장 큰 영향을 준 지식인으로 꼽게 된 배경"이라고 말했다.

 
(중략) 중국전문가로서의 리영희는 외신부 기자생활을 하며 단련됐다. 합동통신.조선일보에서 해.복직을 거듭하면서도 굵직한 특종들을 남겼다. 특히 그는 베트남전쟁으로 상징되는 미국 대외정책의 추악함과 중국 사회주의의 인본주의적 모습을 서구 지식인들의 입을 빌려 소개하는 방식으로 반공주의에 맞섰다.
리영희는 기자직과 교수직에 있는 동안 다섯 차례 구속되고 모두 1012일 동안 수감생활을 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자신의 몫을 주장하지 않았다.

 
무지막지한 독재의 시대에 그의 글들은 "아무리 작게 잡아도 몽롱한 의식에 끼얹는 찬물 한 바가지"(강준만)였다. 한국 지식인 사회에서 그가 갖는 힘은 사회적 발언의 중단을 선언할 만큼 스스로 자신의 육체적, 지적 한계를 인정할 때까지 그가 의미있는 비판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윤평중(한신대 교수)이 "비체계적인 인본적 사회주의가 한국사회를 ‘시장맹(盲)’ ‘북한맹(盲)’으로 만들었다"고 리영희를 본격 비판한 것은 불과 4개월 전인 지난해 12월 계간 ‘비평’을 통해서 였다. 그러나 윤평중은 이번 경향신문 설문에서 영향을 미친 지식인으로 리영희를 꼽았다. (중략)

리영희는 민주화 이후 자신의 책들이 더 이상 읽히지 않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그럼에도 한국사회는 계속 그를 필요로 하고 있다. 왜일까. 그 대답은 백낙청, 최장집 등 후배지식인들의 왕성한 지적, 실천적 활동이 요구되는 현 정치적, 사회적 상황이 말해준다.


#2008년03월19일자

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 최장집 고려대 교수, 최병모 전 민변회장 등 108명의 진보적 사회 각계 인사들이 18일 무소속 임종인 의원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중략)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기존 정치인들이 당리당략, 정치적 고립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정치인의 참된 의무를 포기할 때 임종인 의원은 온갖 불이익과 핍박을 받으면서도 국민의 편에 섰다"면서 "진실로 국민에 속하고자 무소속으로 남은 임 의원을 시민의 이름으로 공천한다"고 밝혔다.

#2008년03월28일자

독립언론 10년 경향 / 리영희 선생,입을 열다 - "생명.자연.평화의 사회주의적 가치 받들 때"
 
난 20일 오후 경기 군포의 산본에 있는 리영희 선생 댁을 찾았다. 2006년 9월 "이제는 지적(知的) 활동을 마감한다"고 선언한 뒤 1년6개월여 만의 인터뷰였다.
2000년 11월 뇌출혈로 쓰러진 뒤 건강을 많이 회복하긴 했으나 팔과 다리가 크게 불편해 보였다. ‘선언’ 뒤 집필활동은 접었고, 산책이나 독서로 부부의 ‘건강한 삶’에 몰두하고 있다고 했다.(중략)





"경향신문 내용이 좋다는 말은 의식 있는 지식인들 사이에서 들어요. 나도 그렇고, 기획을 잘하더라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이고, 참신해요. 몇 해 보는 동안 경향이 한결 나아졌구나 하는 것을 나도 느꼈지. 난 덕담 같은 것 잘 모르지만 사명감을 갖고, 자본의 지배를 받지 않는 신문이라는 긍지를 갖고, 왜곡하지 않고, 올바른 사고와 판단을 통해 내일을 여는 국민들의 길잡이가 됐으면 해."



"한국의 지식인은 전혀 지식인이 아니야. 미국이 이라크를 침략할 때 침략이라는 사실을 몰랐고, 미국인보다 더 미국을 사랑하고, 마치 미국인들을 세계를 구제하는 평화의 사도로 착각하는 인간들이지.
(중략) 동남아나 중남미를 봐도 주체적인 주장이 나오는데, 남한 같은 곳은 내가 알기론 없어요. 반공주의는 그 자체가 창조적 사상을 갖는 인간의 자율성과 독립성, 사고의 명석함이나 건전한 세계관, 인류의 평화 등을 전부 거부하는 것이죠. 그런 사람들이 지배하는 사회가 돈 많은 소수가 지배하는 사회이고, 힘 있는 깡패나 군대, 폭력지배집단이 지배하는 국가예요.


"이명박 정부의 주요 세력, 각료, 인수위원회를 지휘했던 숙명여대 총장…. 전 국민 대상으로 영어 교육을 한다니 큰 문젯거리야. 미국의 사회, 문화, 교육, 돈, 경제, 이득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 그런 주장을 하는 것 아닌가. 국민을 전부 미국화하기 위한 노력이지.
뉴스에 무슨 영어교육 광란증 같은 문제를 놓고 이명박이라는 사람부터 시작해서 정부 주요 인사, 매스컴, 지식인, 학부형 자신들까지 온갖 사람들이 정신을 잃는 것을 보면서 맹자의 말이 생각나. 무릇 남이 나를 업신여길 때는 내가 먼저 나를 업신여긴 연후에 남이 나를 업신여긴다. 어느 가문이 기울 때에는 그 가문의 형제들이 밖에서의 업신여김을 막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가문이 스스로 그런 후에 남이 자기 가문을 쓰러뜨리는 것이다. 나라가 무너지는 것은 먼저 그 백성이 스스로의 나라를 무너뜨림으로써 그 연후 남이 그 나라를 망가뜨리는 것이다."

"안됐지만 거의 절망적이에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무슨 기능적인 지식인을 지식인이라고 할 수가 없어요. 적어도 어떤 보편적 인류·사회에 대한 생존적 가치를 위해 생각하고, 판단하고, 선악을 구분하고, 행동할 줄 아는 사람을 지식인이라고 한다면, 이른바 언론인이라고 하는 신문 만들고 방송하고 그런 사람도 지식인이지. 그런 걸 생각하면 퍽 실망스러워. 앞으로 나아질 가능성을 보기 힘들다는 게 더 문제지."




"역설적으로 내 책이 안 팔린다면 정말 행복할 거야. 이런 말을 해주고 싶어. 지족불욕 지지불태(知足不辱 知止不殆). 족함을 알면 욕됨이 없고, 멈출 줄 알면 위험이 없다, 그게 내 삶의 신조야.
감투 쓰고 나서 자기 아니면 세상이 망할 것처럼 휘젓고 다니는 사람들, 학계·정치·언론계 모두, 그런 인간들이 멈출 줄 모르는 것이거든. 우리 동양철학이 중요한 점은, 삶의 지혜 즉 어떻게 살아야 하나, 그런 가르침을 준다는 거야.
노자의 가르침이 얼마나 좋아. 내가 할 것은 이 정도면 됐다, 스스로 자기 역할과 능력에 대해 이제 그만하면 됐다, 더이상은 나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면 청산과 무릉도원에 사는 것 아닌가."


#2008년 06월03일자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79·사진)가 올해 ‘후광 김대중 학술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심사위는 "리 전 교수는 냉철한 이성으로 진실을 탐구하고 지성인의 양심으로 시대를 일깨운 우리 시대의 대표적 지식인"이라며 "그는 한국 현대사를 살아 오거나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지식인의 시대적 사명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귀감이 됐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2008년06월06일자

“(한·미 쇠고기 협상은) 이명박 정부가 자신을 지지하고 뽑아준 국민들의 건강과 이익을 생각하기보다는 미국의 체면을 먼저 생각하고 권력자들에게 아첨하기 위해 준비한 선물이다.”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79·사진)는 이명박 정부의 쇠고기 협상 수용 배경을 한·미관계의 해석을 통해 이같이 설명했다.
5일 오후 전남대 국제회의동 제1세미나실에서 ‘한·미관계의 사디즘(Sadism)과 마조히즘(Masochism)’이란 주제로 열린 특별강연에서였다. (중략)





리 교수는 이날 "이명박 대통령이 부시 미국 대통령을 만나, 사실상 다 정해놓고 미국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가져다 바친 것"이라며 "이 문제는 협상부터 잘못됐다. 이렇게 사태가 악화될 것이라는 것을 (한국 정부도) 다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중략)

리 교수의 목소리는 현 정부가 시도하려 한 ‘영어몰입교육’을 언급하면서 더욱 격앙됐다. 리 교수는 "현 정부의 영어몰입교육은 정신적 자각 없이 민족의 혼을 잃어버리는 자기상실의 지름길"이라며 "언어는 우리 정신과 가치관이 같이 가야 하고 중요한 문화중심적 요소인 만큼 똑바로 알고 제대로 판단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리 교수는 "이렇게 굳어진 친미 일색 정책과 사고로는 영원히 미국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서 "자기상실, 자기부정, 열등감 등에서 비롯된 숭미주의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2008년12월12일자

 

이권우의 자서전 읽기 (12) 리영희의 ‘대화’ 

자서전을 쓰고 나서 전문가들한테 상찬받기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자기 삶을 미화했다고 비난받기 일쑤고, 문제적인 대목을 충분히 해명하지 않고 넘어갔다고 욕먹기 십상이다. 더욱이 성공한 사람들의 삶을 다른 누군가가 써주는 천박한 자서전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의 경우, 널리 인정받는 자서전을 만나기는 결코 쉽지 않다. 다행히 예외가 있으니, 리영희의 자서전이 그렇다.
리영희의 자서전은 두 권이다. 첫 권은 1988년 나온 (창비)이다. 일제 식민기를 보낸 소년시대부터 이승만 정권말기에 이르는 삶을 회고한다. 이 자서전은 잡지에 연재된 바 있는데, 당시에 문학평론가 유종호는 “이러한 글을 문학으로 수용하지 못하는 문학관은 옹졸하고 편협한 것임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평한 바 있다. 두 번째 권은 2005년 나온 (한길사)이다. 앞의 자서전을 전사(前史)로 해서 자신과 삶과 사상을 되짚어보고 있다. 는 대담 형식으로 쓰여진 자서전이다. 건강이 나빠져 집필이 어려워지자 문학평론가 임헌영씨와 대화를 나누고, 이를 정리했다. 이 책 역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리영희를 비판한 윤평중도 “자서전 문화가 척박한 우리 문화지형의 질곡을 일거에 깨트린 쾌거인” 역저이며, “자화자찬만이 넘쳐나는 불모의 다른 자서전들과는 완전히” 다르다며 높이 평가했다.(하략)


#2008년12월22일자


‘시대의 양심’ 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가 본지 13일자 19면에 게재된 기획 칼럼 ‘이권우의 자서전 읽기’를 읽고 자신의 자서전 를 다룬 것에 대해 감사의 뜻이 담긴 편지(사진)를 최근 보내왔다. 2000년대말 뇌출혈로 쓰러진 뒤 오른손 사용이 불편한데도 리 교수는 200자 원고지에 직접 한 자 한 자 힘을 줘 편지를 썼다. “경향신문의 기획기사가 언제나 참신하여 늘 주목하고 있던 차에”로 시작되는 편지를 통해, 리 교수는 필자 이권우씨에게 보내는 연하장을 동봉하고 전교(轉交)




#2009년05월28일자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장의위원회 구성이 27일 확정됐다.(중략) 학계에서는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 등이 장의위원에 포함됐다.

#2009년07월02일자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80)는 1일 “지난 1년 반 동안 이명박 통치시대는 비인간적, 물질주의적, 인권이 존재하지 않는 파시즘 시대의 초기에 들어섰다”고 말했다.
리 전 교수는 이날 저녁 인권실천시민연대(인권연대) 창립 10주년을 맞아 서울 조계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특강을 하고 “감대중·노무현 시대를 합친 10년은 그 전 30여년에 비하면 놀랄 만큼 성숙한 인권의 시기였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 시대 이 땅에서 생존했던 생명체나 개체는 현대적인 인권이란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이 아니었다. 동물이었다”면서 “다행히 그 속에서 투쟁한 많은 선구자, 선배들 목숨의 대가로 지난 10년 부족하나마 인간다운 개체로서 되살아났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던 것이 1년 반 만에 사회가 또 하나의 역사적 전환기를 맞이해 파시즘의 시대에 들어갔다”며 “역사는 이뤄진 열매 위에 또 하나의 큰 열매가 열리는 식으로 진행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정신을 늦추면 언제든 역전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리 전 교수는 “현재 이명박 정권의 물질밖에 모르는, 인간이 지향하고 숭배해야 할 가치를 돈밖에 모르는, 그리고 인간의 존재가치가 말살되어 가는 이런 정권을 과거 40년의 고생 끝에 받아들인 것은 우리 자신들의 책임”이라며 “이는 우리의 실수이고, 개개인의 판단착오이고, 역사의식의 잘못이었다”고 덧붙였다. 

(상보 요약)
리 전 교수는 우리나라 인권의 시기를 4단계로 나눴다. 이승만 정권 시기를 1단계, 박정희·전두환 등 군사정권이 2단계, 노무현·김대중 정권을 3단계로 규정하고 이명박 정권을 4단계라고 지칭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에서 그나마 인권이 존재했던 시기는 노무현·김대중 정권의 10년밖에 없다”며 “그후 1년 반 만에 사회가 또 거꾸로 가고 있다”고 현 정권을 비판했다.
리 전 교수는 1980년대 감옥에서 읽었던 <레미제라블>을 예로 들며 우리나라의 후진적인 인권 상황을 비교했다. 그는 “<레미제라블>은 1830년대 프랑스 상황을 쓴 소설인데 거기에 경찰 자베르가 다 잡은 장발장을 체포영장이 없다며 놓아주는 대목이 나온다”며 “나 자신이 영장도 없이 체포되어 감옥 안에서 책을 읽었는데 그때 느낀 감동, 쇼크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우리나라의 인권상황이 180년 전 프랑스 상황만도 못한 것 아니냐”고 말해 청중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정리 김종목 기자 jomo@khan.co.kr, @jomosam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