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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리즈=====/김종목의 미디어잡설

고난의 하숙과 주거권


*이 글은 <주간경향>에 연재중인 [정동늬우스]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ㅅ씨가 받아든 계약서에는 ‘일요일에는 식사가 제공되지 않는다’는 문구도 적혀 있었다. (중략)학생들에게 6개월~1년치 하숙비를 선불로 요구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하숙집에 ‘보증금’ 개념까지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신촌 일대를 중심으로 그동안 하숙집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보증금을 선불로 내게 하고, 1년 이내에 나갈 경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도록 하는 불법적인 계약까지 자행되고 있다.(2011년 3월 12일자 “보증금 필수, 휴일 밥 없다”…야박해진 하숙집)


전·월세난이 개강을 앞둔 대학가에도 몰아치고 있다. 15일 서울 흑석동 중앙대 앞 골목길 담장에 빼곡하게 붙은 하숙집 벽보. 한 학생이 벽보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김세구 선임기자

하숙집. 예전 토·일요일이면 하숙집 ‘엄마’ ‘이모’는 삼겹살을 구워줬다. 점심은 옵션이 아니었다. 하지만 보온밥통엔 밥이, 식탁엔 반찬 몇 가지가 남았다. 학교 식당 밥값도 아껴야 했던 가난한 학생들은 점심 때면 하숙집으로 돌아와 식탁보를 들췄다. 요즘 삼겹살은커녕 일요일엔 밥 구경하기조차 힘들게 됐다. ‘훈훈한 온기’도 점차 사라졌다.


예전 하숙집은 가난해도 인심이 넘쳐났다. 학생들은 하숙집주인을 엄마나 이모, 고모로 불렀다. 사진은 1982년 한 대학가 하숙집에서 함게 밥을 먹는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유례없는 한파에도 불구하고 ‘가스비가 많이 나온다’며 난방 공급 시간까지 줄이자 김씨는 ‘냉골’인 방바닥에 있기 싫어 식사시간대를 빼고는 도서관에 틀어박혀 있다.(2011년 2월 16일자, 방값은 뛰고 인심마저 각박 ‘우울한 하숙생’)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도 최근 ‘김어준의 뉴욕타임스’에 나와 캐나다 토론도 유학 시절 겪은 일을 들려줬다. 홍 소장은 한국사람이 운영하는 하숙집에 세들었다. 영하 20도. 주인은 난방비 아끼느라 전기난로 하나 달랑 던져줬다. 온도계로 재보니 집안 온도는 14도. 캐나다의 한국 현지화는 이렇게 이뤄진다. 홍 소장 말이다. “(한국에서) 지난 반 세기 동안 세들어 사는 건 더부살이다. 슬픈 일이 있는 걸 당연하게 여기게 한다.”

캐나다의 한국인 하숙집이건 한국의 하숙집이건 만족도는? 낮을 수밖에 없다.

자취 대학생 10명 중 4명은 최저 주거기준 평수인 3평 이하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 YMCA는 지난 1월부터 두달 동안 전·월세, 하숙, 고시원 등에서 거주하는 전국 대학생 706명을 대상으로 ‘대학생 주거실태’를 조사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10일 밝혔다. 조사 결과, 주거형태는 월세가 58%로 가장 많았고, 하숙(36%), 학교기숙사(23%), 고시원(22%)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전세는 13%로 제일 적었다. 하지만 주거 만족도는 전세가 59%(만족 52%, 매우 만족 7%)로 제일 높았고, 학교기숙사(46%), 월세(43%), 하숙(32%) 등의 순을 보였다.(2009년 3월 10일자, 자취 대학생 10명 중 4명 “3평 이하에 산다”)

한때 대학생들이 잘 나가던 때도 있었다. 80년대 후반 학생과외 허용 이후 돈이 대학가에 흘러들어오면서 대학 주변 유흥가가 번창하고, 학생들은 합숙 대신 독방 하숙방을 찾았다. 컴퓨터 오디오 구입이 늘고, 하숙방에서 신문과 우유를 배달받는 학생도 많았다. 아래는 89년 당시 대학가 세태를 다룬 경향신문 기사.







이런 분도 있다. 최필금(아래 사진)씨. 고려대 앞에서 하숙집을 25년 운영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고려대에 학생들을 위해 써달라며 1억원을 냈다. 이 정권도 시민을 아껴줬으면 하는 바람.

최씨는 “예전 하숙집은 사람 사는 이야기가 있는 곳이었는데, 이제는 ‘원룸시대’이다보니 분위기가 좀 달라졌다”면서 “그래도 졸업 후 사회로 진출한 하숙생들이 찾아와줄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꿈이 있다면, 각박해지는 세상 속에서 좀 더 서로 아끼자는 것”이라고도 했다.(2010년 11월 4일자. “우리 하숙집 아주머니 최고” 고려대에 1억 발전기금 쾌척)

하숙집 주인 탓만 할 수 있나. 이들도 딱한 사정이다. 최근 한 통계를 보면, 지난 2월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4.5% 올라 2008년 11월(4.5%) 이후 27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한파와 폭설로 배추·파·고등어 등 신선식품 물가가 25.2% 올랐고, 구제역으로 돼지고기(35.1%)·수입쇠고기(17.3%) 가격이 급등했다. 중동사태로 국제유가가 뛰면서 휘발유(11.1%)·경유(14.6%) 등 석유류 제품 물가도 12.8% 올랐다. 부식비와 난방비가 오를 수밖에 없다. 고물가 폭탄을 맞은 하숙집 주인의 서러운 심정도 헤아리며 그저 ‘고난의 하숙’을 이어가면 될까.

홍기빈 소장의 토론토 하숙집 이야기는 ‘14도’ 서러워하는 걸로 끝나지 않는다. ‘선진국’ 캐나다는 ‘스웨덴급 복지국가’ 한국과 다른 점이 있다. 한 겨울엔 집 주인이 세입자의 방 온도를 21도 이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집주인이 이를 어겼을 때 시청에 알리면 즉각 나와 시정조치를 취한다는 것. 이런 게 바로 주.거.권이다.

2008년 뉴타운 개발로 하숙·자취난이 심화되었을 때 지자체와 대학이 이를 외면하자 학생들이 주거권 공론화에 나섰다. 중앙대가 있는 흑석동은 2006년 25만원 하던 하숙집이 2008년 45만원으로 뛰었다.

중앙대학교 비상대책위원회는 최근 동작구청과 대학 측에 흑석뉴타운 내에 학생들이 거주할 수 있는 기숙사형 임대아파트를 할당해줄 것을 요구했다고 19일 밝혔다. 흑석뉴타운 개발로 하숙집 등이 철거되는 바람에 하숙비와 월세가 폭등하고 아예 방을 구하기도 힘들어졌기 때문이다.(2008년 8월 20일자, 대학생들 “뉴타운내 방을 달라”)

2010년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학생들의 주거권 목소리는 더 커졌다.

연세대 총학생회는 자취생들이 전·월세 보증금 저리 대출을 받을 수 있는 ‘달팽이 운동’을 추진 중이다. (중략) 이화여대 총학생회는 연대 총학과 함께 지방선거 후보들에게 ‘20대 임대주택사업’을 직접 요구하고 나섰다.(중략) 고려대 총학생회는 “종암동 재개발로 다세대 주택들이 한꺼번에 사라지면서 하숙집·자취방 기근과 가격 급등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며 재개발 반대·조정을 요구하는 공식 서한과 의견서를 성북구청장과 국회에 각각 보냈다.(2010년 5월 10일자, ‘지하방 탈출하자’ 학생운동 활발)

우석훈 2.1연구소 소장도 지방선거 당시 경향신문에 기고한 칼럼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치공세로 정신없는 오세훈 후보나 한명숙 후보 모두 정작 시민이기도 한 20대의 주거권 문제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땅투기에만 관심 있는 대학들도 기숙사 확충에는 관심이 없고, 대학 주변의 상대적으로 쌌던 자취방들도 뉴타운과 재개발 등으로 학생들이 학교에서 더 먼 곳으로, 더 변두리 지역으로 내몰리는 실정이다. 지금 우리는 ‘가난한 20대’들이, 혹은 부모로부터 독립한 20대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창 없는 방’·반지하·고시원에서 뭉그러지고 있는지, 애써 못본 척하지만 현실은 잔인하다. 이 헌법적 권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오세훈 후보를 비롯한 여야 주요 후보들에게 묻는다. 당신들은 이들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 고시원의 그들, 쪽방의 그들, 그렇게 뭉개진 20대들의 꿈에 어떤 약속을 줄 수 있는가? 지금의 토건경제를 대표하는 한나라당과 민주당, 방을 달라는 가여운 이들의 연약한 목소리에 부디 답을 해주시기 바란다.(2010년 5월 15일자, 시론- 20대 주거권, 후보들에게 묻는다)

지방선거는 끝났지만 우 소장의 이 질문들은 유효하다. 이 헌법적 권리는 여전히 오리무중이기 때문이다.

<김종목 경향신문 기자 jom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