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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공감]민중의 적, 기자의 일

“민중의 적, ‘열일’하고 있음(enemy of the people, working hard!).” 미국 볼티모어에 사는 친구 존이 페이스북에 사진과 함께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의 포스팅을 올린 것은 2018년 6월29일 새벽이었다. 사진 속의 남자 넷은 주차장에 세워둔 픽업트럭 짐칸에 노트북 컴퓨터를 올려놓고 전화로 통화 중이거나 타이핑을 하고 있었다.


존이 올린 수수께끼 같은 포스팅이 무슨 뜻이었는지를 안 건, 그로부터 몇 시간 후였다. 미국 동부 시간으로 6월28일 오후 2시30분경, 메릴랜드주의 항구도시 애너폴리스의 지역신문인 ‘캐피털(Capital)’에 괴한이 침입해 기자 네 명, 영업직원 한 명 등 다섯 사람을 총으로 쏘아 사망케 한 사건이 벌어졌던 거다. 존이 ‘열심히 일하고 있음’이라는 사진 설명을 붙였던 사람들은 생존한 ‘캐피털’ 기자들이었다. 픽업트럭이 서 있었던 곳은 그들의 신문사 건너편에 있는 쇼핑몰의 주차장. 총격사건의 와중에 그들은 자신들에게 벌어진 사건을 기사로 작성하고 있었다.


현장에서 경찰에 체포된 총격범은 캐피털의 보도에 원한을 품은 재러드 라모스라는 남자였다. 캐피털과 라모스 간 악연은 그가 고교 동창을 스토킹해서 처벌받은 것을 캐피털이 보도한 게 발단이었다. 라모스는 보도로 자신의 명예가 훼손됐다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캐피털의 손을 들어주었다. 판사는 신문 보도가 “공적으로 획득할 수 있는 자료에 근거했고, 부정확하다는 증거가 전혀 없다”며 소를 기각했다.  


그러나 ‘공적 자료에 근거한 진실 보도’라는 법원의 판단이 라모스의 분노를 잠재우지는 못했다. 라모스는 트위터를 통해 지속적으로 캐피털의 기자들을 공격했다. “캐피털이 발행 중지되는 꼴을 보면 즐거울 거야. 하지만 그 전에 H(기사를 쓴 기자)와 M(당시 발행인)의 숨통이 끊어지는 걸 보는 게 더 나을 거야.” 라모스의 트위터 계정 프로필 사진은 그의 스토킹 사건을 보도한 기자의 얼굴이었다. 


잊고 있었던 이 사건을 다시 떠올린 것은 지난주 발표된 2019년 퓰리처상 수상자 목록에서 캐피털의 이름을 보았기 때문이다. 퓰리처상 선정위원회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슬픔의 시간에도 지역사회를 위해 복무하며 보도를 멈추지 않는 불굴의 자세를 보여주었다”며 캐피털에 특별상(special citation)을 주었다.   


총격 당일 밤, 캐피털 기자들은 온라인판으로 사건을 보도했다. 살아남은 기자 10명이 기사에 이름을 올렸다. 사건 현장에서 책상 밑으로 몸을 숨겨 목숨을 구했던 기자 데이비스는 “총을 든 남자가 편집국 유리창에 총을 쏜 뒤 들어와 직원들을 향해 난사했다”고 사건 정황을 증언했다. 한 기자는 사건 발생 4시간여 후 “내가 이거 하나는 말할 수 있어요. 우리는 내일도 빌어먹을 놈의 신문을 발간할 겁니다”라는 트윗을 올렸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CNN은 말할 것도 없고 전 세계 유수의 언론들이 미국 언론 역사상 최대의 희생자가 발생한 이 사건을 수시간 내에 인터넷으로 전했다. 그러나 일일 발행부수 3만여부, 20명 남짓의 기자가 일하는 이 지역신문사는 이튿날 아침 늦은 소식을 담은 신문을 발간했다. 자신의 공동체에서 벌어진 일을 독자들에게 알리는 것이 자신들의 존재 이유라는 것을 늘 해오던 일로서 말한 것이다. 


친구 존이 페이스북 사진 속의 캐피털 기자들을 ‘민중의 적’이라고 부른 것은 다분히 자국의 언론 상황을 풍자한 것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뉴욕타임스, CNN 등 자신에게 비판적인 언론들에 분노를 터뜨릴 때마다 언론이 ‘민중의 적’이며 그들의 보도가 ‘가짜뉴스’라고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언론이 진실을 보도하지 않을 때 기자들은 직무유기로 ‘민중의 적’이 된다. 그러나 진실을 말할 때도 언론은 ‘민중의 적’으로 공격당할 수 있다. 그 두 미움 사이에서 언론이 위태롭게 딛고 서야 하는 외줄은 그럼에도 언제나 진실일 수밖에 없다. 탈진실의 시대에도 캐피털의 기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정은령 언론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