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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기자칼럼]이름 석 자만 쓰는 이유

지난해 12월 ‘기자칼럼’을 시작할 때부터 인물은 이름 석 자만 써왔다. 마감하고 보면 부끄러운 글이지만 줄이기 힘들 때가 많다. 직함만 빼도 몇 자 더 욱여넣을 수 있다. 늘 ‘직함 과잉’이라고 여겼다. ‘○○○ 전 장관’이라 적고 괄호에 ‘○○대 명예교수’라고 써넣는 건 한국 언론의 오랜 습관 중 하나다.

 

대부분의 시민이 아는 인물이어서 적지 않았다. 유명인들은 이름 자체가 간판이고 권력이다. 성씨 한자로도 존재감을 드러내는 이들도 있다. 요즘 기사제목에 ‘문’이라고 쓰면, 대통령을 가리키는 건 누구나 안다. 역대 대통령도 박·이·노·김으로 줄여 쓰곤 했다. 다들 아는 사람이 아니면 ‘○○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나 ‘○○○비정규직지회 대의원’이라고 밝힌 뒤 이름 석 자를 썼다.

 

탈권위와 소통 행보를 이어가는 문재인 정부에서 호칭을 두고 고민할 줄은 몰랐다. 3기 민주화 정부에서 예상하지 못한 문제다. 여러 시민, 문재인 지지자들이 ‘김정숙씨’ 같은 표현에 항의했다. 다소 거친 표현과 일관되지 못한 표기 원칙을 지적했다.

 

여러 항의·비난·비판을 들여다봤다. 마구잡이 욕설부터 엄정한 비판까지 많은 글을 읽었다. 존칭·표기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었다. 이른바 한경오(한겨레·경향신문·오마이뉴스)에 대한 분노는 멀리는 노무현의 비극적 죽음에 닿아 있다. 지지자들은 문재인 정부에서도 예전처럼 검찰이 발표하거나 흘린 것을 그대로 받아쓰던 언론 행태가 되풀이될까 우려한다.

 

1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사저에서 청와대 관저로 떠나는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주민들과 인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가까이는 대선 과정에서 몇몇 보도가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그중 하나가 경향닷컴의 ‘팔사오입’(4월13일)이다. 문재인의 지지율(44.8%)과 안철수의 그것(36.5%)을 온라인에 내보내며 각각 44%와 37%로 제목을 달았다. 기자는 소수점까지 바로 적었는데, 모바일팀이 온라인으로 줄여 옮기다가 실수했다. 경마식 여론조사 편집을 안 하려 애썼지만, 판세에 변곡점이 생겨 내건 기사였다. 수치에 <安, ‘유치원 발언’ 후 급등세 주춤> 제목을 달아 주요 뉴스단에 편집했다. 종이로 치면 1면에 넣은 것이다. 단순 실수가, 그것도 확인하자마자 바로잡은 실수가 음모론으로 확대 재생산됐다. 편들려는 ‘음모’를 꾸몄다면 안철수에게 불리한 이 뉴스를 아예 온라인에 보이지 않게 처리했을 것이다.

 

잘못은 잘못이다. 대선 전 5월1일 나온 ‘녹색평론’ 5~6월호에 <중립에 기어를 넣고는 달릴 수 없다>(이봉수 지음)에 관해 서평하면서, 나는 이 일을 썼다. “진보언론 보도나 검증에 대한 시민들의 격렬한 항의는 과열된 대선 탓도 있지만 그간 신뢰를 제대로 구축하지 못한 진보언론 잘못도 있다. (…) 단순 실수를 두고 거센 항의를 받으며 억울하기도 했지만, 결국 사소한 실수조차 용납하지 않는 엄정함이 부족했다. 여러 시민들이 단순 실수를 두고 특정 후보자를 지지하는 ‘의도’가 들어 있다고 봤다면 먼저 성찰해야 할 일이다.” 모바일팀장인 나는 이 ‘팔사오입’의 일선 책임자다. 이 칼럼을 빌려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린다.

 

최근 호칭과 표현, 사진 편집을 두고 불거진 ‘한경오’ 비판에 가슴이 쓰라렸다. “이명박·박근혜 때는 입도 벙긋 못한 언론 주제에…”라는 말을 들으며 답답하기도 했다. 지난 9년 반 동안 비판 보도에 매진하던 여러 동료 얼굴이 떠올랐다. 서운한 말이지만 결국 취재·보도를 발전시키라는 채찍질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엇을 성찰할지 고민한다. 그건 저널리즘 기본 원칙이다. 언론이 복무할 대상은 민주공화국 시민이다. 복무 핵심은 시민에게 위임받은 권력에 대한 감시·비판이다. 감시자 역할이 위축되지 않으려면 엄격한 취재윤리 준수와 사실 확인에 기초한 정밀한 육하원칙 서술, 풍부한 맥락까지 담아내는 과제를 소홀히 해선 안될 것이다. 이는 시민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기도 하다.

 

모바일팀 김종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