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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미디어 격변기 ‘비용 지불 의사’ 독자층 콘텐츠 생산해야"

미디어 격변기 활로는 양질의 콘텐츠”
 글·사진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9월1일자 보도

‘온라인 혁명’ ‘소셜 미디어 혁명’ ‘스마트폰 혁명’ ‘아이패드 혁명’…. 뉴미디어가 등장할 때마다 ‘혁명’이란 피냄새 나는 단어가 동원된다. 강정수 연세대 커뮤니케이션 연구원(사진)도 “다양하게 수사어구로 사용되는 ‘○○ 혁명’이라는 표현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그에겐 피흘려 쓰러져 나가는 시신들이 보이고, 배고픈 군중에게 ‘빵 대신 케이크를 먹으면 되잖아’라고 말하는 마리 앙투아네트가 곳곳에 보인다. 대변동의 기미를 잘 느끼지 못하는 이들 때문에 오히려 미디어가 ‘혁명의 시대’를 관통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강 연구원은 저널리즘의 새로운 생태계와 비즈니스 모델을 거침없이 주장하는 소장 미디어 학자다. 프랑스 혁명 비유를 든 것은 기존 체제와 질서를 근본에서 뒤흔드는 미디어 변동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아이폰이 나오고 기업·소비자의 충격이 컸는데, 저간에 흐른 것은 ‘(시장) 파괴적 기술(disruptive technology)’의 등장입니다.”

강 연구원은 “이전 파괴적 기술의 예는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인데, 생긴 지 얼마 안되는 모바일 업체(애플)가 만든 어떤 상품(아이폰)이 불쑥 튀어나와 기존 모바일 시장질서와 상품을 파괴하고 교란하며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다양한 연관 사업자들이 아이폰·아이패드로 시장을 재편하면서, 앞길을 예측하기 힘든 공포스러운 분위기도 만들어진다. 강 연구원은 이런 공포와 충격을 두고 ‘아이-트라우마(i-trauma)’라고 이름 붙였다.

강 연구원은 미디어 격변 속에서 언론의 생존 방식을 되묻고 비즈니스 모델의 한계를 지적한다. 그는 “유럽의 수많은 언론기업이 혁신팀을 만들어 밤낮 안가리고 연구하면서도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못 내는 이유는 근간의 경제질서, 소비질서 패러다임이 변했기 때문”이라며 “새 패러다임과 새 질서에 맞는 온라인 콘텐츠를 조직해야 한다”고 했다.

최근 국내외 언론의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한 여러 시도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강 연구원은 콘텐츠 유료화의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말한다. 아이패드 앱 판매 시작 이후 최근까지 20위권에 오른 앱 가운데 뉴스 앱은 하나도 없다. 대부분 게임·사무용소프트웨어·멀티미디어 앱 등이다. 미국의 ‘뉴스투데이’의 종이신문 구독자는 35만7000명인데, 지난 1년간 온라인 뉴스 유료 구독자는 35명이었다. “클릭 몇 번이면 무료 뉴스가 넘쳐나는 데다 ‘유료화 담장’ 뒤에 있는 글과 동영상이 훌륭하다 해도, 독자들이 그 가치를 알 길이 없는 상황에서 유료화 성공은 어렵다”고 했다.

온라인 뉴스를 아이패드나 아이폰에 그대로 옮기거나 종이신문을 넘겨보는 듯한 가상체험 식의 ‘앱’ 또한 ‘고품격 저널리즘’과는 거리가 멀다. 강 연구원은 “미디어 융합을 ‘원 소스 멀티유스’ 정도로 이해하고, 종이 신문용으로 만든 기사 하나를 여러 곳에 사용할 수 있다는 생각은 곤란하다”면서 “아이패드는 종이가 아니고, 온라인 뉴스도 종이신문의 파생상품이 아니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고 했다.

강 연구원은 대안으로 영미에서 실험 중인 새로운 저널리즘을 예로 든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트위터 등으로 독자 의견과 새 관점을 덧붙여 기사를 계속 수정 보완하는 ‘서스태이너블 리딩(sustainable reading)’ 같은 ‘지속가능한 읽기’를 시도하고 있다. 편집회의를 동영상으로 찍어 유튜브로 올리는데, 강 연구원은 “기사 제작 과정 전반에서 독자들과 소통하고, 그 소통을 저널리즘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소셜 네트워크’의 사례”라고 말했다. ‘데이터 저널리즘’이란 것도 생겼다. 강 연구원은 “영국 ‘가디언’은 45만건의 정치자금 지출 내역을 웹 사이트에 올리면서 독자와 취재 소스를 공유해 기삿거리를 찾았다”고 전했다. 사회·지역 현안을 두고 독자들이 공동 기금을 마련, 기자를 고용하는 일종의 용역보도도 생겨났다.

미국에선 단순 보도자료 활용 기사를 인도에 아웃소싱 하는 사례도 있다. 기자들은 보도자료에서 벗어나 독자와 소통하는 기획·심층기사에 투입된다. 미디어 격변기 언론 위기의 본질은 콘텐츠 문제에서 비롯되고, 해결책과 대안도 양질의 차별적 콘텐츠 생산에 달려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양질의 공짜 뉴스 제공’으로만 살 수 있나. 강 연구원은 ‘소셜 마이크로 페이먼트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플래터’를 거론하며, “뉴스 독자들이 공짜를 좋아하리라는 편견을 버리라”고 말한다. “이 시스템은 기부라기보다 독자들이 좋은 기사에 고마움을 표하고, 또 다음 나올 기사에 대해 미리 비용을 지불하는, 일종의 ‘생큐 이코노미(Thank you Economy)’ ”라며 “2008년 촛불집회 때 수만명의 시민이 경향신문을 자발적으로 구독한 것도 생큐 이코노미의 일종”이라고 했다. 또 “양질의 콘텐츠에는 양질의 광고가 따라붙기 마련”이라며 “다만 10년 안팎의 머지않은 시점에 종이는 소멸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미디어 격변기에 맞게 ‘비용 지불 의사’가 있는 독자층에 들어맞는 콘텐츠를 생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