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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미디어 세상]구태 못 벗은 대선보도

바야흐로 대선 시기다. 대통령 선거는 언제나 매우 중요한 선거임은 물론이다. 그렇지만 이번 대선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국정농단을 초래한 대통령의 파면에 따른 보궐선거이기 때문이다. 지역감정, 왜곡된 향수, 과장된 선거 공약 등에 눈멀어 대통령을 잘못 뽑았던 과거를 반성하고, 제대로 된 주권 행사로 주권자를 진정으로 대변하는 ‘대표자’를 뽑아야만 하는 중요한 선거다. 언론이 주권자의 올바른 선택을 돕기 위해 깊이 있는 정보제공과 철저한 인물, 공약 검증을 해야만 한다. 국정농단과 파면을 되풀이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국정농단을 묵인 또는 동조했던 언론들의 철저한 자기반성과 사회적 책임감이 필요한 시점이다.

 

하지만 지금 언론에서 그런 모습을 발견할 수 없다. 작금의 대선보도는 이전 선거 시기 보여줬던 편파 왜곡보도의 판박이다. 무엇보다도 신문방송의 머리기사를 장식하거나 지면을 잠식한 여론조사 결과 보도 행태는 매우 심각하다. 내 주권을 대변할 사람을 뽑는데 후보의 자질이나 공약 관련 정보보다 다른 사람의 지지 여부가 더 중요할까? 일부 참고 자료로 쓸 수는 있겠다. 하지만 거의 매일 유권자들이 후보자의 주장이 아닌 다른 유권자의 맘이나 살피고 있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선거보도 비판에서 등장하는 단골 메뉴 ‘경마저널리즘’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게다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KBS와 연합뉴스가 공동으로 의뢰한 여론조사를 담당한 ‘코리아리서치’에 15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표본추출 과정의 정보를 실제와 다르게 등록했다는 이유다. 다른 조사 결과들과 달리 안철수 후보가 문재인 후보를 앞섰다는 워낙 예민한 조사 결과이다 보니 주목을 받고 검증이 됐지만 다른 여론조사들에는 문제가 없을까? 여론조사를 활용한 보도를 근본적으로 고민해봐야 한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자유한국당 홍준표, 국민의당 안철수, 바른정당 유승민, 정의당 심상정 후보(왼쪽부터)가 23일 서울 영등포구 KBS에서 열린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최 대선후보 초청 1차 토론회에 앞서 준비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인물 검증은 선거 보도의 필수항목이다. 그런데 실제 언론의 인물 검증기사에는 의혹만 있고 검증은 없다. 상대 후보들이 선거전의 일환으로 무책임하게 내놓는 의혹제기는 기사화되지만 일부 언론을 제외하고는 그 의혹을 검증하는 기사가 없다. 참 쉽게 기사 쓴다. 따옴표 저널리즘의 전형이다. 백번 양보해서 새롭게 제기된 의혹이야 그렇다 쳐도 오래전부터 반복되는 의혹제기라면 언론의 검증 취재가 있어야만 했다. 의혹만 넘치는 ‘검증’ 보도는 정치 혐오만 양산할 뿐이다.

 

공약 검증도 부실하기 짝이 없다. 공약 전달이나 비교에 머물 뿐이다. 공약의 실현 가능성 검증은 언론의 기본 임무다. 더 나아가 공약의 적절성도 검증해야 한다. 아무리 장밋빛 공약이라도 유권자인 시민의 삶과 관련하여 보면 그 우선순위가 떨어질 수 있다. 언론은 유권자인 수용자를 대신해서 유권자의 관점, 즉 유권자 의제를 중심으로 공약을 검증해야 한다.

선거는 단순히 대표자 선출이라는 일회성 행사만이 아니다. 선거는 대표자를 뽑는 행위인 동시에 정치 학습장이기도 하다. 유권자가 정치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이다. 작금의 언론보도가 유권자의 정치적 성장과정에 기여하고 있을까?

 

아직도 구태에 머물고 있는 선거보도를 보며 답답한 이유는 그들이 처한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신문의 위기에 이어 방송의 위기라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것은 저널리즘의 위기다. 수용자는 전통적인 신문과 방송이라는 언론 매체를 접할 필요가 없다고 느낄 것이다. 새로운 플랫폼이 있고,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 생산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제 수용자까지 생산자가 되는 시기에 이르렀다.

 

로봇이 기사를 쓰는 세상이 됐다. 특히 사건의 구조가 단순한 금융이나 스포츠 기사는 컴퓨터가 더 정확하고 빠르게, 그리고 맛깔나게 쓴다고 한다. 언론, 언론인의 존재가 부정당할 위기에 도달한 것이다. 또 2016년 미국 대선 이후 가짜뉴스는 세인의 관심사가 됐다. 한 연구에 따르면 진짜뉴스와 가짜뉴스를 구별해내는 수용자가 1.8%에 불과하다고도 한다. 전통적인 조직을 갖춘 언론의 존립이 흔들린다.

 

워싱턴 포스트의 편집국장 마틴 배런은 2015년 ‘언론은 불난 사실이 아니라 왜 불이 났는지를 보도해야 한다’는 말로 지금 언론을 진단하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제시했다. 즉 사건이 아니라 사건의 원인을 보도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건을 전달하는 것은 이제 로봇이 대체할 수도 있고, 수용자는 심층성·전문성이 부족한 언론의 기사와 가짜 기사를 구별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언론의 생존은 언론 이외의 다양한 플랫폼, 다양한 생산자와 구별되는 전문성을 확보함으로써 가능하다. 언론은 차별화된 탐사보도 영역을 개척하고 특화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시대에 도달했다.

 

그런데 우리 언론은 아직도 구태의 선거보도를 답습한다. 그 원인이 정파적 이유이건, 자성의 부족이건 이제는 심층성과 전문성으로 차별화된 생존전략을 펼쳐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곧 수용자들은 전통적인 매체들을 버릴 것이다.

 

김서중 |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