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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미디어 세상]기자와 전화하는 법

오후 2시께 울리는 전화에 낯선 번호다. 서울대 이준웅 교수님이시죠? 맞습니다만. ○○일보 기자 김철수입니다. 네, ○○일보 김, 철, 수, 기자님. 일부러 이름을 또박또박 확인해서 이쪽에서도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며 묻는다. 그런데 무슨 일이신가요? 오늘 국회에서 이만저만한 일로 논란이 일고 있는데, 한말씀 해주실 수 있는지요?


대체로 해 드릴 말이 없다. 그것 참 엉망진창이네요. 저도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왜 또 그렇게 싸운답니까? 이런 대답을 원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잘 모르는 사안에 대해 함부로 말할 수 없다. 내가 탐구하거나 고민해 온 분야가 아니라면 더욱 그렇다.


응답이 영 시원치 않아서 답답한 기자님, 길을 내어 주신다. 이거 이렇게 볼 수 있잖아요. 이런 정국에서 여당 대표가 그렇게 말하면 곤란하잖아요. 대체로 맞는 말이고, 내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때 조심해야 한다. 어리바리 맞장구치다 전화를 마치면 내일 아침에 이런 기사를 보게 된다. 서울대 이준웅 교수,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주장에 ‘말도 안된다’고 비판.


따라서 전화를 끊기 전에 기자에게 명백하게 주문해야 한다. 이건 제가 모르는 사안입니다. 제가 이런저런 말 했다고 쓰지 말아 주세요. 그런 수준이라 말할 수 있겠지만, 그건 전문가로서 할 말은 아니잖아요. 네네 하며 끊는 김철수 기자의 목소리에 실망감이 묻어있다. 마감이 닥치는데 시간만 버렸네. 교수라는 작자가 아는 게 없어. 센스도 없고. 


그래도 이 정도면 좋은 통화다. 20분 통화하면서 논란이 되는 ‘가짜뉴스’ 개념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는데, 가장 애매한 구절 하나가 인용되어 기사에 실렸다. 공론조사 방법론에 대해 한참 설명하고 나니, 이번 공론조사 결과에 찬성하냐는 질문을 하기도 한다. 내 의견과 크게 다르지 않은 주장을 하는 교수와 싸우는 것처럼 각을 세운 인용문이 실리기도 한다. 


나는 기자 능력의 8할이 인터뷰라 생각한다. 글 솜씨나 전문적 지식은 분명 도움이 되지만, 결정적이지 않다. 글이야 기자로서 갖추어야 할 기준선을 넘고 나면, 그다음은 평생 고쳐가는 것이다. 기자로서 취재 분야에 대한 지식이 아무리 많다 한들, 해당 분야의 절정고수보다 높거나, 신진 연구자보다 예리할 수 없다. 그래서 물어야 한다. 묻고 쓰는 게 기자다. 


언론학자 마이클 셧슨에 따르면, 신문기사가 리포트, 즉 보고문의 형식을 갖추면서 뉴스가 탄생했다고 한다. 1830년대 상업적 대중신문에서 이런 기사가 처음 등장했는데, 인터뷰는 1860년 이후에나 보인다고 한다. 1902년 영국 기자 스티드는 인터뷰가 미국 언론의 발명품이라 치부했다. 저속하고 야만적이란 뜻이다. 기자가 공중을 대신해서 공인이나 전문가에게 물어서 다시 공중에게 보고하는 양식이 그렇다는 것이다. 인터뷰란 곧 공중을 대신해서 묻고 확인하는 과정인데, 이를 언론의 고유한 기예이자 업무로 양식화하면서 언론인이란 집단의 정체성이 만들어졌다. 


따라서 기자로서 인터뷰를 망치면 거의 모든 것을 망치는 셈이다. 쓰지 않는 기자라면 게으르다고 하는 정도겠지만, 주변에 묻지도 않고 쓰면 나쁜 기자가 된다. 혹은 스스로 공부하지 않고 모든 것을 물어봐서 쓰겠다는 식이어도 당혹스럽다. 예컨대 확률표집과 할당표집을 구분하지 못하고, 응답률을 계산할 수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구분하지 못하면서 여론조사 기사를 쓰겠다면 곤란하다.


가장 나쁜 것은 역시 인터뷰 결과를 짜깁기로 변형하는 경우라 해야겠다. 누구의 말이라도 좋으니 일단 가져다 놓겠다는 식으로 여기저기 들쑤시다가, 미리 정한 기사의 방향에 맞게 인용문을 가공해서 사용하는 경우다.


언론에 대한 불신이 높다고 말들이 많은데, 기자를 자주 접하는 이들이 일반 시민들보다 언론을 더 믿는지, 그 반대인지 조사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기자를 자주 접하거나, 기자와 인터뷰한 이들 중에 실망하는 사람이 많다. 원래 기자들이 그렇지 뭐 하는 식으로 체념하기도 한다. 실로 이런 체념은 불신보다 더 나쁘다. 언론이 좋은 기사에 쓸 재료를 얻을 기회를 내치는 격이 되기 때문이다.


<이준웅 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