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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미디어 세상]네거티브 보도가 ‘사기꾼’ 당선을 돕는다

언론에 객관성 혹은 진실은 존재하는가. 범위를 좁혀보자. 선거보도에 객관성 혹은 진실은 존재하는가. 인터넷 이론가인 데이비드 와인버거는 “객관성이 우리 문화에서 눈 밖에 날 정도로 추락해 미국 전문언론인협회 윤리강령은 (1996년에) 그것을 공식 가치에서 삭제할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탄했다. 더 중요한 사실은 그것이 독자들의 마음에서도 사라졌다는 것이다. 지식을 ‘이해’하기 이전에 정보를 ‘다운로드’하는 인터넷 시대는 그런 경향을 가속화한다.

 

선거보도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 여론조사다. 여론조사 순위는 선거 과정 전체에서 유권자들의 직관적인 호기심을 자아낸다. 그런데 여론조사에 관한 한 언론보도는 사회과학적 의미의 오차범위를 완전히 무시한다. 가령 1000명을 샘플로 할 때 오차범위인 플러스 마이너스 3.1%의 의미는 거세된다. 0.8%가 오르면 ‘반등’, 1%만 내려가도 ‘폭락’이라는 단어가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여기서 오차범위는 가뭇없이 사라지고, 후보는 어떤 행위 때문에 필연적으로 ‘반등’하거나 ‘폭락’한 것으로 의심할 여지없이 규정돼 버린다.

 

지난 7일 미국 하버드 케네디 스쿨의 쇼런스테인 미디어센터는 2016년 미국 대선의 뉴스 보도를 분석한 ‘어떻게 언론이 유권자들을 버렸는가’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한마디로 부정적인 보도가 긍정적인 보도를 압도했다는 것이 이 보고서의 결론이다. “끊임없는 비판의 물줄기는 부식적 효과를 낳는다. 정치 지도자들과 정부의 신용을 침식하고 정책에 대한 믿음을 사라지게 한다.”(토머스 패터슨)

 

트럼프(왼쪽)와 힐러리. 출처: AP연합뉴스

 

이 보고서는 2015년 1월1일부터 2016년 11월7일까지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신문 5개와 CNN을 비롯한 방송 5개의 선거보도를 전수조사해 분석했다. 공식 선거운동 기간(2016년 8월8일~11월7일)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부정적 보도는 77%로 힐러리 클린턴의 64%보다 높았다. 하지만 보고서가 인용한 전체 캠페인 기간의 부정적 보도는 트럼프(56%)보다 클린턴(62%)이 더 높았다. 이는 e메일 스캔들로 대표되는 클린턴에 대한 공격이 트럼프의 막말에 대한 공격을 압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대통령 적합도와 관련된 보도에서는 트럼프와 클린턴 모두 87%라는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누가 더 대통령 자격이 있는가”라는 클린턴의 질문이 전혀 통하지 않은 셈이다.

 

미국 대선에서 부정적 보도의 증가는 1980년 이래 일반적인 현상이 되었다. 긍정의 시대는 신자유주의의 등장과 함께 막을 내렸다. 정점은 2000년 앨 고어가 믿을 만한 후보인지, 조지 W 부시가 대통령이 될 만큼 똑똑한 후보인지 논란이 일 때였다. 이때 부정적인 보도 비율은 올해 선거의 71%보다 높은 75%를 기록했다.

 

버락 오바마 등장 이후 후보의 언급량은 당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지표로 알려졌다. 긍·부정 분포와의 관련성을 연구해야 하지만 언급량에서 항상 뒤처지는 후보가 당선되기란 쉽지 않다. 2012년 한국 대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 언급량은 단 한 주도 예외 없이 클린턴을 압도했다. 트럼프가 선거보도를 주도한 것이다. 소셜 빅데이터도 마찬가지였다. 전체적으로 트럼프는 클린턴보다 15%나 더 많이 보도되었다.

 

사실상 클린턴은 낡고 당연하며 지루한 후보로 인식됐고, 트럼프는 매달 출마선언을 다시 하는 것 같은 도전자로 인식되었다. 트럼프는 클린턴을 정의할 기회를, 클린턴이 트럼프를 정의할 기회보다 더 많이 가졌다. “그녀를 가둬 버려라”,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는 트럼프의 메시지는 “그는 자격이 없습니다”, “함께하면 더 강하다”는 클린턴 메시지보다 강렬했고 더 자주 들렸다.

 

뉴스 점유율에서 여론조사와 이슈가 59%를 차지한 반면 정책은 단 10%에 그쳤다. 저널리스트들에게 정책은 찬밥이고 논란은 진수성찬이다. e메일 스캔들은 클린턴 정책 보도의 16배에 달했다. 선거가 치러진 주에 클린턴에 대한 부정보도 비율은 72%로 트럼프의 65%보다 7%포인트나 높았다.

 

역사상 최악의 부패 스캔들인 박근혜 게이트 연장선상에서 치러질 가능성이 높아진 한국의 조기 대선은 어떨까. 아마 미국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도는 다르겠지만 기득권 정치체제에 대한 최악의 불신은 네거티브 이슈를 양산할 가능성이 높다. 앙시앙 레짐에 대한 국민적 분노는 한국의 양극화된 정치지형에 스며들고, 언론들은 이 네거티브에 대한 극단적인 유혹을 이겨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뉴스보도만 보면 선거 시민권은 바보들의 게임이 되어가고 있다. 보고서의 결론은 이렇다. “모든 사람, 그리고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그려질 때에는 사기꾼이 등장할 기회를 잡게 된다. 언론은 역사적으로 시민들이 정직한 정치인과 위선자를 구별하는 것을 도왔다. 오늘날의 뉴스는 오히려 그 구분을 흐리게 만들고 있다.”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