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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미디어 세상]스타와 팬의 직거래 시대

TV 속 리얼 예능에서 주어지는 미션으로 ‘예능국장님 방에서 무엇인가를 하고 오기’가 있습니다. 미션을 받은 연예인은 쭈뼛거리며 세트장이 아닌 방송국의 사무 공간을 서성입니다. 예능국장은 프로그램 제작의 총 책임자라 혹 그분에게 잘못 보이면 캐스팅이 힘들어져 생계가 어려워질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연출을 맡은 PD 입장에서도 인사권을 가진 직속 상사이니 국장님을 희화화하는 것은 보통 간이 큰 행동이 아니라는 설정입니다. 하지만 시청자 입장에서는 어리둥절하기만 합니다. PD의 얼굴도 몇몇 알려진 사람을 제외하곤 잘 모르는 터인데 그 위의 선배라면 더더욱 알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아슬아슬한 행동이란 마치 생전 모르는 회사의 야유회를 구경하는 느낌입니다. 말하자면 프로그램 속 연예인과 PD는 국장님이 상사인 가상의 회사를 함께 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새롭게 떠오르는 동영상 플랫폼과 같은 뉴미디어의 인플루언서는 기존 미디어의 연예인과 다릅니다. 대중의 관심과 인기를 기반으로 하는 것은 같지만 소속사와 제작을 맡아주는 제작사와 방송국이 전제가 되는 연예인과 플랫폼 안에서 팔로어의 네트워크를 가진 인플루언서는 대중과의 접점이 다릅니다. 게이트 키퍼(Gate Keeper)라 불리는 방송국의 권한은 언제라도 대중과의 접점을 제한할 수 있기에 연예인에게 방송국에서 일하는 사람들과의 유대는 무엇보다 소중합니다. 그에 반해 인플루언서는 시청자와 플랫폼을 통해 직거래를 하고 있으니 팬들을 제외하곤 그 어느 누구도 두렵지 않습니다. 


연예인 중에서도 자신의 팬들과 유대가 남다른 인플루언서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팬클럽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고시와 같은 시험을 봐야 합니다. 그룹의 데뷔일은 당연하고 노래 가사의 빈칸을 메우는 것에서 시작해서 뮤직비디오에서 특정 옷을 입은 멤버의 생일까지 묻습니다. 그뿐 아니라 음원사이트에서 스트리밍을 한 인증샷을 첨부하고 뮤직비디오에 좋아요를 누른 후 캡처해야 합니다. 혹 그룹의 굿즈가 몇개 생겨 나눔이라도 하려면 받을 상대도 진정한 팬인지 알아야 합니다. 이때도 스트리밍 인증을 통해 몇천 번 음원을 들었는지 확인합니다. 이들의 결속력은 다시 플랫폼을 통해 스타와 직거래로 더 강화됩니다. 활동 중이지 않은 시즌에도 일상의 모습을 인스타로 인증하고, 유튜브로 공유하며, 힘든 하루의 끝을 함께하는 ‘눕방’에 이르기까지 살갑게 함께하다 보면 너와 나의 경계가 사라집니다. 


연말 시상식에서 상을 받은 후 “저희 그룹을 만들어주신 ○○○ 선생님 정말 감사드리고 이 상을 주신 방송국 여러분 감사합니다”라고 말한 아이돌 멤버의 모습과 “아미 여러분에게 이 영광을”이라고 말한 RM의 수상 소감의 대비는 의미심장합니다. 대표님의 ‘존함’이 제일 처음 언급되는 연예인의 입장은 미디어와의 접점을 만들어주는 소속사의 힘에 기댈 수밖에 없는 모습입니다. 마치 삼겹살 연기가 자욱한 회사 앞 회식자리 고깃집에서 ‘부장님을 향한 나의 사랑은 무조건 무조건이야’라는 노래를 부르며 상사의 빈 잔에 소주를 채워드리는 김 차장과 다르지 않습니다. 퇴사를 하든지 소속사를 탈퇴하든지 하면 곧바로 ‘누구세요?’하는 분위기로 돌변할 것을 예측할 수 있는 애처로운 표면적 존경을 보는 듯합니다. 그에 반해 차곡차곡 모은 팔로어들이 수백 만인 인플루언서는 그간 수많은 사건 속 언팔을 견뎌온 관록으로 전우애를 다진 팬들과 혈맹의 관계로 엮여있기에, 영광의 자리에서 팬들이 그 누구보다도 먼저 언급되며 힘든 일에도 여간해선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제 스타가 팬과 직거래를 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진정한 팬이란 판매자와 구매자와 같은 비즈니스 파트너의 관계가 아닙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시인의 아름다운 이야기와 같이 서로를 불러주는 것입니다. 아미는 방탄의 팬이고 방탄은 아미의 팬입니다. 서로 간의 존중과 애정이 함께하여 피아를 가르지 않을 때 진정한 유대는 만들어지기 시작합니다.


<송길영 마인드 마이너 (Mind Mi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