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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미디어 세상]아직 근본은 변하지 않았다

2016년 12월31일로 광장의 촛불민심이 연인원 1000만을 넘어섰다. 우리 사회는 진정 놀라운 직접민주주의를 경험하고 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10차 촛불 광장에서 얘기한 것처럼 오늘의 젊은 세대는 평생 자신을 올곧게 지켜줄 소중한 역사적 경험을 하고 있다.

 

그러나 밝음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것처럼 탄핵 반대집회도 계속 열렸다. 맞불집회인 셈인데, 12월31일 집회에서는 이 집회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잘 드러내는 퍼포먼스가 있었다. 대형 성조기의 등장이다. 걸핏하면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들을 종북이라고 몰아대는 그 사람들의 정신세계는 아직도 친미반공 냉전시대에 갇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농단도, 박 대통령을 앞세운 재벌 등 기득권 집단의 사익 추구 문제도 ‘종북’이라는 유령을 내세우면 다 사라지고 만다.

 

그런데 이 친박 집회에서 참 희한한 구호를 들을 수 있었다. 종편 폐지다. 박근혜 대통령을 미화하고, 종북을 외치며 정권 유지의 첨병에 섰던, 그래서 지금의 국정농단에 일단의 책임을 져야 할 종편들을 오히려 폐지하라는 구호다. 물론 국정농단의 본질을 파헤친 JTBC를 포함하지만, 국정농단 폭로의 실마리를 제공한 ‘TV조선’이나 국정농단을 희화화하며 그 단편들을 드러낸 다른 종편들까지도 겨냥한 것이다. 여기서도 소위 공영방송 폐지 구호가 등장하지 않는 것을 보니 MBC나 KBS는 그래도 여전히 그 사람들 맘에 드는 방송을 하는 모양이다.

 

2016년의 마지막 날인 31일 밤에 시작해 새해 2017년 새벽까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10차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폭축을 터트리고 있다.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제10차 촛불집회를 ‘송박영신(送朴迎新) 범국민행동의 날’로 정했다. 송박영신은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다는 뜻인 송구영신(送舊迎新)에 박 대통령 성을 넣은 집회용 조어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그러나 특정 국면에서 보여준 방송의 행태가 이 방송들의 본질은 아니다. 어쩌면 박근혜 대통령 퇴출은 종편, 그리고 종편과 함께하는 세력들이 차기 정권을 창출하기 위해 선택한 고육지책이었을 수도 있다. 국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의결 전후 변신하고 있는 일부 종편들의 방송 내용을 보면 더욱 심증이 간다.

 

김진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12월27일 TV조선 <박종진 라이브쇼>에 출연하여, 문재인 전 대표가 ‘국가 권력을 사유화한 썩은 가짜 보수 세력을 횃불로 불태우자’고 주장했다는 발언을 상기시키며 ‘공교롭게도 아무 인과관계는 없겠지만’ 대구 서문시장의 화재 원인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고 실화인지 방화인지 누가 아느냐라고 발언했다. 인과관계가 없는데 왜 문 전 대표의 발언에서 서문시장의 화재를 연상할까? 문 전 대표는 장차 기득권 집단이 내세울 대통령 후보를 위협할 유력한 후보이기 때문이 아닐까.

 

광장의 촛불은 이번 기회에 대한민국이 진정한 민주공화국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외치는데, 종편들은 벌써 대선 방정식 풀기에 들어간 모양새다. TV조선 <이봉규의 정치 옥타곤>에 출연한 황장수 미래경영연구소 소장은 문재인·이재명을 힐러리 클린턴과 버니 샌더스 관계처럼 보완재가 아니라 ‘원수’ 사이가 될 수 있다며, 신라 골품제로 보면 이재명 시장은 친노에서 성골, 진골, 6두품도 아니라고 지적했다. 부상하고 있는 이재명 시장 폄하와 더불어 ‘친노 패권주의’라는 정치적 구호를 확산시키려는 셈법이었을 것이다.

 

한화갑씨는 ‘안보 무능’ 문재인 전 대표를 뽑으면 그게 국민의 실력이며 수준이라고 표현하면서 ‘우리 안보는 미국이 지탱해줘요’라고 발언했다. 이 말을 들으며 대형 성조기를 들고 맞불집회를 여는 종미친박 세력을 떠올리는 것은 무리일까?

 

한때 가장 시청자 사랑을 많이 받았다는 ‘공영방송’ MBC는 바닥을 치는 시청률만큼이나 그 화려한 과거를 무색케 하는 방송을 했다. 밝혀지고 있는 수없이 많은 국정농단 사례와 제시해야 할 중차대한 개혁 의제는 제쳐두고, 태블릿PC의 최순실 소유 진실 여부나, 이것의 증거능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보도를 했다. 이 시점에! 이 정권이 세운 경영진이 공영방송을 ‘사유화’한 결과라는 표현 말고 무슨 표현이 가능할까?

 

방송은 객관적이지도 않고 선정적이고 편파적이다. 그래서 이런 방송 행태를 시정하라고 방송통신심의위가 존재한다. 그런데 방심위가 오히려 편파적이라고 비판받는 실정이 됐다. 반론 한마디만 있어도 균형 보도라 간주하고, 성폭력을 묘사하는 자극적 내용도 공익적 취지로 이해해주며 일방적 보도의 전후 맥락까지 알아서 고려해주는 편파 온정 심의를 했다.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심의였다. 이제 곧 종편들은 재승인 심사를 받는다. 방통위는 제대로 할까? 이번에는 그동안 편파적으로 심사위원을 구성했다는 오명이라도 벗어날지 의문이다. 오히려 이번에는 촛불민심을 대변한 JTBC를 찍어내려 하지 않을까 우려가 될 뿐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를 이뤄낸 촛불혁명 국면이지만 사회는 아직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역사적 흐름을 거스르려는 기득권 집단이 온존한다. 방송이 그렇고 방송의 공익적 가치 실현을 감독해야 할 방심위와 방통위가 그렇다.

 

촛불은 진화해야 한다. 사회 전반의 질서를 진정한 민주공화국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미래를 책임질 젊은 세대가 광장에서 얻은 역사적 경험이 헛되지 않도록.

 

김서중 |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