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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미디어 세상]언론 위기의 본질

-10월 9일 경향신문 지면기사입니다-

신문의 위기, 방송의 위기라는 말이 있다. 합치면 언론의 위기다. 그런데 이런 위기의식은 기술의 관점에 기반을 두고 문제에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이 기사나 정보를 이용하는 매체가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플랫폼에 맞게 형식과 심지어 내용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만 골몰한다. 하지만 진짜 언론의 위기는 언론다운 기사 제공에 실패하고 있다는 데 있다.

 

민주주의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언론의 다양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민주주의 구성원들이 자신들의 견해를 자유롭게 피력하고,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에 접근할 수 있어야 민주주의 원칙에 맞는 의사 결정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별 언론이 다양한 의견을 전달하려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의 언론이 모든 의견을 전달할 수 없으니 다양한 의견을 전달할 수 있도록 다수의 매체가 존재해야 한다. 전자가 내적 다양성이고 후자는 외적 다양성이라 한다. 언론이 민주주의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이런 다양성 보장에 기여해야 존재 가치가 있는 것이고 경쟁력도 생기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매체 수로만 보면 언론의 외적 다양성은 이미 달성하고도 남는다. 그런데 현실은 다양성을 보장하지 않는다. 수많은 매체가 존재하지만 다양한 현실, 다양한 견해를 전달하는 차별성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너도 나도 클릭 장사에 매달린 언론들은 포털의 검색어 쫓아가기에 바쁘다. 한 사건이 터지면 관련 기사가 여기저기서 생산된다. 하지만 그 기사들 사이의 차별성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검색어에 뜬 사건을 빠른 시간 내에 전달하기에만 바빴지 여간해서는 추가 취재를 할 시간이나 인력 투입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따옴표 저널리즘을 수행하기에 바쁘다. 국민의당 이언주 의원이 페이스북에 불꽃축제를 언급하면서 화제가 됐다. 개인 페이스북이지만 내용을 액면 그대로 수용하면 중요한 정치적 발언일 수 있으니 기사화될 만하다. 하지만 나중에 밝혀진 것처럼 이 의원은 사실을 오인하고 있었다. 기삿거리가 될 수도 없는 것이었다는 뜻이다. 페북 내용을 그대로 옮겨 논 기자는 불꽃축제가 2000년부터 지속된 민간행사라는 사실을 몰랐거나 찾아보려는 추가 취재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이언주 의원과 더불어 언론이 조롱거리가 됐다.

 

최근 경비원 추석 선물 건이나 240번 버스 기사의 승객 하차 거부 건 역시 한 언론이 특종이라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온 것을 기사화하고 많은 언론이 받았다. 전형적인 최근의 기사 생산과정이고 의례적으로 추가 취재는 뒤늦게 이루어졌다. 오보의 책임을 사실 확인 없이 SNS에 올린 경비원 아들이나, 버스 기사 건을 최초 SNS에 올린 시민에게 돌릴 수 있을까?

 

워싱턴포스트의 마틴 배런 편집장은 저널리즘의 본질을 ‘불난 사실이 아니라 왜 불이 났는지를 보도’하는 것이라고 단순하면서도 명쾌하게 정리한 바 있다. 언론이 추가 취재 없이 ‘사실(?)’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SNS 내용을 그대로 옮기는 건 저널리즘이 아니다.

 

이번 명절에 고속도로를 이용한 사람들은 추석 전후 통행료 없이 다녔을 것이다. 그런데 일부 언론들은 ‘추석 통행료 무료 120억 혈세 보전…아랫돌로 윗돌 괴기?’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그런데 이런 언론들이 박근혜 정부 시절 통행료 무료를 ‘정부가 쏜다’라고 긍정적으로 표현해 기사를 내보냈다고 한다. 이런 태도의 표변은 물론 정파적이라 비난받을 만하다. 하지만 위기를 맞고 있는 언론의 현실을 고려하면, 문제의 본질은 이들이 자신들이 쓴 기사조차 되돌아보지 않았으리라 예상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즉 비전문성의 문제다.

 

언론의 위기는 플랫폼의 위기가 아니라 저널리즘의 위기다. 기사다운 기사를 제공하지 못하는 저널리즘 질의 저하가 문제의 핵심이라는 뜻이다. 새로운 플랫폼으로 수용자가 이동하는 현실을 도외시할 수는 없다. 새로운 플랫폼은 새로운 형식의 기사를 필요로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용자가 내용을 소비한다는 것은 그만큼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플랫폼에 대한 고민도 언론이 제공하는 기사의 가치를 고민하는 것에 우선할 수는 없다. 깊이와 차별성이 있는 기사를 생산하기 위해 언론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클릭을 받을 수 있는 기사의 양에만 의존하는 기사 생산방식은 궁극적으로 수용자들을 멀어지게 할 것이다. 인터넷에 차고 넘치는 정보와 다를 바 없는 기사를 굳이 언론을 통해 접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전문적이고 심층적인 정보가 왜 중요한지를 보여주지 못하는 언론이 언론의 미래를 기획할 수는 없다.

 

언론은 지금과 전혀 다른 취재 시스템, 기사 작성 방식을 통해 차별화된 기사를 제공함으로써 언론의 존재 이유를 입증해야 한다. 모든 언론이 그럴 수는 없다 하더라도 이런 언론이 몇이라도 존재하는 게 언론 전체를 살리는 길이다. 그 핵심에 공영방송의 정상화도 존재한다. 정권의 하수인이 아니라 진짜 저널리즘을 실천하는 대표언론으로서 거듭나는 과정이 되기를 바란다.

 

<김서중 |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