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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칼럼+옴부즈만

학자금 대출 제한, 대학생의 목소리 작게 다뤄

신지혜 | 이화여대 언론정보학과 4학년 shin.spirit@gmail.com



대학생은 다면적인 집단이다. 이들은 높은 학력을 지닌 기득권 집단이면서 어린 나이, 상대적으로 빈약한 경제적 요건 등으로 인한 사회적 약자이기도 하다.
학교 간판에 따라 미래가 얼마간 결정되는 한국사회에서 대학생이란 자체적인 계급구조를 가진 집단이기도 하다. 입시 사교육 광풍의 귀결점이 이 구조에서 상부를 차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때, ‘좋은 대학 다닌다’라는 꼬리표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지난주에 이어 이번주에도 3일 동안 1면에 외교부 및 정부기관 특채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유명환 장관 딸 특채 파문은 엄혹한 취업시장에 뛰어들어야 하는 대학생들은 물론 일반 시민들의 심기를 불편케 한 사건이었다. 특히 자신의 인생을 자발적으로 저당잡힌 채 장밋빛 미래를 향해 공부에 ‘올인’하는 고시생들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지난 10년간 5급행정공무원 특채비율이 평균 37%였다는 사실과, 그 비율을 50%까지 늘리겠다는 정부 계획에 이들은 도서관을 나와 현수막을 길게 내걸었다.

경향도 6일 월요일 <“공부하면 뭐하나, 자리는 높으신 분들 차지”>에서 “인원감축, 특채비율 증가, 로스쿨 유지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 될 것 같다”라는 고시생들의 한숨을 지면에 실었다.





아직까지 고시는 특채보다 정당한 시험이라 게 상식이다. 35년 전 고졸 학력으로 사법고시에 합격했던 전직 대통령의 사례는 이를 뒷받침하는 좋은 근거가 됐다.
하지만 경제력도 학력도 대물림되는 요즘, 고시의 진입장벽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이 장벽을 넘지 않으려는, 혹은 넘지 못하는 대학생들도 존재한다. 짓궂은 네티즌들은 이들의 소속 대학을 ‘지잡대’(지방의 잡다한 대학)라는 말로 폄하한다.
지난 7일 교육과학기술부는 처음으로 이들 대학에 일부 예외조항을 포함해 대출제한·최소대출 조치를 내렸다. 정부가 실제로 부실대학 관리에 손을 댄 최초의 사건이었다.

경향과 다른 많은 신문들은 이 뉴스를 1면에 게재했다. 경향은 10단짜리 <부실 대학 퇴출 ‘신호탄’… “애꿎은 재학생만 불이익”>(8일자 4면) 기사를 통해 관련 소식을 전했지만 제목과 내용이 따로 놀았다.
‘해당 대학 재학생은 부실경영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라는 표현으로 학생들을 비호하긴 했지만 정책입안을 주도한 관료들과 명단에 오른 대학 관계자들의 발언이 기사의 주를 이뤘다. <“모호한 평가로 3류 낙인”>(같은 면)에서 해당 대학의 입장을 들을 수 있었지만 학생들의 목소리는 경북과학대 총학생회장의 두 문장짜리 의견으로 일반화됐다.

대학진학률이 지나치게 높다던가 부실대학이 넘쳐난다는 우려는 예전부터 존재했다. 그러나 이는 대졸 학력으로 얻는 특혜가 지나치게 많았던 과거가 만들어낸 오늘날의 폐해다. 기사 제목대로 전 세대가 만들어놓은 고학력화 경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재학생들은 무죄다.






일부 신학교 등 특수학교를 논외로 하면, 대출제한 재학생들은 대학생 집단에서 ‘낮은 계급’에 속한다. 명문대 재학생들은 학벌사회를 타파하기 위해 일단 그 구조 안에 입성하겠다며 ‘트로이목마’를 자처할 수라도 있지만, 부실대학 학생이라 낙인 찍힌 재학생들은 그마저도 꿈꿀 수 없다.
명단에 오를 뻔한 다른 대학들도 간담이 서늘하기는 마찬가지겠지만 가장 우울한 주체는 학생들이다. 그러나 성적 낮은 학생에게 가차없는 한국사회에서 이들이 느꼈을 설움을 경향 지면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는 최근 옴부즈만 칼럼들이 자주 지적하는 점, 즉 “능동적으로 뉴스에 개입해야 한다”는 충고와 같은 맥락의 문제다.
경향은 대출제한 명단발표에 대해서 주로 팩트를 전달하는 데 집중했다. 4대강 사업, 대북지원 등의 문제를 다룰 때와는 다른 모습이다.
자연스레 사설을 찾아보게 됐다. 8일자 사설 “학자금 대출 제한, 세심한 후속조치 강구해야”에서 ‘세심한 퇴출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 경향의 의견이라면 학생들의 목소리가 기사에서 뜸한 이유를 대강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이 남는다.

특권집단인 정치인들이 자신의 밥그릇을 챙기는 데 급급한 것은 분명 잘못이다. 그렇다면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간’ 대학생은, 그들이 갖고 있는 잠재적 특혜는 정당한 것인가?
노력에 대한 대가를 비난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 인센티브가 지나치게 공고해지고, 대학 입시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이유로 비(非)명문대 재학생의 소외를 당연시하는 것은 비판받을 일이다.

공정사회가 ‘기득권층·가진 사람에게 고통스러울 것’(6일자 1면)이라는 대통령의 발언은 자신이 받는 특혜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한 충고일 것이다.
모든 사회집단마다 계급이 있다. 경향이 그런 점들을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여태껏 잘 그래왔듯이. 이번에 명단에 오른 대학들이 앞으로 어떤 자구책을 만들어내 회생할지, 어떤 퇴출절차를 밟는지, 그 노력 뒤에 숨겨진 대학 구성원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경향이 계속 소식을 전해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