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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한국일보 이충재 논설위원 인터뷰

"사주 독단에 망가진 지금 한국일보는 독자에게 내놓기 부끄러운 가짜 신문"

 

 

 

200명에 가까운 기자들을 편집국에서 쫓아내고 사측에 동조하는 10여명의 간부급 기자들이 한국일보를 만든 지 나흘이 지났다. 19일 한국일보사에서 만난 이충재 논설위원은 “아침에 신문을 보는 게 두려울 정도로 참담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논설위원들은 전날 신문을 파행 제작하고 있는 사측을 비판한 성명을 발표하면서 “쓰레기 종이뭉치”라는 단어를 썼다. 수십년씩 언론사 생활을 한 기자들이 격한 표현을 서슴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그는 “6명의 논설위원 전원이 현 상황의 심각함에 공감했다”며 “월요일부터 발행된 신문은 한국일보 제호를 달고는 있지만 순전히 남의 콘텐츠(통신사 기사)에만 의존해 도저히 독자들에게 내놓을 수 없는 부끄러운 가짜 신문”이라고 말했다.

 

 

 

 


 

논설위원들은 사측이 편집국을 봉쇄한 지난 15일부터 사설 게재를 거부하고 있다. 17일자부터 신문에 실린 사설은 사내 임원과 퇴직 간부들이 대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일보 노조 비대위는 19일 신문에 실린 사설 중 하나가 통신사 칼럼을 표절했다고 밝혔다. 비대위는 “해당 사설의 첫 두 문장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문장이 전날 발표된 연합뉴스 시론의 문장을 그대로 베꼈다”고 지적했다.사측은 이날 정병진 주필을 보직해임해 논설위원으로 강등시키고 그 자리에 지난해 퇴직한 강병태 논설고문을 임명했다. 또 외부인사인 허영섭·안순권 논설위원을 새로 임명했다.

 

 

이 위원은 “오래전에 기자 생활을 끝냈거나 한국일보와 전혀 관련 없는 인물을 논설위원에 앉힌 건 아무라도 데려와 신문 발행을 이어가면 된다는 상식 이하의 행동이며 명백한 보복인사”라고 비판했다.

 

 

이 위원은 2011년 6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10개월간 한국일보 편집국장을 지냈다. 당시 ‘적극적 중도’를 표방했던 그는 “기자들이 피와 땀을 쏟아가며 한동안 침체되고 추락한 신문의 위상을 살리려 노력해왔고 어느 정도 결실도 거뒀다”며 “김재철 사장 시절 MBC가 시청률이 추락하고 시청자의 외면을 받았던 것처럼 이번 사태로 한국일보도 그간의 성과를 다 잃고 독자들의 시선에서 멀어질까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장재구 회장이 중학동 사옥을 매각하면서 개인 빚을 갚기 위해 회사에 200억원의 손해를 끼친 사실은 수년 전에 밝혀진 일이다. 이 위원은 “노조에서 장 회장에게 사적으로 유용한 돈을 회사에 되돌려놓을 수 있도록 2년여의 말미를 줬지만 번번이 약속을 어겼고 결국 형사 고발에까지 이르게 됐다”며 “개선 기미가 없는 경영진의 무능과 불법행위를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한국일보 기자들의 뜻”이라고 설명했다.

 

 

1987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올해로 26년째를 맞는 그는 “경영 악화로 어려운 여건 속에 일하는 후배들을 보면서 늘 안타깝고 미안했다”며 “후배들이 제대로 된 환경에서 좋은 신문을 만들 수 있는 여건을 이번에는 꼭 만들어주자는 뜻으로 모든 논설위원들이 후배들과 행동을 함께하고 있다”고 말했다.

 

 

편집국 폐쇄를 ‘신문 정상화 과정’이라고 해명한 19일자 신문 1면 사고에 대해선 “누가 봐도 금세 알 수 있는 내용인데 사측이 일방적이고 왜곡된 주장을 진실이라 우기고 있다”며 “사태를 풀기 위해선 지금이라도 기자들과 대화하려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 위원은 “한국일보 자체를 망가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사측은 언론 사상 초유의 편집국 봉쇄라는 치욕스러운 행태를 멈춰야 한다”며 “한국일보 사태는 단순한 노사갈등이 아니라 더 좋은 신문을 만들기 위한 언론민주화 운동의 과정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 김형규·사진 정지윤 기자 fideli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