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디어칼럼+옴부즈만

[옴부즈만]대선후보 정책검증 기준은 ‘진정성’

엄주웅 | 호루라기재단 상임이사


이렇게 볼 수도 있다. 제1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었으니, 새로 공직을 맡게 된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역대 대통령 묘역이 있는 현충원을 참배한 것이다. 참배 대상에는 우선 자신의 아버지가 있다. 그리고 대통령 한 분의 경우는 묘역이 있는 봉하마을까지 내려간 셈이다. 역대 최다 득표율을 기록하며 예상대로 집권여당의 대통령 후보가 된 박근혜 의원 얘기다.


후보로서의 그의 첫 행보에 대해 언론들은 ‘파격’이니 ‘광폭’이니 하는 수식어를 붙여 사진과 함께 크게 보도했다. 정치적으로 첨예한 대척점에 섰던 전직 대통령들과 그 정책에 대한 평가나 입장 표명도 없이, 그저 참배하고 가족에게 인사한 일이 과연 의례 이상의 의미가 있는지는 알기 어려웠다.


 경향은 다른 신문과는 달리 박 후보의 ‘참배 정치’를 1면 기사로 배치하지는 않았다. 대신 22일자 6면에 “파격은 중도포용 행보인가”라는 제목으로 봉하마을 방문 소식을 따로 보도했는데 단순 스트레이트는 아니었다. 측근 취재원을 통해 “나라 잘되게 하는 데 보수-진보가 따로 없다는 실용론을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며 “친이계와의 화합”과 “이명박 정부를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행보”로도 해석된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행태가 진정성을 띠려면 어떤 조건이 있어야 하는지는 전달해 주지 않았다.


그날 1면 머리는 “박근혜 증세론 빼들었다”는 기사였다. 후보의 행보보다는 정책을 중시하는 경향의 지향이 엿보인다고 하겠다. 복지를 하려면 증세가 필요한데 이에 대한 국민의 생각을 수렴하는 기구를 두겠다는 내용이다. 원론적이기는 하지만 어찌 보면 복지 규모를 국민의 부담 용의에 따라 정하겠다는, 정치적 주도력이 의심되는 소극적 논의일 수 있다. 부자 증세로는 고정 지지층 이탈이 우려되므로 대신 꺼낸 카드라는 분석도 있다고 했다(23일 5면). 어쨌든 정책보도를 중시하는 언론으로서는 민감하기 짝이 없는 증세문제를 내용과 상관없이 의제로 올린 것만으로도 중요하게 다루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기존의 노선과는 상치되는 듯한 행보와 상대 정치세력의 이슈를 선점해 제기하는 전술로 박근혜 의원과 새누리당은 꽤 재미를 보아왔다. 레토릭과 달리 실제 알맹이가 있든 없든 사람들에게는 의제 선점 효과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새누리당은 민주통합당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조차 ‘경제민주화를 가장 잘할 것 같은 정당’으로 등극한 셈이다. 이런 현상에는 의외성과 논쟁성을 뉴스 가치로 삼는 언론의 관행이 한몫 거들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보수가 진보의 담론을 차용하고 논쟁적 정책을 먼저 제기하니 관심을 쏟는 건 당연하다.


박근혜후보 고 노무현대통령 묘역 참배 (출처:경향DB)


그러므로 대선과 같이 중차대한 국민의 선택을 돕는 언론 보도는 진실성에 초점을 두는 것이 우선이다. 중도층을 겨냥하는 각 정당의 선거전술에 따라가지 않고 그것을 꼼꼼히 검증해 주는 일이 필요하다. 이른바 ‘시대정신’에 편승하여 내놓은 정책과 약속들을 각론까지 실현가능성과 적합성을 분석·평가해 보도해야 한다. 또한 후보와 함께 권력을 추구하는 집단에 대해서도 과연 시대정신을 실현할 의지가 있는지, 그럴 만한 구성인지를 따져주었으면 한다.


그런 면에서 박 후보 진영 내에서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의견은 언론에서 과잉대표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주요 의제에 관해 김종인, 이상돈 전 위원 등의 인용(22일 6면 “정의 담론으로 젊은층 잡아야” 등)이 잦고 편중되어 있는 건 아닌가 한다. 캠프 내의 주류 또는 보수적 성향의 인사들의 생각은 알 길이 없고, 새누리당의 진정성 여부는 묻히게 된다.


신자유주의 수십 년이 빚은 위기로 양극화가 극단에 이르자 누구나 ‘시대정신’을 입에 올린다. 다소 관념적인 이 용어가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여론조사의 화두가 되었다는 것부터가 이번 대선의 성격을 잘 말해준다. 경향은 ‘한 사회가 추구해야 할 가치의 집약이자 최종 목표’인 시대정신을 모색하는 논쟁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으로 시작한 이 기획이 후속으로 다루게 될 주제는 무엇인지 궁금했다. 사회대통합이니 복지확대니 하는 화두가 널리 받아들여지기는 하지만 아직도 시대정신에 대한 동상이몽이 있는 듯해서다. 최근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다수의 국민이 시대정신으로 여전히 경제성장을 우선 꼽았다고도 한다.


어쨌든 박근혜 후보의 등장으로 본격적인 대선국면이 시작됐다. 아직도 예선을 치르는 중이거나 링에 오르지 않은 선수들도 있지만 각 후보 진영은 선거전문가들로 속속 채워지고 있다. 그중에는 언론분야를 잘 아는 홍보 기술자들이 있어 미디어의 생리를 이용해 이미지 조작에 애를 쓰기도 한다. 과거 일부 언론들은 그에 적극 영합하기도 하고 심지어 직접 링에 오르기도 했다. 시대가 바뀌는 계기의 선거를 맞아 우리 언론도 거듭나기를 바라면서, 국민적 열망과 시대정신에 입각한 경향의 철저한 검증 보도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