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재료로 요리를 해도 이보다 알뜰할 수는 없을 성싶다. 한편의 이야기가 어디 한군데 버릴 것 없이 영화와 연극, 드라마, 뮤지컬 등 다방면으로 가지를 친다. 연재가 끝나기도 전에 판권이 팔린다는 만화가 강풀(본명 강도영·34)의 작품 얘기다. 
 


                만화가 강풀씨는 “주제가 아무리 의미있더라도 재미가 없으면 독자를 끌어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26년’에 암살극 형식을 가미한 것도 더 많은 10대 네티즌들에게 광주민중 항쟁을 알리고 싶다는 바람에서다. /김영민기자


지난달 개봉한 영화 ‘바보’의 원작은 그의 만화 ‘바보’다. 2006년 개봉했던 영화 ‘아파트’도 강 작가 작품에서 빌려온 것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순정만화’(2003~2004)는 연극·영화·드라마로 이미 옮겨졌거나 제작 중이고, ‘타이밍’(2005)도 영화·드라마로 선보인다.

노인들의 사랑을 그린 최신작 ‘그대를 사랑합니다’(2007)는 드라마·영화·연극·뮤지컬로 변신한다. 광주 민중항쟁을 다룬 ‘26년’(2006)도 영화화되고 있다. 2001년 만화가로 데뷔한 이후 지금까지 연재했던 모든 장편만화가 다른 장르로 변주되고 있는 것이다. 강 작가 이전의 어떤 만화가도 누려보지 못한 기록이다.

인기의 비결은 단연 ‘이야기’다. 스토리를 탄탄하게 엮어나가는 그의 재능이 영상·공연업계의 이목을 잡아끌고 있다. 급기야는 영화 ‘괴물’의 후속작인 ‘괴물2’의 시나리오까지 썼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화수분처럼 이야기가 솟아난다는 그를 지난 10일 서울 강동구 상일동의 작업실 겸 집에서 만났다.


-영화 ‘괴물2’의 시나리오를 쓰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괴물’을 만들었던 영화사 ‘청어람’이 제 작품 ‘26년’을 영화화하고 있어요. 그곳 최용배 대표님과 인간적으로 많이 가까워졌습니다. 대표님이 ‘괴물2’로 고민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제가 아이템을 냈더니 대표님이 ‘아예 써’라고 해서 쓰게 됐습니다.”


-전작이 성공적이었는데 부담스럽지 않습니까.
“부담은 없었습니다. 시나리오 하나로 영화가 완성되는 것도 아니고, 저는 일부만 하고 감독님과 다른 분들이 큰 부분을 하시는 거니까요. 일단 제가 할 만한 건 끝난 것 같아요. 감독님이 정해지면 협의해 같이 마무리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시나리오 작법을 따로 배운 적이 있습니까.
“작법은 전혀 몰라요. 그래서 제 시나리오는 분량이 좀 많습니다. 보통 시나리오가 70~80쪽인데 저는 150쪽을 넘겼어요. 용어를 잘 모르는데다 대사보다 지문이 긴 것도 많고 일일이 상황을 설명하는 글이 많아요. 감독에게 전달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해 소설처럼 썼어요.”


-영화화를 준비하고 있는 다른 작품의 각색에도 참여하십니까.
“‘괴물2’는 제가 1차 생산자니까 처음부터 한 거예요. 나머지 각색은 시나리오 작가들이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괴물2’ 얘기는 그만했으면 좋겠어요. 계속 기사가 나오니까 지금이라도 당장 제작에 착수할 것 같은 분위기가 생겨요. 영화는 개봉까지 시간이 걸리게 돼 있는데, 언론에 자주 노출되면 영화 제작에 난항을 겪는 것처럼 보일 것 같아 우려됩니다.”


-‘26년’은 광주항쟁의 유족들이 사건의 최고책임자를 암살하려 한다는 내용입니다. 이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질 것이라고 예상하셨습니까.
“이건 힘들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얘기는 처음 하는 건데, 제가 정말 광주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모 방송사 PD님한테 만화를 포기하고 드라마 극본을 쓰겠다고까지 했어요. 꼭 드라마로 만들어달라고요. 그런데 그 방송사의 국장님이 안 된다고 한 거예요. 그때는 만화를 1~2년 쉬더라도 이걸 하고 싶었는데, 안됐어요. PD님도 저한테 미안해진 거죠. 자기가 어떻게든 관철하겠다고 했는데. ‘어쩔 수 없구나, 만화로 해야겠다’ 해서 만화를 그렸는데 이게 영화가 되더라고요. 다행이죠.”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 ‘26년’입니까.
“이 작품은 속죄 같은 겁니다. 처음에 만화 시작할 때 제 형편은 말도 못해요. 인터넷 만화가인데 인터넷이 만날 끊겼으니까. 휴대폰도 받는 게 안 되다가 나중에 거는 것까지 안 되는 시절이 있었어요. 그런데 연재 4편 성공하고 먹고 살만해지니까 ‘26년’을 자꾸 미루게 되더군요.
만화를 그리면서 혼자 설정한 숙제가 2개 있어요. 하나는 ‘26년’ 그리는 거였고 또 하나는 나중에 나이 들어서 ‘어린 예수’라는 만화를 그리고 싶어요. 하나님께서 나한테 달란트(재능)를 주신 것은 이런 만화를 그리라는 게 아닐까 사명감을 느꼈어요. 미루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등장인물 중 암살 대상자가 실존 인물과 겹치는데요. 걱정되지는 않았습니까.
“몇 년간 고민했어요. 하고는 싶은데 했다가 무슨 일 당하는 건 아닐까. 겁도 좀 나고. 지금은 결혼했지만 총각 때가 아니면 못할 것 같았고. 변호사들 자문도 받고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작전을 치밀하게 짰어요. 때마침 잘 나간다는 일본 잡지에서 만화 제의가 들어왔어요. 가려고 준비를 했죠. 이 작품 그리고 일본으로 토끼려고. 그런데 만화를 다 그리고 나니까 한국에 살고 싶더라고요.”


-네티즌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26년’ 할 때 독자들의 메일을 제일 많이 받았어요. ‘빨갱이 만화가’라고 욕 먹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고마웠어요. 혼자 힘으로는 못할 일이었지요.”


-개인적으로 광주와 인연이 있습니까.
“저는 코딱지만큼도 광주와 연결된 게 없어요. 저와 어머니는 서울 사람이고 아버지는 충청도 분이시고. 제가 광주 출생인 줄로 아는 사람이 많아요. 뻥 하나도 안 치고 대학교 때 광주 한 번도 못 가봤어요. 친구들이 광주묘역 참배갈 때 꼭 주일을 껴서 가더라고요. 저는 아버지가 목사님이라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광주는 ‘26년’ 취재 준비할 때 처음 갔어요.”


-정치 문제나 시사에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대학교 1학년부터 총학생회 홍보부에서 활동했어요. 학생들이 대자보를 안 봐 좀 보라고 만화 대자보를 쓰다가 만화를 시작한 겁니다. 사람들이 운동권이냐고 묻는데 운동권은 아니죠. 제가 94학번인데 94학번이면 운동권 끝물 중에서도 끝물이잖아요.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은 편이었고 대자보를 그리다보니 많이 알아야겠더라고요. 학교 다닐 때 그런 공부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전교조와 참여연대 소식지에도 그림을 그렸던데.
“대학을 나와 2000년부터 전교조에 만평을 4년 정도 그렸습니다. 자청 반 타청 반이었어요. 만화 그릴 데도 없었고 전교조가 돈을 많이 주는 매체도 아니었고. 전교조와 참여연대에 동기들이나 학생회를 함께했던 사람들이 있었어요. 만화 그리고 싶다고 부탁을 했죠. 그래도 만화 데뷔는 2001년도라고 말해요. 인터넷 만화가로 시작했기 때문에 홈페이지 연 날이 데뷔일이죠.”


-강 작가의 작품은 콘텐츠 하나를 여러 장르로 변용하는 ‘원 소스 멀티 유스(one source multi use)’의 전범이 됐습니다. 인기가 있는 이유
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일단 이야기에 흥미를 많이 느끼는 것 같고요. 인터넷에 먼저 발표를 했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영화·드라마·연극을 하시는 분들이 이렇게 인기가 좋은 거면 망하지는 않겠다고 생각하시나 봐요. 하지만 자꾸 영화화되니까 은근한 부담감이 있어요. ‘만화가 영화가 되면 성공한 거다, 성공한 만화가다’ 이런 시선이 싫어서요. 물론 영화에 투입되는 자본이 크다 보니까 그렇게 볼 수 있지만 꼭 만화가 영화의 하위인 것처럼 보이더군요. 그게 싫습니다.”


-작품이 끝나기도 전에 판권을 계약하는 ‘입도선매’ 관행이 있다고 하던데, 강 작가도 그런 경우가 있습니까.
“‘순정만화’ 빼고는 대부분 그랬습니다. 만화가 전체 30화면 5화나 10화 때부터 그런 제안이 왔거든요. 영화계에서 제가 결말까지 써놓고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초반에 연락해서 결말을 알려달라는 영화사들도 많이 있습니다. 저는 안 알려줘요. 알려주기 싫어서. ‘만화가 완성되고 나면 그때 얘기합시다’하고 미루는 편이죠. 그러다보니 영화사 간에 약간 경쟁이(웃음).”


-원작 만화는 인기가 많았지만 영화 ‘아파트’와 ‘바보’는 흥행이나 완성도 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영화를 원작과 비교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긴 한 건데 안 그랬으면 좋겠어요. 영화가 만화와 닮았느냐, 만화와 어떤 차이가 있느냐 많이 분석을 하시더라고요. 만화 ‘바보’는 강풀 만화로 보시고 영화 ‘바보’는 김정권 감독의 영화로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네티즌들이 원작을 이미 많이 봤다는 것도 영화에 불리한 점 아닐까요.
“양날의 검인 것 같아요. 홍보 면에서 좋기도 하지만 너무 많은 독자들이 봤기 때문에 감독님들도 원작의 눈치를 보는 것 같고. 제 만화는 분량이 굉장히 긴 편입니다. 축약을 하느냐 방향전환을 하느냐가 문제인 것 같아요. ‘아파트’는 방향 전환이었고 ‘바보’는 원작을 살리려고 노력을 했지만 이야기가 많이 빠진 편이죠. 비교당하니까 영화사도 그렇고 저 역시 부담이 되고. 그래도 저는 영화 ‘바보’를 보고 나서 굉장히 기분이 좋았어요.”


-영화계에 영화의 인기가 원작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강풀 징크스’가 생기는 것은 아닐까요.
“네, 그럴까봐 겁나요. 영화 판권 팔아서 버는 돈이 얼마인데(웃음).”


-작품 아이디어를 얻는 비결이 있습니까.
“그냥 가만히 있다가 얻어요. 그런 만화가들이 많이 있어요.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종점까지 간다든가 등산을 한다든가. 저는 진짜 가만히 앉아서 생각하거든요. 아이디어는 항상 일상에서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공상과학물 그릴 것도 아니고 그냥 주변에서 얻어요.”


-작품을 준비할 때 취재는 어느 정도 하십니까.
“취재를 통해 아이디어를 얻지는 않고 어떤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정했을 때 배경에 대한 취재는 꼭 나가죠.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노인 만화니까 어르신들 많이 사시는 동네에 찾아가서 사진도 찍고. 아이디어는 그냥 얻되 취재는 철저하게 하는 편이에요. 아이디어가 나왔어도 내가 원하는 장소에 가면 더 많은 생각이 납니다.”


-미술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다고 하던데.
“없어요. 학교 다닐 때 교과서에 페이지 넘어가는 만화나 그리는 정도였어요. 저는 만화가가 될 줄 몰랐어요. 대학교 들어가서 데모질하다가 만화를 그렸는데 졸업할 때쯤 되니까 만화 안 그리면 못살겠더군요. 정말 만화가 좋아져서.”


-새로 준비하시는 작품은 어떤 겁니까.
“세 가지 정도 생각해 놓은 게 있는데 선택의 문제가 남아 있어요. 확실한 건 호러 쪽을 하고 싶다는 겁니다. ‘아파트’와 ‘타이밍’에 이어 ‘미스터리 심리썰렁물’의 3탄이 될 것 같아요. 재미있는 귀신 얘기를 하고 싶어요. 이번 주까지만 놀면서 작업하고 다음주에는 산에 들어갈 것 같아요. 글 쓸 때마다 들어가는 산이 있어요. 처박혀있다 나오면 3월은 지나갈 테고 4월부터 한 달 동안 열심히 준비해 시작할 생각입니다.”

Posted by 미디어로그 칸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