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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칼럼+옴부즈만

노동자의 위기, 지속적인 관심을

윤송이 | 이화여대 사회학과 4학년


 

유로존 위기로 국제뉴스가 많았던 한 주였다. 많은 신문들이 유럽발 뉴스를 전달했지만 유럽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는 확실히 경향신문이 앞섰다고 생각한다. 주로 외국 언론의 내용을 인용해 구성한 다른 신문의 유럽발 기사와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경향신문의 기사는 달랐다. 경향신문의 유로존 르포기사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겪게 되는 현실은 결국 노동의 문제임을 보여줬다. 경향신문은 스페인판 88만원 세대, 파산위기에 처한 40대 가장, 고용사무소를 찾은 구직자 등 유로존 위기로 고통받고 있는 유럽인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토요판에 실린 그리스·스페인·독일의 취재후기를 통해 생각하지 못했던 유럽 상황의 이면까지 함께 읽을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많은 노동자들이 위기 상황에 놓여 있음은 마찬가지다. 지난주 경향은 ‘쌍용차 해고노동자’ ‘산업재해’ ‘원양어선 인권침해’ 등 노동자들이 처한 위험 사례들을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쌍용차 해고자의 눈물> 기획은 쌍용차 사태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다른 언론들과 뚜렷이 대비되었고, 해고노동자들의 구체적인 이야기를 전달함으로써 쌍용차 사태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을 다시 한번 환기시켰다.


청소노동자들 빗자루들고 행진 (경향신문DB)



경향신문은 18일자 ‘8가지 구조신호’ 편에서 쌍용차 노동자들과 가족들의 상담녹취 내용을 담은 ‘숨결보고서’를 1면 톱기사와 함께 2~3면에 걸쳐 게재했다. “비참하지 않게 죽는 게 어떤 것인지를 고민한다”는 어느 노동자의 말을 통해 벼랑 끝에 내몰린 해고노동자들의 현실을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 경향은 20일자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정리해고’ 편에서 쌍용차 사태의 경과를 다시 한번 정리하며, 노사합의문을 작성했지만 진척이 없는 상황과 정부의 방관 등을 지적했다.


여전히 이번 사태에 책임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구조신호’를 외면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쌍용차 해고노동자 문제는 비단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런 점에서 쌍용차 사태를 포괄하는 노동의 문제, 노동자의 문제를 좀 더 구체적으로 함께 다뤄주었으면 좋았겠다.


20일자 1면 하단에는 ‘산재 입증 책임을 국가와 사용자가 져야 한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실었다. 같은 날 2면에 <뇌심혈관 질환 느는데 산재 인정 갈수록 줄어> <“백혈병 사망 삼성 근로자는 산재” 판결이 영향> 기사를 통해 인권위 권고 배경과 노동자들이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지만 산재 인정 비율이 줄어드는 현상을 설명했다. 사설 <노동부, 인권위 권고 받아들여 산재 규정 개선하라>에서는 “인권위는 의학적 인과관계의 입증 책임을 국가·사업주가 지도록 했지만, 유해·위험요인에 노출된 경력이 있다는 사실은 노동자가 입증하도록 했다”며 권고내용의 한계를 지적했다.


인권위 권고가 보도된 다음날에도 경향은 삼성 LCD공장 근로자의 사례를 실어 산재로 고통받고 있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다뤘다(“낯선 병과의 싸움보다 산재투쟁이 더 고통”). 경향신문은 지난달에도 사설 <노동자 두 번 죽이는 까다로운 산재 기준>을 통해 산업재해 보상 기준의 허점을 비판한 바 있다. 


경향 지면에서 산업재해로 인정받지 못해 고통받는 노동자들의 사례를 자주 볼 수 있다는 것은 경향이 그만큼 산업재해의 심각성에 주목하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다만 이 문제를 종합적, 입체적으로 전달하는 데는 다소 미흡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산재로 인정받지 못해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함께 해외의 산업재해 인정 절차 등 다각적인 분석기사가 곁들여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경향은 쌍용차 해고노동자, 산업재해 등 계속해서 문제가 된 굵직한 노동문제 말고도 ‘원양어선 인권침해’ ‘비리 저축은행 직원 낙인’ 등도 비중 있게 보도했다. 기사마다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충실하게 전달하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원양어선 인권침해 사례 같은 경우 다른 언론들은 해당 보고서의 내용을 중심으로 전달하는 데 그쳤지만 경향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알리는 데도 많은 지면을 할애해 차별화했다.


노동자 계급 사이의 양극화 탓인지 몰라도 우리 사회에는 노동자로 불리길 거부하는 노동자들이 꽤 많은 것 같다. 위기에 처한 노동자들과 자신들의 처지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자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야 새로운 돌파구가 열릴 텐데 안타깝다. 


경향신문이 노동의 소외, 노동자의 위기 문제에 계속해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노동자들의 요구가 온전하게 받아들여지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경향의 역할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