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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리즈=====/Noribang의 석간 경향

16. 2010 단편 소설 - [경향신문 對 민주노동당] (2)


윤도현 - [끝이 아니길], 1945 삽입곡



*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말과 행동은 
제작자의 상상에 따라 제작한 것으로, 명예 손상을 최대한 줄이려고 했음을 밝힙니다.





# 4.


두 거인이 만나기로 한 날에는,
하늘이 유독 시린 빛을 띠고 있었다.


이대근 위원과 김 기자는 
조금 시간이 남아 효창공원을 거닐고 있었다.
백범 묘소 쪽으로 까치 한 마리가 잠자리를 쫓으며 날고 있었다.


"참, 그 분은 요즘 국정감사 있다고 바빠야 할 때 아닌가...
그런데도 시간을 낼 수 있었다니... 어지간히 심각한 문제이기는 한가 보네."

"당연하지요. 선배같으면 우리 신문사가 그렇게 취급받으면 어떻겠어요?"

"북악산도, 여의도도, 누가 비판받는 것을 그리 좋아하겠어? 그래도 할 말을 하는 것이 언론이잖아."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심했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글쎄,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자세한 건 이따 이야기할 때 정리해 보자."

"에이, 그런 건 지금 정리해야지요. 선배 지지 않을 자신 있어요?"

"이 대표도 여기서는 이기고 지고를 생각하지 않을 거야.
다만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려고 왔을 뿐이지... 그런 점에서는 진중권 씨한테 고마워지네."


김 기자는 '그렇다면 참으로 속이 편할텐데요'라고 말하려 했으나,
나름대로 심란해보이는 이 위원의 표정을 보고는 그만두었다.

"김 기자, 정치인과 언론인의 공통점이 뭔지 알아?"
"글쎄요..."
"어지간히 마음이 굳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이지."

"........ 선배는 마음이 굳다 못해 경직된 것 같아요."

"과연 누가 더 경직된 걸까... 하긴, 그걸 따지는 것도 지금은 어렵다만."




# 5.

만나기로 예정된 전날 밤,
민주노동당사의 회의실에는 밤새 불이 켜져 있었다.

"다행히 김기협, 유창선 씨, 여타 여론 논객들이 좋은 논리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중들이 어떤 태도를 보일 지..."

"무엇보다도 이대근 위원 자신이, 만만치 않은 사람이라는 것이..."

"그래도 우리 당을 북한 비판 않는다고 저러는 태도는 고쳐야 할 겁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가는 가운데,
이미 공개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밝혔던 이정희 대표는
내일 자신이 토론할 자료를 들고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었다.


"... 만약, 이야기가 별 소득없이 끝나면 어떻게 할 건가요?"


홍희덕 의원의 수석 비서가 질문을 하자,
회의실은 잠시 말이 없었다.

"울산시 쪽에서 한 것처럼, 절독 운동이라도 해야 할 것 아닙니까?"

"하지만, 우리 입장에서 우군을 잃어 좋은 것이 있겠습니까?"


여기에서도 결론을 내리지 못 하고,
일단 다음 날에 있을 토론을 지켜본 뒤에 
다시 회의를 열기로 하고 장을 맺었다.





# 6.


마침내, 한겨레신문사의 옥상정원에서 대화가 시작되었다.
대화를 하는 두 사람에게는 녹차가 제공되었으나,
서로는 머그잔에 좀처럼 손을 대려 하지 않았다.


"저기, 긴장 좀 푸시고, 편하게 갑시다. 
어차피 오늘만 보고 안 보실 것도 아닌데... "


보다못한 <한겨레>의 한 관계자가 말했지만,
그들은 서로 하고싶은 말이 있지만
뭔가 쉽게 표현을 하지는 못 하는듯 했다.


마침내, 오후 세 시 정각,
따사로운 햇살 속에서, 차가운 대화가 시작되었다.







# 7.

이정희 : (차를 따르며) 이대근 위원님, 그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이대근 : 저는 괜찮았습니다만, 대표님은 어딘가 불편해 보이시는군요.

이정희 : 잘 아시지 않습니까... 민노당을 그런 식으로 표현한다면...

이대근 : '그런 식'이라는 것이 정확하게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이정희 : 사설에서 말했듯이, 민노당이 진보를 손상시킨다는 것처럼 묘사한 것이 그렇지요.

이대근 : 하지만, 경향신문사의 사설도 나름대로 여기에 이유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정희 : 정확히 말해서, 신문사라기보다는 이 위원님의 판단이 아닌가요?

이대근 : ...........

이정희 : 좋습니다. 저희가 북을 비판하지 못한다고 그러는 건가요?

이대근 : 정당의 원칙이라는 것이, 본래 국가와 관련된 중요한 일이 있으면, 
           논평을 내고 정치적 입장을 뚜렷이 밝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이정희 : 하지만, 북한이 세습을 하는 것은 그 쪽의 사정이고,
           민주노동당이나 경향신문은 '대한민국'의 정당이고 언론이지 않습니까?
           외부의 일에 일일이 개입을 할 만한 속성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대근 : 그렇게 따진다면, 미국도 '대한민국'이 아닌 외부 체제 아닌가요?
          민주노동당이 미국에 대해 논평을 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혹은 중국이나 이스라엘의 경우는 어떨지...

이정희 : 미국은 핵심적으로 대한민국의 이해와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한미군의 존재나, 한미 FTA의 경우,
          노동자와 민중이 미국 권력에 의해 어떤 일을 당하는가를
          경향신문도 상당 부분 묘사를 했다고 기억하는데요.


이대근 : 물론입니다. 저는 미국의 힘이 대한민국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다고 인정합니다.
           하지만, 북한이 벌이는 일이라고 왜 그렇지 않겠습니까...
           북한 권력층의 세습이라는 것이, 과연 도덕/합리적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이정희 : 북한이 권력 세습을 하는 것이, 반드시 잘못된 일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세습이라는 것을 비합리적이라고 단정하기도 그렇고...
          북한 사람들이 향후 김정은 체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도 고려해야지요.


이대근 : 혹시 "우리 국민들은 독재를 좋아한다"고 근래에 말했던 YS를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북한의 공식적인 정치적 통로가'주체사상식 일가 선군주의 정치'에 의해 차단되어있다고 해도,           북한 사람들 역시 세습을 좋아한다고 단정하는 것은 지나치며,
          설령 그렇다고 쳐도, 그것이 합리적인 일인가와는 또다른 문제입니다.
          
          


이정희 : 싱가포르 등의 사례를 보면, 반드시 세습이 안 좋은 결과만 불러온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휴전선 밖의 일이구요.


이대근 : 싱가포르는 경제적 면에 있어서 선진국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언론이나 정치적 자유는 제한되어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것을 사람들이 취할 '자유 민주주의' 국가의 모범이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북한의 경우, 그러한 세습제의 교조화로 인해서
          인민들의 의사가 정책에 제대로 반영될 통로는 극히 제한됩니다.


이정희 : 지금 남한도 국민들의 정치적 의사 반영이 취약한 건 비슷해 보입니다만...


이대근 : 옛날보다야 나아졌지만, 지금 와서는 의사 표현의 자유가 상당히 후퇴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다루고자 하는 것은 '북한 권력 세습'의 문제이고,
           따지자면 1:1로 남북한의 환경을 비교한다는 것 역시 무리입니다.


이정희 : 말씀 잘 하셨습니다. 1:1로 남북한을 비교하기는 무리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북한이 지금 '세습으로 인해 악조건'에 처해졌다고 단정하기도...


이대근 :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는 국호를 택하고 있는 북한이,
           과연 '민주주의'와 '인민', '공화국'이라는 체제를 존중하기 때문에
           세습제라는, 다시 말해 인민들의 정치적 기회를 많이 박탈시키는 환경을 택했을까요?

           그렇다면, 민주주의와 도덕률은 남한에만 적용되는 것으로,
           북한에는 '나름의 특수성'이 있고, 실질적으로 도움이 안 되기 때문에
           '나름 기대를 걸고 좋은 방향으로 관계 맺기를 바란다'고 표현하시는지요?         


이정희 : 북한을 대놓고 비판한다고 해서, 북한의 환경이 바뀔 확률은 거의 없고,
           오히려 긴장감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아질까 우려됩니다.
           통일되고 나서 민주주의를 적용해도 늦지는 않지 않겠습니까?


이대근 : 물론, 북한이 '네, 그렇게 비판하니 세습을 끊겠습니다'라고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희가 공통적으로 4대강 사업에 대해 비판적 의견을 내지만,
          여당 지도부가 그 말을 듣지 않으리라는 것과 비슷하겠지요.
          
          하지만, 남한도, 북한도, 미국도, 중국도 공히 타국에 대해 비판/비난을 가하면서도
          실리적인 관계를 저버릴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습니다.

이정희 : 지금 정부의 외교 관계를 비판하고 있는 경향신문이 
           남한이 어리석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모순같은데요.

이대근 : 만약 정부의 입장이라면, 외교적인 전략으로 신중하게 말할 필요가 있겠지요.
           실제로, 여야 각 당과는 달리, 대외 권력을 가진 정부는 언급을 피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언론이나 정당의 경우에는, '정도'를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최근 강경하고 대미 외교에 치우친 쪽을 비판하는 것을 보셨겠지만,
           그것이 북한의 상황을 '정당화'시켜줄 이유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정희 : 글쎄, 그러니까 그것이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굳이 설명드려야하겠습니까...


이대근 : 여당도, 민주당도 모두 3대 세습을 비판한 판국에,
          민노당이 비판적인 논평을 낸다고 해서 북한의 화를 돋울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가요?
          가슴아픈 이야기입니다만, 민노당은 그 정도의 힘이 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화를 더 내게 한다고 해서, 야당이 정부/의회 다수당으로 협상장에 나서지 않는 이상에는,
          북한은 이를 쉬이 평가하려 들지 않습니다.
          그럴 바에야 '보편적인 정도'가 무엇인가를 말하는 것이 더 낫겠지요.  


이정희 : 그렇지만.....


이대근 : 옛날 박통/전통 시절에 민주화를 위해 희생당하고, 지금도 노력하시는 분들은
           과연 자신들의 노력이 '현실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해서 그러셨을까요?
           물론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책은 필요합니다. 남북 대화같은 것이겠지요.
           하지만, 그것이 '할 말을 못한다'거나, '일방적인 손해'로 귀결된다면 타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정희 : 지금 민노당이 이러는 것이 '일방적 손해'로 귀결된다고 보시나요?
          민노당은 나름대로 생각이 있고, 대한민국의 정당으로 최선을 다한다고 봅니다.


이대근 : 민노당이 최선을 다한다고, 그것이 곧 좋은 결과로 연결되지는 않지요.
          정권은 지금 4대강을 파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만, 그것이 과연 좋은 일인지?
          

이정희 : 꼭 여당과 저희를 비교하셔야겠는지... 아쉽습니다.
          그렇다면, 북한의 일상적인 독재와 인권 탄압에 관해서는 이야기를 않고,
           왜 이런 사건만 터져나오면 도덕적인 것처럼 행동하시나요?


이대근 : 그건 조중동 방식의 질문과 비슷해 보이네요.
          여기 있는 '한겨레'도 그렇지만, 경향신문도 북한의 일상적인 사회 흐름과 
          제반 권력 체제에 대해 훌륭하거나, 용인할 만하다고 이야기한 적은 없습니다.
          물론 3대 세습이라는 것이 더 자극적이고 비도덕적인 일이라고 판단하지만,
          평화라는 방법론을 택하더라도, 그건 체제를 긍정하는 것과는 별개이지요.
     
          결정적으로, 이정희 대표께서 말하셨듯, 
          저희는 대한민국의 언론으로, 그 쪽에 접근할 길이 막혀 있고,
          남한에도 다루어야 할 사안들이 많지 않습니까?
          다만, 그것이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 - 핵개발, 세습, 군사적 행동에 대해 
          비판하지 말고 넘어가야한다는 이유는 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이정희 : 그렇다면, 북한의 세습에 대해 민노당이 비판하지 않는다고 해서,
           마치 저희를 '종북'이라는 인상으로 몰아가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그 동안 진보층이 보수 권력층의 색깔론으로 당한 것을 생각해 보면...


이대근 : 경향신문은 민노당이 '이번 북한의 체제에 기대한다'고 말한 것에 대해 비판한 것입니다.
           차라리 민노당이 가만히 있었다면, 비판의 소재가 덜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현재 대한민국에는 민노당식으로 사고를 하는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현실 개혁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북한에는 비판적인 사람이 더 많다고 봅니다.
           실제로 북한이 좋다고 말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로서는 인정될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을 '옳다. 관용으로 대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으로 나가기는 어렵다는 것이지요.

           물론, 사설에서 지적했듯, 북한과 호혜적인 대화를 하자면 색깔론이 등장합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진보층이 믿는 것은 도덕적인 방향으로의 사회 혁신인데,
           지금의 민노당에서 청소년들은 과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이정희 : 민족의 평화와 자주를 구하는 일이라면, 그리고 국민의 복리를 구하는 일이라면,
          청소년들을 경향신문이 굳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겠습니다.


이대근 : ...... 마지막으로 한 말씀 드리지요. 북한과 교류를 하는 이유와도 연계가 되어 있는데,
           민노당이 정말로 민족의 평화와 자주, 복리를 구하신다면,
           그렇게 해서 정말로 북한을 장래 '하나의 한국인'으로 같이 살아가기를 바라신다면
           북한이 좀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사람들이 보다 합리적으로 사는데 도움을 주셨으면 합니다.

           
이정희 : 정치는 이상만으로 하는 것은 아닙니다. 현실을 고려해야지요.


이대근 : 외람되지만, 정치판의 현실주의로 말하자면 저도 만만치는 않습니다.
         북한 체제를 비판하면, 북한은 아마 싫어하겠지요.
         하지만, 그것이 남쪽의 입장이 반영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지요.
         비록 그것이 '현실적으로 쓸모가 없다'고 하더라도,
         보다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정당이라면,
         남쪽의 여론 및 도덕과, 북쪽의 현실 및 인민의 장래를 모두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이정희 : 알겠습니다. 저희가 더 할 이야기가 있을까 모르겠습니다만....


이대근 : 시간 되시면, 민주노총 사무실에 방문하실 겸해서,
          사옥에 들러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 신문에도 민노당의 입장에 공감하는 기자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으니, 
          많은 이들과 의견을 나누다 보면 
          서로 수정할 수 있는 여지도 늘어날 것입니다. 





# 8. 

대화는 그쯤에서 끝났고,
한겨레신문사의 옥상에 비치는 
화분의 그림자도 상당히 길어졌다.


옥상정원을 내려오는 
두 거인의 얼굴에는
일말의 착잡함이 보였다.

둘은 저녁을 같이 하자는
한겨레 관계자의 제안을 사양하였다.
이정희 대표는 뭔가를 생각하는 모습으로
차를 타고 여의도 쪽으로 돌아갔다.



"자네가 보기에는 어떤 것 같았어?"


다시 효창원 언덕 쪽으로 방향을 잡으며 이대근 위원이 물었다.


"글쎄요. 나름대로 일리가 있어 보였습니다만... 최소한 밀리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가... 하지만 진보를 분열시켰다는 책임이, 또 내게도 돌아오는 건가.... 슬퍼지네..."


"아마 이 대화를 적은 기록이 올라가면, 또 논란이 되겠는데요..."


"글쎄, 최소한 언론사라면 욕은 덜 먹게 하고 싶은데... 이제 나도 지쳤는지 몰라."


"이건 앞으로 누가 평가를 해 줄 일이고, 어떻게 마무리될까요?"


"글쎄... 이것도 한 가을날의 꿈이겠지만, 누군가 보고 진지하게 생각만 해 주어도, 나는 만족해."






그 날 밤, 정동의 경향신문 사옥도, 민노당사에도 불이 꺼지려 들지 않았다.
아마, 서로가 속이 편하지는 않았으련만,
그래도 누군가는 이 사건을 기록으로 남길 생각을 하였으리라.









타오름을 예상하기에 슬픈 장작이여. 노란 불꽃 피우려는 건 인간이건만, 그들은 끝내 말이 없네.
하지만 아프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불길 앞에서 그 아픔을 감추어 산화한다는 것을.


@Noribang. 관악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