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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리즈=====/Noribang의 석간 경향

31. 국가족 & 신문과 외래어


김종환 - 사랑을 위하여 (1997)




잘 계셨는지요?

안개가 오전 내내 곁을 지키면서
새벽 운전하는 분들의 마음을
어지간히 파고드는 날이었습니다.

안개가 끼면 낮의 날씨가 좋다고는 하지만...
아무쪼록 안개를 즐기시면서도,
안개로 인해 불편을 겪는 일이 줄었으면 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해 봅니다.




총리께서 또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군요.


요지는 '부모 부양은 국가가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부득이해서 하는 것이지, 
이를 전적으로 국가가 책임지고 한다는 것은 품격적이지 않다'는 것인데,
'지하철 노인 무료승차' 문제에 이어 화젯거리를 제공했다는 생각입니다.

댓글에서도 여러 의견이 나오더군요. 

찬 - "자식이 부모 부양을 하기도 쉽지 않다", "고생한 분들에 대해서 정부는 과연 어떻게 생각하나?"
      "부모-자식 간의 사이를 경제 때문에 소원하게 만드는 것을 줄이는게 세금 받는 국가 아닌가?"
      "정부는 노인 연금도 조금씩만 주고, 감세하고 경제도 어렵게 하면서 책임은 회피하려 드나?"
반 - "총리 말이 맞다" "어려운 부모야 도와주더라도, 형편 좋은 사람들까지 책임져야 되나?"
     "부모가 자식을 키워줬는데, 자식이 보은(?!)할 역할을 국가가 총체적으로 떠맡아서 쓰나?"
     "경향신문이 기사의 내용과 제목을 뒤틀어놓았다. 총리는 다만 진심 표현력이 부족했을 뿐"

대강은 뭐 이런 이야기들이더군요.
여기서도 무상급식/노인 전철표 등 선별적/보편적 복지 이야기가 나올 수 있고,
부모-자식 간의 윤리 문제, 정부가 가족 구조를 돕지는 않고 책임을 넘기려는 자세가 맞나 하는
지속적인 토론거리가 나올 수 있겠습니다.


하나 덧붙여서,
'경향신문이 표현력이 부족한 총리의 말을 악의적으로 편집해서 기사의 내용과 제목을 뒤틀어놓았다'는 안타까운 지적에 관해서 총리가 했다는 말을 다시 인용해 봅니다.

“가족 내 문제는 경제적인 문제를 떠나 가족 내에서 도와주는 게 건전한 사회를 위해 바람직하다”
“죄송스러운 말이지만 가족 부양을 사회적 부담, 국가 부담으로 전환시키는 데 따른 
사회적으로 고려해야 할 문제들이 함께 검토돼야 한다”
"“능력이 되든 안 되든 (노인 부양을) 국가와 사회의 책임으로 돌리는 국민의 생각은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긴 하겠지만, 과연 우리나라의 품격, 전통이나 국가 장래를 위해 과연 옳은지 사회적으로 검토를 해야 하는 문제”

과연 백성들의 실질적 생계와 자부심, 국가-백성의 상호 신뢰보다도 앞선다고 하는
 추상적인 품격/전통/장래를 말하는 언어에서 나오는 자세가
"총리는 다만 표현력이 부족할뿐, 신중한 자세를 갖고 있다"는 말로 변론이 될 수 있을지...
그리고 신문을 비난하는데 적절한 논거가 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ㅜㅜ

어쨌든, 가족과 국가가 서로 대립적인 항목으로 작용하기보다는,
세금을 걷어가고 사회를 대표하는 조직으로서 정부/의회/법원/시민 사회가 제 역할을 해서
노인을 단지 '가족 구성원'이 아닌 '사회 구성원'으로 잘 살아갈 수 있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 봅니다.




주말이면 주말답게, 진부하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로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먼저, 올해 5월에 쓰였던 이 기사부터 한 번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갈색봉지 회의’라고 하면 어리둥절할 것이다. 하지만 ‘브라운백 미팅’이라고 하면 더러 알아듣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교육과학기술부가 교육정책에 관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이른바 ‘교육정책 브라운백 미팅’이란 것을 매월 열기로 했다. 어제 첫 ‘미팅’이 교과부 차관과 일선 학교 교육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주제는 ‘수석교사 제도 정착방안’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눈길을 끄는 것은 회의 내용보다는 브라운백 미팅이란 생소한 이름이다. 알아 보니 브라운백은 미국 햄버거 가게 같은 데서 먹을 것을 담아 주는 누런 종이봉지로, 브라운백 미팅은 간단한 점심을 곁들인 자유로운 토론 모임이란 뜻이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필자의 무지다. 몇 년 전부터 브라운백 미팅은 공무원 사회 등에서 많이 써온 말이고 따라서 낯선 이름이 아닌 듯하다. 그러나 이보다 더 놀라운 것은 교과부의 무신경이다. 우리말을 보호하고 장려하는 데 앞장서야 할 정부 기관이 정례회의에 굳이 유래를 알아야 뜻이 통할 외국어 이름을 붙여야 하나. 근래 로드맵, 클러스터, 허브 등 정부·공공기관의 영어 사용이 폭주하고 있으나 그 뜻을 제대로 알고 있는 국민은 15% 정도라는 조사도 있다. 

외국어가 남발되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무성의와 편의주의, 영어 우월주의, 세계화가 뒤섞여 있다. 영어를 적절한 우리말로 바꾸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영어가 필수인 세계화 시대에 영어 좀 섞어 쓰면 안 되나. 더욱이 어릴 때부터 영어몰입교육을 강요하는 세태다. 이토록 영어를 집요하게 숭배하는 사회에서 ‘브라운백 미팅’의 출현은 어쩌면 필연이다. 교과부마저 우리말을 하찮게 여긴다고 비판하기가 차라리 객쩍다. 

그럼에도 또 한 번 말해야겠다. 언어는 생각의 집이다. ‘말이 생각과 다르게 나온다’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말과 생각은 다른 게 아니다. 둘은 사실상 하나다. 생각이 난삽하면 말이 어지러워지고 반대로 말을 정리하면 생각이 차분해진다. <혼불>을 쓴 최명희는 “언어는 정신의 지문”이라고 했다. 우리말 사랑은 한글날에나 꺼내는 연례행사가 아니다. 관청부터 외국어 사용을 자제하고 우리말을 갈고 닦아야 한다. 보건복지부가 법률 용어로 ‘홈리스’를 쓰려다 부랑인·노숙인으로 바꾼 선례가 있다.

<김철웅 논설실장>




시간이 좀 지나기는 했지만, 아직도 의미가 있는 글이라는 생각입니다.
특히, 한글날이 있는 10월 언저리가 아니라,
가정의 달 5월에 쓰인 글이라서 더 진정성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경향신문에서도 외국어 표기, 특히 경제면과 문화면에서 
충분히 한국어로 풀어서 표기할 수 있음에도, 
다만 '관용적'이라는 이유로 외국어/외래어를 쓰는 일이 잦다는 생각입니다.

'애크러배틱(acrobatic), 페이소스(pathos), 카타르시스(catharsis), 페르소나(persona), 
아이템(item), 버블(Bubble), 리스(lease), 리스크(risk), 프리미엄(premium)'

'묘기, 비감, 정화, 인격적 가면, 품목, 거품, 대여 계약, 위험, 할증금' 등의 용어로 대치하기 어려운 것일지,
비록 익숙한 단어라고 해도, 신문이 그것을 바꾸어나갈 여지는 어느 정도인지
자판을 누르기 전에 조금씩만 더 고려해주시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런 점에 주의를 기울이면서도 독자들이 일부러 외국어에 익숙해지기보다는, 
가급적 한국어로 말뜻을 잘 알게 해서 일상에서 활용하는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데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함께 해 봅니다.)


사람들이 더 편하면서도 현명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신문이 되었으면 합니다. ^^


울산바위



@Noribang - 입동(入冬)을 하루 앞둔 서늘한 날 / 좋은 주말이 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