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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칼럼+옴부즈만

KBS의 징계, 역풍이 불 것!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KBS 김인규 사장은 수신료 인상안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공정성이 공영방송의 전제 조건이라 공언했다. 그리고는 얼마 후 <추적60분>의 4대강 사업 편을 불방시켰다. KBS는 부정하지만 혹자는 한나라당의 예산 날치기처리 정보를 미리 알고 있었던 KBS의 ‘예상가능한’ 선택이었다고 보기도 한다. 한편 이번 불방은 수신료 인상안 의결 이전에 논란이 되었던 <추적60분> 천안함 편이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결국은 방송이 된 것과 묘하게 대비를 이루는 측면도 있다. 이사회에서 수신료 인상안이 이미 의결 되었다는 얄팍한 판단이 작용했는지.

 KBS의 횡포는 이에 그치지 않았다. 언론노조 KBS본부(새노조) 조합원 60명을 징계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무려 4개월 전 불법 파업 가담한 것에 대한 징계라는 것이다. 합법성을 인정받아 마땅한 노조가 단체교섭권을 따내기 위해 한 단체행동을 간단히 불법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그러니 일각에서는 추적60분 불방에 대한 반발을 상쇄시키기 위한 조치라는 의구심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한다. 또 다시 KBS의 공정성이 심판대에 올랐다.

 KBS의 공정성 훼손이 심각하다는 비판에 대해 공정성이라는 것이 사람마다 다른 잣대일 수 있고 그래서 공정성으로 비판할 수 없다고 반박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과 진실이 엄존하는데 공정하다는 것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다. 기계적 중립이나 양적 균형이 아닌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면 그게 곧 공정한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 KBS가 4대강에 대한 국민의 반대, 4대강 사업의 위험성에 대한 전문적 비판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는 것이 바로 불공정한 것이다. 대다수의 국민이 전쟁을 바라지 않는데도 호전 세력의 발언과 주장을 그대로 전달하는 보도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공정하지 않은 것이다.


 백번 양보해 내용의 공정성을 판단하는 것이 어렵다 하더라도 언론이 공정성 자체를 포기할 수 없는 것이라면, 공정성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사실 공정성을 보장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기자·PD를 진정 자유롭게 하면 저절로 달성할 수 있는 것이 공정성이다. 언론인 각자가 개개의 양심에 따라 자유롭게 취재하고 사실과 진실에 따라 보도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 즉 내적 언론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공정한 언론을 이루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KBS새노조 조합원들이 21일 KBS민주광장에서 사측의 <추적60분> 불방과 조합원 징계를 비판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김창길 기자

 우리 언론의 역사는 독재 정권의 탄압에 저항했던 언론인들의 희생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런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즉 내적 언론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참된 언론인들은 5공 독재가 끝나는 1987년부터 지금까지 싸워왔다. 일정한 성과도 얻었다. 편집권·편성권과 관련한 각종 제도적 장치도 확보했다. 공영방송들은 사장 선임의 독립성도 어느 정도는 달성했었다. 그런데 그 공든 탑이 최근 2-3년 사이에 와르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저항하는 언론인들 중에 KBS 새노조가 있다. KBS는 바로 이런 싹을 자르는 조치를 하겠다는 것이다. 아마도 징계라는 칼을 휘둘러 소위 위축효과를 거두겠다는 뜻이리라.

 하지만 징계를 하겠다는 경영진에 대해 징계 대상에서 제외된 조합원은 나도 징계하라 했다하고, 어떤 조합원은 징계 받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한다. 비판적 프로그램들을 폐지했지만 ‘추적60분’은 그 어려운 환경에서도 진실을 전달하기 위해 애쓰고 있고, 징계는 오히려 더 큰 반발을 야기하고 있다. 강력한 탄압은 일시적 효과를 나타낼지 모르지만 용수철처럼 누르는 힘만큼 더 튀어 오르는 반발을 받기 마련이다.


 이런 현상은 아주 단순한 진리에서 비롯한다. 언론은 수용자의 신뢰 없이 살 수 없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수용자의 신뢰가 빠져나가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일선 언론인들이 왜곡된 언론에서 견딜 수 있는 정도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2008년 촛불에서 보았듯이 수용자들로부터 부는 역풍 역시 거셀 것이다. 왜곡된 언론이 일시적으로 수용자의 눈을 가릴 수는 있어도 그게 영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어둠이 길면 새벽이 오고, 추위가 매서우면 봄이 다가왔다는 것을 의미하듯 이제 KBS에 봄이 오려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