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웅 경향신문 논설실장 일본 경제주간지 '닛케이 비즈니스'1599호 표지를 장식한 소녀시대.
요즘 두 개의 두드러진 대중문화 ‘현상’이 시선을 잡아끈다. 하나는 일본에서 불고 있는 한국 걸그룹 열풍이다. 당초 필자는 ‘열풍’이란 표현이 필시 우리의 희망이 담긴, 과장된 것이겠거니 했지만 그게 아닌가 보다. 일본 공영방송 NHK는 지난 8월 말 9시뉴스인 <뉴스워치9>에서 한국 걸그룹 소녀시대가 이날 도쿄에서 새 앨범 발표회(쇼케이스)를 열었다는 소식을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카라와 포미닛 등 한국 걸그룹들의 일본 진출 소식도 전했다. NHK가 연예뉴스를 이렇게 비중있게 다룬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한다. 그럴 만한 뉴스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소녀시대’ 노래와 춤 일본내 열풍
또 다른 현상은 국내 가수 발굴 TV프로그램 <슈퍼스타K 2>의 폭발적 인기다. 몇주 전부턴가 필자도 대학생 딸들이 보는 이 프로에 빠져 금요일 밤을 보내곤 한다. 케이블 TV 엠넷이 미국 폭스 TV의 최고 인기 가수 발굴 쇼 <아메리칸 아이돌>을 본떠 만든 이 프로그램은 경이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최근 시청률은 총 16.15%로 동시간대 지상파 방송들까지 압도했다. 더 놀라운 건 134만830명이 이 프로그램 1차 오디션에 참가했다는 사실이다. 전 국민 40명 가운데 한 명이 UCC(사용자 제작 콘텐츠)나 ARS 전화를 통해 오디션을 받은 셈이다.
이미 <아메리칸 아이돌>의 대성공이 미국에서 하나의 ‘피노미논(현상)’으로 평가됐지만 <슈퍼스타K 2>는 이를 능가하는 한국적 사회·문화 현상으로 받아들일 만도 하다.
그러나 이 두 개의 ‘현상’을 마냥 긍정적으로만 평가할 수는 없다. 짚어봐야 할 대목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을 뭉뚱그려서 편중과 불균형의 문제라고 말할 수 있다. 우선, 지나친 걸그룹 편중이다. 전문가들은 춤, 노래, 예쁜 외모를 갖춘 걸그룹만으로는 일본 시장에서 긴 생명력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한국이든 일본이든 대중의 취향은 변덕이 심하다. 일본 음악은 그 다양성에서 미국을 능가한다는 평가가 있는 만큼 섹시 코드 중심의 획일 단순성은 독이 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또 일본의 한국 걸그룹 열풍에는 그들의 대리·우회 만족적 측면이 없는지 살필 일이다. 국회에선 요즘 걸그룹의 연소화와 선정성이 문제가 되고 있다. 한나라당 안형환 의원은 오락 프로그램들이 어린 여자 가수들에게 섹시 댄스, 섹시 표정을 주문한다며 “이런 모습이 자꾸 방송에 나오니 학생들이 흉내를 낸다. 우리나라 초등생 42%가 가수, 8%가 탤런트를 꿈꾸는데 이는 정상적인 나라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일본은 청소년 연예인에게 근로기준법을 적용해 취업과 근로시간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오후 10시 이후에는 방송 출연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고도 했다.
얼마 전 가수를 지망하는 여고생의 매춘 강요 사건이 기사화됐다. 연예기획사 대표가 투자 명목으로 돈을 받은 대가로 이른바 스폰서에게 성접대를 하도록 강요한 혐의다. 문제는 청소년들의 헛된 연예인 동경이 지속되는 한 이런 사건은 근절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점이다. 어린 아이들이 TV에 나와 걸그룹 흉내를 내는 것 자체는 큰 문제라 할 수 없다. 예로부터 가무 음곡을 즐긴 조상의 후예들이 노래를 좋아하고 가수가 되고자 하는 걸 나쁘게 볼 이유도 없다. 도리어 노래는 고단한 삶에 큰 위안이 될 것이다.
편중과 불균형 문화 독이 될 수도
그럼에도 요즘 세태는 우리의 문화적 편중과 불균형 문제를 성찰하게 만든다. 고은 시인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또 다시 좌절됐다고 실망하지만 우리는 시와 문학을 얼마나 가까이 하고 있는가. 베네수엘라가 국제 미인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나라면서 동시에 빈곤층 청소년을 위한 음악교육 프로그램 ‘엘 시스테마’를 통해 구스타보 두다멜 같은 걸출한 지휘자를 탄생시킨 음악애호국이란 것도 생각난다. 걸그룹과 <슈퍼스타K 2>의 열기로부터 피어오른 유감이다.
Mnet ‘슈퍼스타K2’ 결선 진출자인 존박(맨 왼쪽)과 허각이 지난 15일 방송을 끝으로 탈락한 장재인을 끌어안고 아쉬움을 나누고 있다. 사진 엠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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