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화되는 우려1.
시청률이 오르기는커녕
지난 9월 김재철 사장과 경영진은 이미 떨어질 대로 떨어진 주말 뉴스데스크의 경쟁력을 올리기 위해서는 뉴스 시간을 8시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시청자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뉴스 시간을 옮기면 시청률이 훨씬 좋아질 것이라며, 뉴스도 살리고, 드라마도 살리려면 시간대를 옮기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강변했다. 조합과 보도국 구성원들은 반대했다. “9시 뉴스데스크라는, 40년간 지켜 온 시청자와의 약속까지 깨가면서 강행하기엔 너무나 위험한 도박이다. 무엇보다 치밀한 분석이 선행돼야 하고, 비장의 카드도 있어야 하지만 우리에겐 손에 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호소했지만, 그들은 막무가내로 개편을 밀어붙였다.
그 결과는 어떠한가. 경영진이 목숨처럼 여기던 경쟁력-시청률이 오르긴 올랐는가? 알다시피 지난 주말 뉴스데스크 시청률은 토요일 8.6%, 일요일 9.2%(AC닐슨)로, 각각 8.7%, 9.8%를 기록한 SBS 8시뉴스에도 뒤졌고, 16.7%, 18.2%를 기록한 KBS 9시뉴스에 비하면 딱 절반에 그쳤다. 주말 뉴스데스크가 8시로 옮긴지 7주, 20%까지 반짝 치솟았던 광저우 아시안게임 특수가 끝난 11월 말 이후 줄곧 내리막이다. 초라한 성적표다.
현실화 되는 우려 2.
뉴스의 본질마저 흔드나
당시 김재철 사장은 개편을 강행하면서 “개편이 실패할 경우 두 손 두 발 들고 회사를 나가겠다”며 비겁하게 책임을 회피하지는 않을 것임을 분명하게 밝혔다. 그러나 김재철 사장과 안광한 편성본부장을 비롯한 경영진이 그 책임을 다해야 하는 날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이 순간, 책임의 화살은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고 있다. 주먹구구식 개편 전략의 문제점은 슬그머니 사라지고, 흥미 위주의 선정적 기사가 없어 주말 뉴스데스크의 시청률이 떨어진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보도국에선 시청률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흥미 위주의 선정적 기사를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징후들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공식적인 편집회의에서조차 “주말 뉴스는 의미 보다는 시청률이 우선”이라는 이야기가 자연스레 오간다. 어떤 사안에 대해 기사가 되는지 안 되는지를 판단해왔던 기자들은 시청률에 도움이 될지 안 될지를 놓고 기사 가치를 판단하려 드는 보도국 간부들을 보며 어리둥절해하고 있다. 실패한 ‘시간 이동’의 책임을 기자들에게 뒤집어씌우고는, 기사를 바라보는 ‘가치관의 이동’을 강요하고 있는 꼴이 아닌가. 민실위는 그런 점에서 우리 뉴스에 뉴스데스크 시간 이동보다 더 심각하고 본질적인 위기가 현실화되고 있다는 진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심층 고발 뉴스 강화한다더니
다시 9월로 돌아가 보자. 개편 당시 사장과 보도본부장, 보도국장은 ‘후+’ 폐지와 주말 뉴스 시간대 이동으로 보도프로그램의 심층 고발 기능이 약화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자 주말 뉴스에 5분 이상의 심층 고발 아이템을 심겠다고 다짐했다. 실제 주말뉴스 부엔 10년차 안팎의 중견 기자들이 집중 배치됐고, <변방에도 김정은... 한마디로 대장님>, <내성천에 영주댐 건설...대형댐 꼭 필요할까>, <자치단체장... 호화관사는 기본, 기자는 부하직원?>, <민간인 불법사찰 증거인멸... 디가우저가 했다> 등 의미 있는 심층 아이템들이 다뤄졌다. 이런 기사들과 함께 기자의 체험 리포트 등 색다른 시도들이 맞물려 기존 뉴스와 차별화됐다는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기도 했다.
MBC 주말 뉴스데스크를 진행하는 최일구, 배현진 앵커가 11월2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출처 MBC
그러나 경영진의 ‘순진한’ 예상만큼 시청률이 나오지 않자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심층 기획 보도는 슬그머니 사라지고 있다. “그림도 안 되고, 재미도 없다”는 이유에서다. 대신 그 자리엔 사건 사고성 기사나 동물 관련 기사 등 좀 더 자극적이고, 그림이 되는 아이템들로 채워지고 있다. 보도국 간부들은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사건사고를 전진 배치하고, ‘그림 되고 재미있는’ 아이템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최근 SBS가 우리 뉴스를 이기는 것은 뉴스 전반부에 연예인 마약, 불법주차 실태, 쌍꺼풀하려다 전신 성형, 지방흡입 수술 받다 사망, 바람 잡는 지하철 상인, 술취한 연말 밤거리, 견인차 도심 무법 질주 등 전형적인 사건사고성 기사를 집중배치 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에 기인한 것이다.
9시를 포기했다고
‘뉴스’마저 포기할 순 없다
지겨울 정도로 반복되는 쳇바퀴다. 우리 모두 이 레퍼토리를 잘 알고 있다. 시청률이 떨어진다. 흥미성 기사를 밀어 넣는다. 약발이 들으면 다행이지만 대개는 신통치 않다. 일선 기자들의 불만은 높아지지만 지도부의 태도는 굳건하다. 비판, 감시도 다 생존 이후에야 가능한 얘기라는 식이다. 김재철 사장식으로 말하자면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거다.
한 백보쯤 양보해보자. 시청률 중요하다. 우리 기자들 또한 보지 않는 뉴스를 원하진 않는다. 문제는 권력에 비판적인 기사보다 흥미성 기사가 더 시청률에 도움이 된다는 건 그저 ‘믿음’에 불과하다는 거다. 눈과 귀만 자극하는 기사로 도배를 하면 과연 기대하는 만큼 시청률이 올라갈까. 조금 더 양보해서 반짝 올라간다고 치자. 그게 언제까지고 유지될 수치일까. 그것이 과연 시청자를 오래도록 붙잡는 ‘뉴스의 힘’이 될 것인가 말이다. 지금 이 시대,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에 대한 언론인으로서의 정도(正道)를 벗어나 길을 잃고 헤맨다면, 우리의 말에 그 누가 귀를 기울이겠는가.
이제 와서 다시 9시로 되돌리라는 요구를 내걸지는 않겠다. 대신 시청률과 흥미성 보도 사이의 허약한 고리에 매달려 뉴스 전체의 틀을, MBC 뉴스의 힘을 고갈시키는 짓은 이제 그만두라고 요구하겠다. 그런 믿음에 매달려 있다간 시청률은 물론이고 MBC 뉴스가 지금껏 애써 키워온 ‘신뢰감’마저 잃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의 시청률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해야 할 뉴스’는 하는 뚝심 있고 지혜로운 기사를 계속 써 나갈 수 있다면 우리 뉴스는 속이 꽉 찬 경쟁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 구성원들은 믿고 있다. 1-2년 하고 말 것도 아니지 않은가. 내년이 50주년이라는데.
전국언론노조 문화방송 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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