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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칼럼+옴부즈만

대표되지 않은 자의 무기 - 트위터 이후의 민주주의

 장덕진 서울대교수·사회학

 최장집 선생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는 아마도 지난 10여 년 사이에 나온 한국 정치에 대한 가장 중요한 연구서라고 할 것이다. 불행히도 이 중요한 책이 전달하는 분석과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보수독점이라는 한국 정치의 현실은 정치가 유권자를 제대로 대변해주지 않는 비대표성의 문제를 낳게 되고, 스스로 대표된다고 느끼지 않는 유권자는 정치에 참여할 동기부여를 잃어버리게 되며, 국민들의 정치무관심은 보수독점 정치를 유지시켜주는 악순환을 낳기 때문이다. 투표율은 갈수록 낮아지고, 그 추락의 속도도 가속화되어왔다. 한 마디로 민주화 이후 한국 민주주의는 질적인 위기에 처한 것이다.

 출구는 없는 것일까. 나는 ‘트위터 이후의 민주주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볼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투표불참에 대한 고전적 설명은 합리적 선택이론으로부터 나온다. 유권자가 확실하게 원하는 결과가 있다 하더라도, 어차피 그의 한 표가 선거결과를 바꾸어놓을 확률은 0에 수렴하는 반면 투표소까지 가야 하는 비용은 엄연히 존재한다. 합리적인 유권자는 투표하지 않을 충분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이 차갑고 음울한 설명은 트위터 이전의 민주주의에서 나타나는 정치무관심을 잘 설명해준다. 그런데 만약 투표에 참여할 경우 주변 친구들로부터 많은 칭찬과 격려를 받고, 다 같이 서로 칭찬해주면서 투표에 참여하는 것이 하나의 즐거운 놀이가 된다면 어떨까? 여기에서 오는 만족감은 투표장까지 가는 비용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합리적 유권자는 투표소에 기꺼이 갈 것이다.

 트위터는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이상적인 환경을 제공해준다. 트위터에서 서로를 따르는 사람들은 서로의 일상을 꽤 소소히 알게 되고, 이러한 관계는 상당히 긴 시간 동안 안정적으로 지속된다. 게시판에 악플 달고 도망가면 그 뿐인 과거와는 달라진 것이다. 당연히 투표에 참여했는지 안했는지를 알게 될 가능성도 높고, 트위터 친구들의 반응도 달라진다. 이런 의미에서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인증샷 놀이는 필연적인 것이었다. 트위터 이용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었고, 이에 호응하듯 유명 인사들의 선물기부도 이어졌으며, 이것은 사람들을 투표소로 끌어냈다.

 실제로 트위터 이용자들에 대한 조사결과와 소셜 네트워크 전문 기업의 분석자료를 종합해보면, 트위터 이용자들의 투표참여율은 비이용자들에 비해 현저하게 높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까지 제도권 정치에 의해 대표되지 않는다고 느끼고, 그렇지만 나 한 사람 투표한다고 해서 세상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사람들이 이제 트위터를 통해 “혼자가 아니다”라고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나 같은 사람들이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면서 “한번 바꿔보자”고 나서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오프라인에서는 홀로 투표소로 향했지만, 트위터를 통해 경험을 공유하면서 적어도 마음 속으로는 다 같이 손잡고 투표하러 가는 즐겁고 희망찬 놀이를 한 것이다.

 변화는 투표율에서 그치지 않는다. 트위터에 깊이 들어와 있을수록 보수언론에 독점된 오프라인 매체에 만족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대안 매체를 찾아보고, 진보정당 지지율이 확연하게 높으며, 보수독점 정치에서 탈피하는 투표를 하는 경향이 너무나 확연하다. 투표를 결정하는 요인을 분석해보면 트위터에 깊이 개입될수록 보수정당에 투표하지 않는 경향이 일관되게 나타난다. 중도나 진보 정치집단이라고 해서 마냥 좋아할 일도 아니다. 그들은 보수정당에 투표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특정 야당을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도 아닌 것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소셜 미디어가 만들어준 엄청난 정치적 공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제도권 정치가 비대표성의 문제를 만들어왔다면 트위터를 비롯한 소셜 미디어는 ‘대표되지 않은 자의 무기’가 되고 있다. 이것은 보수 정치세력에 커다란 문제로 작용할 것이다. 진보개혁 세력과 유권자들은 트위터 이후의 민주주의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