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심의위원회 내 방송심의소위원회는 정의기억연대 마포쉼터 소장이 자살한 공간을 열쇠구멍을 통해 촬영해 내보낸 YTN <뉴스특보-코로나19> TV조선 <TV조선 뉴스현장>, MBN <MBN 종합뉴스> 등이 방송심의규정 ‘자살묘사’ 조항을 위반해서 법정 제재에 해당하는 ‘주의’를 의결하고 전체 회의에 넘겼다고 밝혔다. 방송사들은 주말이어서 내부에서 거를 수 있는 인력이 부족했고 한 방송사는 그래도 ‘흐림 처리’를 했다고 해명했다. 또 한 방송사는 심의규정을 인지하지 못한 취재기자들이 열정적으로 취재한 결과라는 점을 참작해줄 것을 피력했고, 이에 심의위원은 취재의 문제가 아니라 보도가 문제라고 지적했다고 한다.
물론 방송통신심의는 보도된 내용에 적용되는 것이니, 보도하지 않았으면 심의 대상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방송사의 주장대로 주말 인력이 여유가 있어 심의규정을 적용해 편집했으면 문제가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더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을 보도할 것인지와 관련한 기본 원칙들이 논의, 학습, 전파되지 않는 취재 현장에 있다. 방송사의 답변은 보도 관련 원칙들은 원칙으로 존재할 뿐 취재 현장과 무관하다는 현실을 드러낸다. 이런 현실이 바뀌지 않는 한 같은 오류는 반복될 것이다. 그나마 심의 대상이 되는 방송에서는 반복된 심의 과정에서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학습할 기회라도 있을지 모르지만, 심의 대상도 되지 않는 많은 언론들이 언론계에서 자율적으로 정한 다양한 보도 원칙들을 준수할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이런 규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보도의 목표, 가치를 고민하는 언론의 자세일 수 있다. 피살당한 소녀의 사진을 구하려고 담을 넘고, 피해자의 서랍을 뒤져서 이를 보도했다는 선배 기자들의 영웅담이 후배 기자들에게 회자되던 시절도 있었다. 이는 방법도 불법이지만 무엇보다도 피해자의 인권 침해라 보도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저널리즘 관점에서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그 사진의 보도가 혹자의 호기심을 충족하는 것 이상으로 진실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되거나, 새로운 의혹을 제기하거나, 앞으로 유사한 사건의 발생을 막는 데 도움이 되는지 여부와 무관한 보도였다는 점이다. 사실은 진실에 이르는 관문일 뿐이지 진실이 아니고, 언론이 추구해야 할 가치는 사실 보도가 아니라 진실 보도라는 점을 언론계는 간과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다양한 정치적 사건은 물론 코로나19라는 재난 상황에서조차 단편적인 사실, 의미 없는 사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라도 유명인사의 발언이면 기사가 되는 게 지금 언론의 현실이다. 그 유명인사가 발언한 것은 ‘사실’이니까. 페북과 댓글을 쫓아다니는 기자들. 페북의 주장이 진실인지 취재해서 검증하려는 노력이 사라진 언론의 현실. 이런 언론 보도들이 단기적으로 수용자의 관심을 끌 수는 있다. 그리고 그게 이익으로 환원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반응은 자신들의 견해에 따라 공감하거나 분노하는 것일 뿐 언론 존재 이유에 공감하는 것이 아니다. 언론을 통해 진실에 이르렀다는 경험을 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언론에 클릭으로, 댓글로 반응하는 것이 언론의 장기적 이익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장기적으로 수용자들은 외려 이런 언론이 필요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점차 언론 소비가 줄고, 언론 신뢰도가 저하되는 이유다.
포털과 클릭 수에 의존하는 지금의 언론 수입 구조가 이런 현상을 존속·강화시키는 이유인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단기 이윤을 좇아 언론계 전체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우를 관망만 할 수 있을까? 상대적으로 취재기자 수나 취재력에서 우세한 언론들이 더 가치 있는 기사를 생산하고 이를 통해 언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는 것 말고 작금 언론이 당면한 위기를 극복할 방법은 보이지 않는다.
<김서중 성공회대 미디어컨텐츠 융합자율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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