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성 관객들, 평론가 및 연구자들이 다양한 통로를 통해 한국 영화에 재현되는 여성의 비중이 낮다는 문제 제기를 지속적으로 해왔다. 영화진흥위원회가 2017년 상반기까지 100만 관객 이상을 동원한 작품에서 여성이 주인공인 작품은 1편에 불과하다는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내 언론들은 배우 나문희, 김혜수, 문근영이 주연하는 영화가 앞으로 각각 개봉된다면서 “가을 극장가의 여풍”이라는 헤드라인을 뽑는다.
방송 영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있다. 현재 제작되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여성 출연자의 비중이 낮다는 지적이 계속 있었다. 실제로 방영되는 프로그램 중 여성 중심의 예능 프로그램 비중, 혹은 예능 프로그램에 여성 출연자가 등장하는 비중은 남성에 비해 훨씬 낮은 편이다. 하지만 이런 프로그램들에 대해 소개하는 경우 “센 언니 전성시대” 등의 표현을 쓰곤 한다.
한편으로 여성 중심의 예능 프로그램들이 인기가 없고 쉽게 망한다는 편견이 존재한다. 여성 중심의 예능 프로그램이 시청률이 낮아 종영될 때는 ‘여성’ 중심이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쉽게 내린다. 혹은 여성 시청자가 여성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최근과 같은 다채널 시대에 수많은 예능 프로그램이 시작했다 인기를 얻지 못하고 사라지는 형편이다. 여성이 등장하는 프로그램이 적다 보니 실패하는 비중이 더 높게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그럼에도 여성은 나타나기만 하면 그 판을 흔드는 바람이 된다고 하고 사라질 때는 처음부터 변화를 야기할 수 없었던, 영향력도 소구력도 없었던 무리한 시도였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이상한 일이다. 분명히 국내외 다수의 조사에서 여성의 재현 비율은 정말로 과소하게 나타나고 있다. 2016년을 기준으로 방송통신위원회가 발표한 미디어 다양성 조사 결과, 드라마 프로그램에 제한했을 때 남성 대 여성의 등장 비율은 62.3% 대 37.7%로 나타났다. 남성 주인공과 여성 주인공이 거의 반드시 연결되는 드라마의 경우조차도 이러하다. 하지만 여성이 미디어에 등장하는 것은 늘 과장되어 표현된다. 그러니까 문제는, 재현되는 비율 자체만이 아니다. 남성의 일은 보편적 시민의 일이라 당연하게 여겨지고 여성이 등장하는 순간 이를 특별하게 다루려 하는 것이 더욱 큰 문제이다. 여성이 보이지 않을 때는 당연하게 여기다가 여성이 보이게 되면 그 자체를 특별한 어떤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방송 프로그램과 재현물에 여성이 등장하는 비중이 낮다”는, 현상에 대한 이 건조한 기술이 보여주는 것은 특정한 남성을 보편자로 상상하기 때문에 생기는 미디어 다양성의 문제이다.
우리의 경험 세계는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미디어는 다른 경험 세계를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미디어 다양성에 대한 문제 제기는 현실의 성비와 미디어 재현의 성비, 현실의 장애인 비율과 미디어 재현에서의 장애인 비율 등을 맞추라는 단순한 요구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에 누가 살고 있는가, 누가 발언하고 있고, 정치에 참여하며 사회를 구성하는 시민권을 갖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요구하는 것이다. 영국 BBC 방송국이 어린이 프로그램 진행자 중 장애인, 유색인종, 여성을 적극적으로 등장시키는 이유는 이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구성하는 사람들이 누구이며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어 어린이들이 이를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백인이자 비장애인인 남성이 과대 재현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미디어에는 항상 청년 및 중년층의 남성이 더 많이 나타나고, 노인, 아동 청소년, 장애인, 여성, 이주민, 성소수자 등은 실제보다 적게 나타난다. 그러니 특정 연령, 계층의 남성에 비해 다른 존재들이 적게 재현된다는 비판을 하는 것은 특별한 어떤 것을 고려해 자리를 내달라는 요구가 아니다. 보편으로 여겨지는 것이 사실상 보편이 아니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그래서 특수한 이해관계를 대변하면서도 보편을 가장하는 것을 문제 삼아 이 장 자체를 다양성을 기준으로 재편해야 할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제기하려는 것이다.
미디어 재현물에서 여성의 비중이 낮다는 혹은 노인, 아동, 이주민, 장애인, 성소수자의 재현 방식이나 비중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을 때마다 그래서 기계적 평등을 추구하는 것이냐는 질문, 현실이 그러한데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무엇이 문제냐는 말을 누리꾼들이 댓글에 쓰곤 한다. 무엇이 문제냐면, 만약 정말로 현실이 그러하다면, 그 현실이 문제이다. 턱없이 모자라니 비중을 높여야 하는 것이 일차적 목표지만 기계적 평등을 추구하는 것으로 답을 찾을 수 없다는 것 역시 중요하다. 한 번 더 생각해보면, 미디어에 등장하는 남성들이, 과연 현실 세계 남성들의 표상이었던 적은 있었는가? 남성들 간의 수많은 차이도 미디어는 드러내지 않는다. 특정한 계층과 연령대의 남성들만이 과도하게 대표되는 미디어 세계는 문제가 있다. 이 세계에서 살고 있는 다양한 존재들은 보편을 벗어나는 기이한 존재로 조명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동등한 시민으로 나타나야 하기에 미디어 다양성의 추구가 필요한 것이다.
<김수아 |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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