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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미디어 세상]지나온 곳에 대한 위로, 새로 올 것에 대한 성찰

CBS 김현정 앵커는 물었다. “다시 돌아간대도 같은 선택을 하실 수 있을까요?” YTN에서 해고된 지 3000일 되는 노종면 기자가 답했다. “글쎄요. 굳이 과거로 돌아가지 않아도 앞으로도 그런 선택의 순간은 올 거라고 생각하고요. 비슷한 선택을 하지 않을까요. 딸이 지켜보는데?” 물러나지 않은 대통령은 모른다. 평범한 사람들이 얼마나 죄송하고 아파야 하루가 가고 일년이 지난다는 것을.

 

윤종신의 새 노래 ‘그래도 크리스마스’는 해직기자에 대한 위로다. 잃어버린 세밑을 감싸는 한 폭의 풍경화다.

 

“잘했어요/ 참아 내기 힘든/ 그 용서할 수 없는 걸/ 다 함께 외쳤던 그날들/ 정말 젠틀했던 강렬했던/ 뭘 바라는지 또 뭘 잃었는지/ 우린 모두 알고 있죠/ 하나하나 다시 해요.” 뮤직비디오에는 2016년의 상처와 분노와 바람이 스쳐간다. 손석희 앵커 브리핑이 흐르고 끝에서 시작을 알린다. 노래는 다시 뉴스룸을 휘감는다. 많은 미디어가 놓치고 있던 연말을 불러냈다. 그는 일년 전 뉴스룸 출연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그의 말이다. “제가 매년 ‘월간 윤종신’ 12월호를 통해 발표한 곡들은 대부분 위로를 주제로 해왔는데, 올해도 그렇게 됐네요(웃음). 올해 어수선한 일들이 참 많았잖아요. 하지만 우리가 크리스마스까지 잃어버릴 수는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는 위로라는 생경해진 단어를 다시 만났다.

 

2008년 10월 YTN에서 해직된 현덕수, 조승호, 노종면 기자(왼쪽부터)가 ‘해직 3000일’을 하루 앞둔 21일 서울 상암동 전국언론노조 YTN지부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윤종신은 회사 대표, 프로듀서, 작곡가, 가수다. 웃음을 만드는 예능인이다. 세월호 참사가 난 그날 “2014년 4월호는 없습니다”를 트위터에 올려 순간 멈춤을 한 것을 빼고는 7년간 발표되어온 ‘월간 윤종신’ 미디어 발행인이다. 그의 공간은 커뮤니티이고 학교다. 음악보다 예능 집중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고, 1인 방송 자키들의 플랫폼을 지향하는 아프리카 TV와의 협업 팟캐스트는 논란을 빚기도 하지만 금세 그는 ‘리슨’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신곡 음원을 내는 ‘좋은 음악을 잘하는 회사’로 거듭난다.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 특정한 성향과 취향의 시장을 노린다. 전천후 음악가이고 전방위 미디어다.

 

생각해 보자. 언론이 언론을 언론이라 정의해놓고 가두어버린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언론을 커다랗게 대문자로 써넣고 벽을 치고 칸을 막는 오래된 전통을 먹고 사는 저널리스트들에 대해. 연차와 직위가 올라갈수록 사내 정치에 의존해야 하는 회사형 기자, 조직형 인간의 형태를 띤 기자의 시대는 갔다. 윤종신은 저널리스트에게 벽과 칸과 층이 없는 미디어를 보라고 주문한다.

 

지난 21일 연합뉴스 기자들은 성명에서 “출근길이 두렵고 퇴근길이 부끄럽다”고 했다. 주어는 97명의 젊은 기자들이다. 타사 젊은 기자들도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들은 언론의 역할이 재조명되고 전통 언론의 활약이 강조되는 이 시간도 부담스럽다고 했다. 밖의 권력을 부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지만, 언론사 안의 오래된 권력이 새로운 체제의 마스크를 쓰고 주역으로 거듭나는 것도 불편하다고 했다. 그들에게는 안과 밖의 권력이 다르지 않게 보였던 것 아닐까.

 

거리에서 만난 한 공무원은 말했다. “관료는 말할 것도 없지만, 한국의 기업과 언론은 제품과 콘텐츠 경쟁력보다 권력을 탐하는 것 같아요.” 촛불 정국에 임하는 언론사 의사결정 구조는 새로운 권력을 탐하는 쪽에 맞춰져 있다. 한국의 많은 문제는 권력과의 거리를 두고 벌이는 독과점이라는 경쟁우위시스템에 있다. 결국 이것이 문제다.

 

그렇다고 멈추어 있을 수는 없다. 윤종신이 되어 보자. 새로운 징후들이 우리 옆에 와 있다. 느슨한 네트워크는 힘이 세다. 공개된 국회의원의 전화번호는 카톡 제보로 이어져 주식갤러리를 청문회 스타로 만들었다. 제보를 받은 손혜원 의원실 김성회 비서관은 이어 텔레그램 아이디까지 공개하며 채널을 확장시켰다.

 

시청자가 원하는 것은 완성품이 아니다. <냉장고를 부탁해> <노래의 탄생> <정치부회의>가 파는 것은 과정이다. 사장님을 선배라고 부르는 문화까지.

 

평균점이 아니라 발화점이다. 스브스뉴스 정혜윤씨는 미담 기사를 위해 계명대 대나무숲에서 익명의 공대생을 찾는다. 머그뉴스 등 SBS 디지털팀은 새 족적을 남기고 있다.

 

특수한 경험의 축적이 새로운 분류 기준이다. 경향신문 구정은 기자 블로그는 세계시민이 가는 길을 안내해 주는 새로운 섹션이다. 기사를 마감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와 대화한다. JTBC 뉴스룸이 끝난 후에도 페이스북 라이브는 돌아간다. 민얼굴을 드러내는 순간 팬이 움직인다.

특별한 커뮤니티가 자산이다. 400자 이상의 서평을 내야 모임에 참여할 수 있는 트레바리라는 스타트업은 함께 책을 읽고 대화하고 친해지는 것이 서비스다. ‘자기계발적 취향’을 바탕으로 한 친분관계가 사업이다.

 

해외 주요 언론사들은 2017년 대규모 구조조정을 예고하고 있다. 빠른 시간에 독립된 한국어 언론 시장은 통·번역사들과 함께 점차 작아질 것이다. 노종면과 젊은 기자들의 미래는 전혀 새로운 국면의 투쟁일지도 모른다.

 

유민영 | 에이케이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