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들이 그 존재 이유, 즉 경쟁력을 잃으면 사라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순리다. 언론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오래된 신문산업 위기론에 이어 이제는 방송도 위기에 봉착했다. 새로운 플랫폼으로 수용자들이 이동하기 때문이다. 2030세대들의 신문·방송 이용은 격감했다. 심지어 포털도 위기라고 한다. 요즘의 10대들은 포털도 아니고 유튜브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을 고려할 때 전통적인 매체들의 생존을 논하는 게 매우 구태의연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존 언론이 수행하던 저널리즘 기능을 적절히 대체하는 새로운 소통방식이 등장하지 않는 한 민주주의 사회에서 기존 언론의 생존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문제는 이런 위기 상황에서조차도 기존 언론이 그 존재 필요성을 보여주기보다는 역으로 그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포털의 댓글 편파성과 조작 가능성 주장이 불거지고 네이버의 책임 문제가 제기되면서, 네이버가 내놓은 대책 속에 아웃링크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이용자가 포털에서 기사를 선택하면 포털 내에서 기사 내용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기사를 생산한 언론사 홈페이지로 이동하도록 한다는 의미다. 구글을 이용해 기사를 검색해본 사람들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기사를 생산한 언론이 그 내용과 댓글에 직접 책임을 지게 하겠다는 뜻이다. 정상적인 언론사라면 환영해야 마땅하다. 언론이 책임을 지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호기이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의 수용자들은 포털에서 기사를 이용하면서 그 기사를 생산한 언론사나 기자에 그리 주목하지 않는다. 제목을 보고 들어가서 기사에 실망하면 그냥 나와 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좋은 기사 역시 마찬가지다. 포털에서 언론사나 기자는 기사를 선택하는 요인이 아니다. 언론이나 기자의 경쟁력이 기사의 선택을 좌우하지 않는다. 포털 미디어 면이나 또는 기사 검색 시 보이는 기사 제목에 얼마나 수용자를 유혹하는 표현이 들어있는지가 기사 선택을 좌우할 뿐이다. 지금의 기사 수용 행태는 기사의 질과 거의 무관하다. 따라서 좀 단순화해서 말하면 언론사가 경쟁력을 가진 기사를 생산해야 할 필요성도 없고, 기사가 발생시키는 문제에 책임질 필요도 없다. 언론사는 언론이 아니라 포털 이용자에게 읽을거리를 제공하는 콘텐츠 사업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아웃링크는 언론의 존재를 다시 부각시킬 수 있는 기회다. 그런데 네이버의 발표에 따르면 아웃링크를 찬성하는 언론도 있지만 꺼리는 언론도 있다고 한다. 아웃링크를 찬성하는 언론도 포털의 기사 검색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익의 일부를 분배해야 한다는 전제를 제시했다 한다. 애초 포털에 싼값으로 기사를 제공하면서 포털을 키웠고 결국 포털에 종속돼버린 언론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풍경이다. 포털에서 클릭이라도 되어야 수입이 생기는 언론사들, 이를 위해 기사 제목을 과장하거나 동일한 기사를 거의 제목만 바꿔 자극적으로 제공하는 뉴스 어뷰징에 의존하는 언론사들에 아웃링크는 저널리즘을 회복할 기회가 아니라 생존의 위협으로 다가왔을 수도 있다.
그래서 아웃링크 문제가 어떻게 귀결될지 예측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아웃링크 도입을 기회라기보다 위협으로 느끼는 언론의 현실을 볼 때, 언론 스스로도 자신들이 차별적 경쟁력을 가지고 있지 못함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애초 홈페이지로 직접 수용자를 유입시킬 수 있는 걸 기대하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관문인 포털을 통해 홈페이지로 들어온 수용자를 머물게 할 자신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 언론이 살아야 할 이유는 없다.
그래서 아웃링크 결론과 무관하게 언론은 스스로의 경쟁력을 되돌아봐야 한다. 사실 개별 언론사의 현실과 무관하게 언론 자체의 존재 이유는 분명하다. 사회는 복잡하고, 거대한 기득권 세력은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는 방향으로 세상을 경영한다. 민주주의가 유지되기 위해 그 현실을 비판하고 감시하는 것이 필요하고, 그것이 언론의 몫이다. 새롭게 등장하는 많은 대안적 소통방식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조직된 노동자들이 협력하여 취재하고 집단적 결정 과정을 통해 기사를 생산하는 언론의 존재는 여전히 중요하다. 방대한 자료에 접근해서 축적된 경험으로 해석해낸 기사의 가치도 매우 중요하다. 수용자가 언론에 거는 기대다. 그런 관점에서 언론은 자기 성찰을 해봐야 한다. 댓글만으로 기사가 되는 것처럼, 지금 언론이 생산하는 기사가 일반 수용자도 인터넷에서 검색할 수 있는 정보의 재정리에 불과하지는 않은지. 혹시 정부나 기업을 비롯한 거대 집단들이 제공하는 보도 자료를 그대로 전달하는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누가 구태여 언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겠는가. 기업이 위기라면 그 기업만이 생산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상품 개발에 매진할 것이다. 언론들만이 생산할 수 있는 차별화된 기사는 무엇일까?
<김서중 |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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