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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미디어 세상]청소노동자와 공항의 ‘별’

언론인 헨리 메이휴. 이름까지 굳이 기억할 필요는 없겠지만, 모든 사람이 ‘언론 활동’을 할 수 있는 민중언론 시대에 한번쯤 짚어볼 인물이다. 저널리즘이 형성해가던 19세기 영국에서 활동했다. 대영제국의 수도 런던의 거리를 취재해 82회에 걸쳐 연재한 기사에 청소노동자를 비롯한 소외된 이들의 표정과 열망을 섬세하고 생생하게 담았다. 그들을 시들방귀로 여겨온 독자들은 기사를 읽으며 조용히 성찰했다.


그로부터 170년 남짓 흐른 서울에선 청소노동자들이 기자를 찾아 나섰다. 런던의 메이휴가 청소노동자를 찾은 것과 대조적이다. 


그런데 옮기기조차 민망한 성희롱과 열악한 노동현실, 낙하산 인사의 문제점을 곰비임비 증언했고 사실로 확인됐는데도 단 한 줄, 단 한 장면을 내지 않는 신문과 방송이 있다. 틈 날 때마다 대한민국을 대표한다고 자처하는 언론사들이다.


더러는 마지못해 한 줄, 한 장면만 보도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이 아닌 평양과 관련된 자극적 보도는 거품 물 듯 쏟아내면서 그렇다. 그들은 언론의 기초가 ‘권력 감시’에 있다는 사실을, ‘목소리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일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인의 의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서울 강서구 한국공항공사 앞에서 지난 12일 열린 ‘비정규직 정부지침 준수’ 등을 촉구하는 김포공항 비정규직 파업투쟁 결의대회에서 손경희 공공비정규직노조 강서지부 지회장 등이 삭발하고 있다. 이날 김포공항 미화원, 카트관리원 조합원 120명이 파업에 참여했다. / 강윤중 기자


나는 북의 ‘김정은 체제’를 두남둘 생각이 전혀 없다. 다만 남쪽 언론인의 일차적 임무는 남쪽 권력 감시다. 민생은 무장 어려운데도 집권당 대표나 대기업 회장들과 호화 오찬을 즐기는 남쪽 권력 감시는 뒷전이면서도 북쪽 권력을 줄기차게 비판하는 그들의 행태는 정작 군부독재 아래서 내내 용춤만 추던 과거의 연장선에 있다.


권력 감시라는 언론의 본령에 충실하려는 후배들의 목을 자르거나 물 먹이면서도 사뭇 당당한 저 ‘언론귀족’들에게 목소리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라고 촉구한다면 물정 모르는 어리보기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기자 일로 가족의 생계를 꾸려간다면, 적어도 ‘직업적 양심’은 지니고 있어야 마땅하다. 오해 잘하는 윤똑똑이들을 위해 굳이 밝히거니와, ‘권력 감시’나 ‘목소리 없는 사람의 목소리’, 기자의 ‘양심’과 같은 말들은 그들이 사대하는 미국에서 중시하는 저널리즘 가치다.


여론 독과점 매체들이 외면하거나 축소하면서 공항공사 경영진은 지금까지 모르쇠 하고 있다. 흔히 기업에서 이사로 승진할 때, ‘별’을 땄다고 한다. 한국공항공사의 사장은 실제 공군참모총장 출신이다. 공항의 청소노동자들을 죄다 용역업체로 돌리고 그 업체의 관리자를 공사 퇴직자로 임명하는 ‘경영체계’에서 청소노동자들은 스스로 밝혔듯이 “개·돼지보다 못한 생활”을 해왔다. 그래서 이 땅에선 청소노동자들이 ‘직장인의 별’이라는 이사가 되는 일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만일 어느 청소노동자가 이사가 되겠다고 꿈꾼다면, 한국 사회에선 미치광이 또는 극좌파에 세뇌된 자로 여길 터다. 청소노동자와 이사 사이에는 말 그대로 땅과 별만큼의 차이가 있는 곳이 대한민국이다.


한국을 “세계가 부러워하는 나라”라고 부르대는 인간들에게 잘나가는 미국 변호사가 독일에서 생활하며 얻은 깨달음을 들려주고 싶다. 


그는 독일의 떠오르는 글로벌 은행에서 일하는 이로부터 “이사회에 정원사가 노동자 이사로 선출”되었다는 말을 듣는다. 미국 변호사에겐 충격이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글로벌 은행 이사회에선 보통 영어를 사용하는데 신임 이사가 영어를 못해 결국 회의에선 모두 독일어를 사용하기로 했단다. 이사회에서 무엇이 논의되는지 노동자 이사가 알아야 해서다. 이 변호사는 미국으로 돌아와 자신의 충격적 체험을 담아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란 제목으로 책을 냈다.


그렇다. 청소노동자도 그 기업의 ‘별’이 얼마든지 될 수 있는 나라여야 민주국가의 이름에 값할 수 있다. 기실 조금만 살펴도 청소노동자가 얼마나 공항에서 중요한 일을 하는지 새삼 깨달을 수 있다. 만일 청소노동자들이 없다면, 공항은 순식간에 휴지와 오물로 뒤덮인다.


물론, 공항공사는 파업에 대비해 ‘알바’를 준비시켜 놓았을 게 틀림없다. 그 부당행위조차 이 땅에선 부당이 아니다. 미국 변호사를 ‘표절’해 한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라고 개탄해야 옳을까. 아니다. 대통령 박근혜로부터 ‘부정적 인식’ 따위의 ‘훈계’를 받을 생각이 전혀 없어서가 아니다. 다름 아닌 청소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고 삭발하며 싸우고 있어서다. 


‘대한망국’이나 ‘헬조선’에서 벗어나 민국과 천국을 이 땅에 이루려면 김포공항 청소노동자들처럼 싸움에 나서야 한다. 당장은 어렵더라도, 청소노동자들의 눈물에 눈길을 돌리며 인터넷에 글 한 줄 올리기도 싸움이다. 


쇠귀에 말귀인 ‘별’들과 애면글면 싸우는 여성노동자들에게 힘을 보태는 여론을 형성하는 일, 바로 그것이 우리 시대의 민중언론이다.



손석춘 |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