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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미디어 세상]기자님, ‘토요일 라이프스타일’을 찾으세요

“선배, 10월1일에 뭐하실 거예요?”

 

9월28일부터 ‘김영란법’이 시행됩니다. 설왕설래, 왈가왈부가 있지만 선배는 이제 ‘토요일’이라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월화수목금 일하고, 토요일 일로 골프를 치고, 일요일 다시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입니다.

 

언젠가 젊은 기자와 세게 술을 먹은 다음날 받은 문자에 기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앞으로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일러스트 _ 김상민 기자

 

같이 일하던 동기가 “형님”으로 전화를 시작해 “형님”으로 끝낼 때 질색하던 생각도 납니다. 어색한 폭탄주를 돌리던 제게 친구들은 “이제 너도 사람 됐구나!” 했을 때, 지구가 무너지는 줄 알았던 저도 그 세계의 일원이 된 지가 오래입니다. 선배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이제 저는 선배가 오래된 구습을 내 습관이라고 기억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회사를 위해 살지 않았으면 더 좋겠고, 아무도 읽지 않는 범용화된 기사를 쓰지 않았으면 더더욱 좋겠습니다. 언론사만큼 정년이 보장되는 곳도 없다고 자위하는 일은 듣기도 싫습니다.

 

“나는 나의 삶을 대표한다”는 호연지기를 가졌으면 합니다. 이러한 전환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선배는 획일성의 시대와 범용성의 기사에 잡힌 포로이기 때문입니다. 편집권이 독립되지 않은 한국에서 언론 혁신을 얘기 하려면 오너의 전권을 빼놓고는 이야기 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한국 기업과 정부의 커다란 병폐와 하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통의 권위를 가진 언론사 단위의 혁신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니 “다양성”에 바탕을 둔 “나”입니다. 단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다른 삶” “새로운 삶”을 찾는 것이 혁신의 시작이 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요?

 

그것은 “나는 미디어다” “나는 라이프스타일이다”라는 관점의 혁신입니다.

자, 그럼 토요일에 뭐 하실래요?

 

경복궁역 3번 출구를 나와 100m쯤 걸으면 서촌의 작은 골목이 나옵니다. 오른편에 스타벅스가 있고 왼편에는 작은 소품들을 파는 잡화점, 그 옆에는 토스트와 맥주를 파는 ‘코피티암’이라는 식당이 보일 겁니다. 조금 더 들어가 왼쪽으로 끼고 돌면 요즘 가장 ‘힙하다’는 ‘대림미술관’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근데 이미 선배는 두 개의 카메라를 목에 걸고 한쪽 어깨에 에코백을 두른 30대 전후의 싱글 여성들을 많이 만나셨을 겁니다. 기성 언론의 가장 강력한 상대인 ‘사진을 찍고 포스팅을 하는 여자사람’입니다. 그들은 ‘필리버스터’에 열광하는 사람들일 수 있고, 버니 샌더스 팬덤을 만든 사람들과 연대감을 가진 사람들일 수도 있습니다.

 

영화 <최악의 하루>의 거짓말하는 ‘은희’일 수도 있고, 드라마 <청춘시대>의 독립된 ‘윤진명’일 수도 있습니다. 취직에 성공해 첫 월급을 타면 동기들끼리 교토로 날아가는 새로운 세대도 알게 될 것입니다. 어쨌든 그들은 과거의 삶을 답습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광화문을 거쳐 교보문고 가는 길에 선배는 다양한 한복을 빌려 입은 젊은이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주저함이 없고 밝게 웃고 있습니다. 인스타그램이라는 미디어에 최적화된 인류들입니다.

 

일본 쓰타야 서점은 롯폰기, 다이칸야마, 후쿠오카 톈진이 각각 다르고 좋은 햇볕이 드는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다이칸야마점 2층에는 책으로 둘러싸인 카페와 바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멋지게 나이든 분들의 웃음과 패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쓰타야가 말하는 ‘프리미엄 에이지’란 시간과 경제적 여유를 갖춘 50~60대 소비자들입니다. 하지만 이 개념은 물리적 연령에서 벗어나 경험을 쌓으며 단련한 감각으로 제안하는 라이프스타일에 공감하는 이들로도 확장될 수 있습니다.

 

교보문고에 가면 꽃집도 있고 요리 코너와 만화 코너도 굉장히 크게 느껴질 겁니다. 또 구석에서 선글라스를 쓴 빨간 불독이 마이크를 앞에 두고 웅크리고 있는 오디오 코너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TV가 가구의 핵심 배치에서 밀려나기도 했고, 본방 사수라는 개념이 사라졌으며, 스마트폰이 음악을 다시 불러내는 이 시대에 책과 가장 잘 어울리는 미디어가 거기 있습니다. 이런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종이신문과 모바일을 연결하려는 시도는 훨씬 사람과 라이프스타일에 훨씬 접근해야 한다는 것. 5만년 된 카우리소나무로 만든 테이블을 채운 어르신들을 보는 것도 인상적일 것입니다.

 

자기계발을 다루는 테이블 뒤 H코너에는 <노인파산> <격차고정>의 책이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교보는 전국 지점이 지하에 있고 베스트셀러를 좇아가는 획일성을 닮아 있습니다. 이것이 ‘교보’와 ‘쓰타야’의 차이입니다.

 

교보 옆 디타워의 1~3층은 사람들의 시선과 동선이 에스컬레이터를 중심으로 흐르는 공간입니다. 중동, 이탈리아, 멕시코식 식당과 테라스가 한눈에 노출되고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스타일을 공유하고 비교하고 견제합니다. 우리 기업들 1층이 회장님의 출퇴근에 최적화되어 엘리베이터를 중심으로 설계된 것과는 다른 공간입니다.

 

‘네이버’의 디자인을 만들었고, 세계의 브랜드 케이스를 연구하는 종이잡지 ‘B’를 만드는 디자이너 조수용 대표의 생각이 반영된 곳이죠. 하드웨어 토목건축이거나 오너의 습관이 반영되지 않은.

 

마음이 동하시면 정용진 부회장이 만든 반포 ‘파미에스테이션’을 찍고 정태영 부회장의 이태원 ‘뮤직라이브러리’까지 가 보세요. 그리고 한남동을 가로질러 ‘헤드윅전’이 열리고 있는 ‘디뮤지엄’의 전시를 보고 나올 때 빙빙 도는 의자를 꼭 경험해보실 것도 권합니다. 헤드윅전은 창의가 발명이 아니라 새로운 발견이며 새로운 연결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거기에 재미까지.

 

선배, ‘뉴욕타임스 혁신 보고서’는 잊어버리세요. 그냥 자신의 삶을 찾으세요. 백만 덕후, 천만 개성의 세대를 연결하는 ‘매치메이커’가 되어주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선배의 토요일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유민영 | 에이케이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