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며칠 후면 탄핵 심판 결과가 나온다. 대다수 언론들은 탄핵 인용과 기각을 동렬에 놓고 논란을 소개하며 그 가능성을 전하고 있지만 이는 중립성을 가장한 진실 왜곡이다. 탄핵 소추는 국회가 ‘나 대통령 싫어요!’하고 무고한 대통령을 향해 정치적 쿠데타를 한 것이 아니다. 탄핵 소추 사유의 많은 부분은 이미 검찰 수사와 특검 수사를 통해 밝혀졌다. 시민들은 박근혜 정권 4년 동안 더욱 심각해진 헬조선이라는 현실을 야기한 근본 원인들의 정점에 국정농단을 한 대통령과 그 측근들이 있음을 알고 있다. 대통령은 선의와 무지를 앞세우지만 선의와 무지로 그런 국정농단이 일어나게 했다면 그 무능 자체만으로도 이미 대통령으로서 자격은 없는 것이다. 자유당 정권의 학정에도 불구하고 ‘무능한’ 이승만 대통령은 잘못이 없었다는 일각의 억지 논리를 수십 년 후 다시 접하는 현실이 답답할 뿐이다.
그래도 법조계 일반이나 대다수 시민들이 전원일치 탄핵 인용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유는 헌재 재판관들이 법조인으로서 최소한의 양식을 거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며, 이는 우리 사회가 가질 수 있는 당연한 기대다. 탄핵 인용과 기각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정의로운 판단을 하느냐 아니면 정파적 이해를 앞세워 소수가 반란을 일으키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그렇게도 ‘국격’을 강조했던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보수 대통령들의 구호를 다시 되새긴다. 헌재 재판관이라면, 자신의 이념을 떠나, 애국을 내세우며 광장에서 성조기에 이어 이스라엘이나 브라질 국기를 휘두르는 것이 국격이 아님은 분명하며 그에 부응하는 선택이 국격의 문제를 넘어 국가의 운명을 위태롭게 할 것이라는 점 정도는 이해하리라 본다.
그런데 요즘 언론을 접하면서 가장 불편한 것은 ‘통합’이라는 표현이다. 탄핵이 인용되든 기각되든 헌재 결정에 승복하고 통합과 안정을 이루자는 것이다. 일부 대선 주자들도 쓰고 대부분의 언론은 무분별하게 전하거나 아니면 아예 대놓고 자사의 이념이라도 되는 양 사설이나 칼럼으로 강조한다. 맥락이 배제된 사전의 의미로 보면 통합은 좋고 분열과 갈등은 나쁜 어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통합과 안정을 주장하는 사람이 마치 사회를 걱정하는 격식 있는 존재인 양 비쳐지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인류 사회는 완벽하지 않다. 완벽하지 않은 사회에서 억울하게 피해를 입은 힘없는 사람들이 부조리한 현실을 개혁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정당하다. 갈등은 그렇게 주장하는 행위의 불가피한 부산물이다. 물론 부당한 이득을 얻고 있는 기득권자들에게는 매우 불편한 현실일 수 있다. 광장의 개혁 요구는 시대적 과제다.
원론적으로 통합과 안정이 사회를 위해 더 나은 것은 맞다. 문제는 통합과 안정이 유신 독재 정권 시절 총화를 강조하던 것과 같은 구호로 달성할 수 있는 목표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수의 침묵을 강요하며 외견상 통합과 안정을 이루었던 수십 년 전 독재 시절로 다시 돌아가자는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갈등과 분열의 본질이 무엇이며 그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 사회가 선택해야 할 수단과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해 진정성 있고 끊임없는 토론이 필요하다.
그 토론이 비록 지난하고 당장에는 매우 혼란스러워 보일지라도 통합과 안정의 강요로 달성한 그래서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위험을 내재한 ‘가(假)평형’ 상태보다는 훨씬 미래의 안정을 보장한다. 민주주의는 주권자인 시민이 각자의 경험하고 있는 현실을 자유롭게 비판하고 변화를 요구할 수 있는 정치 제도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갈등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갈등을 표출함으로써 그 근본 원인을 인식하고 제거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조금이나마 불평등 구조를 해소하고 통합과 안정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제도다.
그리고 그것을 좀 더 공개적으로, 대화와 토론으로 가능하게 하는 사회 기제가 언론이다. 소위 공론장이다. 그렇다면 우리 언론은 대통령의 국정농단과 탄핵이라는 특수 상황에서 공론장으로서 제 기능을 잘 수행하고 있을까? 대통령과 그 측근들이 국정농단을 행했지만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국정농단에 기여했던 부역자들 그리고 그들이 움직였던 시스템의 문제와 더불어 감시 견제 비판이라는 기본 소임조차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던 언론의 문제다. 그렇다면 지금은 그 시스템을 그리고 언론을 개혁하는 것이 시대적 과제이지 않을까? 그런데 그런 논의가 광장에는 있지만 언론에는 없다.
탄핵 인용 이후 대다수 언론은 통합과 안정 논리로 광장의 사회 개혁 요구를 억누르려 할 가능성이 높다. 대다수의 언론들은 이미 기득권 집단이기 때문이다. 최근 소위 알박기했다는 공영방송의 행태를 보면 우리 사회의 기울어진 운동장이 해소될 기미는 없다. 그래도 그 해결의 단초는 역으로 언론에 있다. 조금이나마 정도를 걷는 언론들의 분투를 기대해본다. 더불어 시민들에게 좋은 언론을 더 소비하는 것이 개혁이라는 주장도 해본다.
김서중 |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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