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16일 초등학교에 등교하는 여학생을 성폭행하겠다는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글에 대해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몇몇 언론사는 이를 보도하면서 ‘몹쓸 짓 예고’라는 표현을 썼다. 이 표현에 대해 시청자와 독자들의 문제제기가 이어졌다. 유별나게도 한국의 미디어는 성추행, 성폭력 등 성범죄에 대해 ‘몹쓸 짓’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딸에게 몹쓸 짓” “술집 화장실에서 몹쓸 짓을 하려다 경찰에 붙잡힌” 등의 표현이 대표적이다. 기사 제목에서는 성추행, 성폭행 등 명백한 표현을 사용하고 나서 본문에는 이를 ‘몹쓸 짓’이라고 쓰는 일도 있다. 2016년 이후에야 범죄로 처벌이 가능해진 데이트 폭력과 관련한 보도에서도 ‘몹쓸 짓’이란 표현이 등장해 독자들의 비판을 받았다. “담뱃불로 여자 친구 얼굴에 몹쓸 짓”이라는 5월12일자 뉴스 제목도 이에 해당한다. 이 표현은 우회적인 표현이어서가 아니라, 성범죄나 데이트 폭력과 같은 문제를 사회적 범죄가 아닌 개인 윤리 차원으로 환원시켜 해당 범죄를 사소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특히 여성 대상 범죄에 이러한 표현을 동원하는 것의 문제점이 지속적으로 지적되었다. 2016년 10월 국가인권위원회가 주최한 ‘미디어 속 여성 차별과 폭력’ 토론회에서도 이 문제가 집중 거론된 바 있다. 여성 대상 범죄 보도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가 계속되어 온 것은, 피해자와 가해자에 대한 편견을 재생산하여 현존하는 억압적인 가부장제 질서를 유지하고 구성하는 데 언론 보도가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언론의 성폭력 보도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는 수십 년 전부터 나왔고, 한국기자협회가 이 문제를 인식해 대응하기도 했다. 2012년 인권위와 함께 ‘성폭력 범죄 보도 세부 권고 기준’과 ‘성폭력 사건 보도 가이드라인’을 제정한 것이다. 이는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통념에서 벗어나 사건을 바라봐야 하고, 선정적으로 보도하지 않으며, 피해자 보호를 우선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처럼 오랜 문제제기와 내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언론 보도의 변화가 더딘 이유는 관행에 따른 보도 방식이 주로 꼽힌다. 시선을 끌기 위해 제목에 자극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사건마다 사용되는 어휘나 표현 등이 관행으로 굳어져 성찰 없이 반복해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육하원칙이라는 기사작성 방식도 성범죄 관련 보도에서 가해자 입장을 주로 반영하게 만든다. 가해자가 ‘언제 어디서 왜 어떻게’ 범죄를 저질렀는가를 주목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관행은 더 큰 문제를 만들어낸다. 성폭력 가해자는 보통 ‘합의이기 때문에 문제없다’ 혹은 ‘술 때문이다’라고 주장하기 마련이다. 이런 가해자의 목소리를 그대로 실어주는 순간, 해당 뉴스의 댓글 창은 ‘꽃뱀’이라는 단어로 가득 차 버린다. 여대생을 성폭행한 경찰관 사건 관련 보도(5월15일)에서 경찰관의 주장인 ‘합의 아래’를 제목에 인용해 주는 보도 방식도 한 예이다. 객관적으로 보도하겠다면서 가해자의 말을 그대로 전달하는, 육하원칙에 충실한 보도일지는 몰라도 결과적으로 제3자들이 피해자에게 정신적 폭력을 가하는 것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게 된다. 성폭력 범죄 보도 가이드라인이 수사기관으로부터 얻은 정보나 가해자와 피해자의 목소리를 전달할 때 신중한 보도를 당부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미디어는 현실을 구성하는 힘을 갖는다. 그러므로 미디어는 편견의 재생산에 민감해야 한다. 사회적 편견이 문제인 것은 그만큼 공고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경찰관의 성폭행 사건에서 대부분의 기사는 제목에서 ‘술 취한’이라는 말로 여대생을 수식했다. 피해자 여성이 술을 마신 ‘사실’을 알려주는 것은 기자협회가 정한 “성적 자기결정권의 보호라는 성폭력 범죄의 보호법익에 충실한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보도”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에 비추어 어떤 문제가 있을까? 술에 취했거나, 안 취했거나, 어디에 있었거나, 옷차림이 어땠거나 상관없이 그 개인이 자신의 몸에 대해 온전한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술 취한’ 사실을 알려주는 것은, 여성의 성폭력 피해가 잘못된 시공간에 있었거나 잘못된 행위를 했기 때문이라는 사회의 편견에 은근슬쩍 공모하는 것이다.
관행의 반복을 통해 편견을 재생산하는 상황에서 구조 개선은 요원해 질 수밖에 없다. “언론은 성범죄의 근본 원인이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인 사회구조에 있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구조를 생각하라는 제안이 한국기자협회의 성폭력 범죄 보도 세부 기준에 있다. 지금까지의 관행적 보도 방식은 이와 같은 권력 구조의 문제를 바라보게 하는데 ‘해가 된다’.
군대라는 위계적 구조 내에서 여성이 성적 자기결정권을 주장하지 못하고 조직 내에서 합리적 해결을 기대할 수 없어 자살하는 사건이 반복되는 것은 이 문제가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미디어가 성범죄 보도에 대해서 공적 책임을 진다는 것은 “성폭력 범죄를 유발하거나 피해를 확산하는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주목하도록 하여 변화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김수아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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