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술을 마시던 친구는 업계의 존경을 받던 정보기술(IT) 전문가인 아무개 교수가 대선 캠프로 가서 정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실이 확인되지 않는 뉴스를 실어나르고 댓글을 달고 있다면서 통탄을 했다.
후보-캠프-전문가-지지자-언론의 세계는 분리되지 않고 무턱대고 하나로 연결되어 유권자의 감정을 자극한다. 서로 보는 곳이 다르고 각각의 역할이 새로워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위험하다.
오늘 0시부터 19대 대통령을 뽑기 위한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다. 5월10일이 되면 새로운 대통령은 매우 취약한 시간을 맞이하게 된다. 행정부를 비롯해 안정적인 업무관계도 구축하지 못하고 새로운 일을 자세하게 파악하지도 못한 채, 최소한의 비서실 인원만으로 인수위 없이 대통령직을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북핵은 요동치고 경제는 출렁이는 상황에서 국회와 총리직 인선부터 사사건건 충돌할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탄핵 후 지금까지 후보와 캠프, 전문가와 지지자들, 미디어는 후보들 삶의 일관성에 대한 검증의 시간을 보냈다.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나라의 방향성에 대한 투쟁의 시간을 놓칠 수는 없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퇴임 직전 인터뷰는 여러 매체에서 다양하게 진행되었다. 공식 기자회견도 있었다. 그중 가장 진솔한 대화를 펼친 곳은 오래된 언론이 아니라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팟캐스트였다. 팟세이브아메리카(Pod Save America) 5번째 리스트에 오바마의 마지막 인터뷰(Obama’s Last Interview)라는 제목으로 업데이트되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매우 가벼운 농담으로 인터뷰를 시작한다. 이 방송을 듣는 사람이 있기는 한 거냐고. 그러자 진행자 또한 가볍게 말한다. 놀랍게도 듣는 사람이 있다고. 그렇게 팟캐스트라는 매체에 맞게 인터뷰는 자연스럽게 시작되었다.
그러나 인터뷰 첫 질문부터 예사롭지 않다. 진행자는 퇴임을 앞둔 오바마의 마음 깊은 곳을 들여다보고 싶어한다. “2009년 1월 이 방(백악관 루스벨트룸)에 앉아있었던 오바마를 생각해 보세요. 그에게 무슨 말을 해주고 싶으세요?” 답변에는 멈춤이 없으나 깊은 성찰이 담겨있다. “나는 그에게 미국 국민들과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생각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레이건 전 대통령 이래 가장 훌륭한 커뮤니케이터로 불리는 그의 대답은 소통이 얼마나 위대한 주제이며 엄청난 책무인가를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재임 중 끊임없이 새로운 매체와 대화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진화했다. 그러면서도 인종증오범죄로 숨진 흑인목사의 추도식에서는 잠시 연설을 멈추고 찬송가 ‘놀라운 은총(Amazing Grace)’을 불러 감동을 자아내는 대통령이었다.
41분의 인터뷰가 진행되었고 마지막 질문이 등장한다. 오바마의 가치와 정신을 정면으로 묻는다. “진보란 무엇인가?” 이 커다란 질문을 그는 아주 간명하게 몇 가지 단어로 규정해 말한다. “포용, 기회, 공동체, 민주주의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자신이 이룬 가장 큰 업적이라고 평가되는 기후변화나 건강보험개혁법 같은 것이 일으킨 변화는 사실 작은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모든 아이들이 덜 차별받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강조한다. “그 방향으로 가는 것. 방향성이 중요하다,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믿음이 중요한 것이다.”
팟세이브아메리카는 오바마와 함께 오래 일했던 30대 참모 세 명이 1월에 만들었다. 회사 이름은 트럼프가 공격할 때 사용한 사기꾼이나 삐뚤어진 언론을 뜻하는 크룩드미디어(Crooked Media)로 정했지만 국정운영의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트럼프의 문제를 지적하고 공격한다. 그러면서 진보의 의제와 나라의 방향성을 설정해 간다. 전문성과 경험으로 무장한 ‘오바마 키즈’들의 반트럼프 투쟁과 품위있고 재미난 팟캐스트라는 미디어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한다.
캠프·후보들은 선거기간 동안 이 말을 명심했으면 좋겠다. 트럼프가 승리한 것은 “유권자 감정을 자극한 것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유권자 마음을 움직인 결과”라는 게 정확한 분석이라는 것이다. 앞서의 팟캐스트를 진행하는 27살에 취임연설문을 썼던 전 백악관 연설문 담당 수석 존 패브로가 인용한 말이다. 지지자들에게는 다음 말을 전하고 싶다. “언론은 역사의 첫번째 거친 초안이다.” 언론을 제 편으로 만들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언론에는 2008년 한 전문가가 미국 대선에서 사용한 설문조사 문항을 보여주고 싶다. “당신의 세대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것은 무엇인가? 부모 세대의 가치에서 존경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세대에서는 누락된) 가져오고 싶은 가치가 있는가? 부모 세대보다 지금 당신의 세대가 안전한가? 부모 세대와 ‘어떤 다른’ 삶을 살고 싶은가? 주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자질 중에서 가지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대선 과정에서 자꾸 언론이 사라지고 기자와 피디들은 대선 선수들처럼 보인다. 이제 보고 싶은 것은 하나다. 이 나라가 5월10일부터 가야 할 방향 말이다.
유민영 | 에이케이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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