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가짜뉴스를 처벌하는 법안을 마련했다고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가짜뉴스를 지우지 않고 교류매체 서비스에 유통하는 인터넷 사업자를 처벌한다는 법안이다. 독일정부는 가짜뉴스를 비롯해서 ‘범죄적 내용’을 발견하고도 24시간 내에 삭제하지 않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최고 500만유로까지 벌금을 부과하는 법안을 내놓았다.
나로서는 믿기 어려운 뉴스였다. 혹시 가짜뉴스가 아닌지 의심했다. 문명한 나라의 모범적 정부라 보았던 메르켈 정부가 이렇게 반자유주의적인 법안을 내놓았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거짓이 싫으면 진실을 북돋고, 가짜가 미우면 진짜를 내세우면 된다. 이게 자유주의 국가의 정부가 할 일이 아니던가.
나는 특히 선진국이 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베끼고 따라하기 좋아하는 우리나라 정책결정자들이 걱정스러워졌다. 이들은 상반된 법률을 갖고 있는 두 나라로부터 나쁜 쪽 법률만 베끼는 교묘한 능력을 가졌기에 더욱 그랬다. 메르켈 정부의 가짜뉴스 규제법안의 배경과 맥락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확인해 보니, 일단 법안이 겨냥한 대상은 ‘가짜뉴스’라기보다 ‘증오발언’이다. 독일에서는 우리나라나 미국과 달리 특정 집단에 대한 증오발언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이번 법안의 요점은 이제 증오발언을 삭제하지 않고 유통하는 교류매체 서비스 사업자들도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법안을 주도한 중도좌파 사민당 소속인 하이코 마스 법무장관은 이 요점을 분명히 했다. 독일 길거리에서 증오발언을 함부로 내뱉을 수 없듯이, 독일 관할에 속한 교류연결망에서도 그러면 안된다.
그렇다면 증오발언을 규제하면 되지, 왜 가짜뉴스를 문제 삼는가? 독일법의 특성 때문이다. 독일에서 ‘사실 확인이 가능한 거짓 주장’은 쉽게 처벌 대상이 된다. 명예훼손법을 예로 들어 보자. 독일 법원은 일단 의견과 사실 주장을 구분하고, 가치판단이 개입한 의견의 경우에는 발언의 자유를 보장하지만, 허위적 사실 주장이 명예훼손이라면 처벌한다. 특히 사실주장 명예훼손 발언에 대해서는, 피해자가 아닌 발언자가 사실을 입증할 책임을 진다. 뉴스란 곧 사실 주장을 담은 내용이다. 따라서 가짜뉴스가 명예훼손적이거나, 선동적이거나, 특정 집단에 대한 증오를 유발한다면 바로 범죄로 기소할 수 있게 된다.
덧붙여 독일 내의 정치적 맥락을 살펴야 한다. 올해 9월 총선을 앞둔 메르켈 정부의 최대 골칫거리는 인종주의적 극우정당의 발호다. 극우세력은 ‘난민들이 독일 처녀를 강간했다’는 식의 가짜뉴스를 퍼뜨리면서 메르켈 정부의 이민정책을 공격하고 있다.
나치라 불러도 좋을 만한 ‘국가민주당’과 반이민 정책에 열을 올리는 ‘독일대안당’은 전통적인 언론매체가 아닌 인터넷 교류매체에서 증오발언을 퍼뜨리며 세력을 규합하고 있다. 집권 기민당과 사민당은 이들이 선거운동을 빌미로 해외 사이트를 이용해 범죄적 내용을 전파하는 행위에 대응할 것을 고민해 왔다.
사회경제적 조건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다른 유럽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독일 인터넷에서 돈 버는 사업자는 주로 미국기업이다. 뉴스를 중계하고 공유하는 교류연결망 서비스는 더욱 그렇다. 로이터 언론연구소에 따르면, 독일의 35세 이하 70%가 페이스북과 구글 등에서 뉴스를 본다고 한다. 독일 법원이 ‘범죄적 내용’을 삭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500만유로의 벌금을 물리더라도 고통받을 독일 사업자는 거의 없다. 반면 페이스북은 메르켈 정부의 법안에 대해 ‘유해정보에 대한 판단을 법원이 아닌 기업에 맡기는 처사’라며 비판에 나섰다.
그러므로 흥분하지 말고 살펴보자. 독일과 우리는 법현실도, 정치적 맥락도, 사회경제적 조건도 다르다. 독일이 가짜뉴스를 처벌하는 법을 만들고 있다고 덩달아 뛸 일이 아니다. 독일 내부에서도 이 법안이 언론과 발언의 자유를 위협한다는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내가 보기에 이번 사태를 두고 생각할 만한 요점이 별도로 한 가지 더 있다. 이는 전통적 언론이 감수해야 하는 이중적 무기력감과 관련된다. 첫 번째 언론의 무기력감은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범죄적 내용’에 대항하는 데 제도권 언론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현실에서 나온다. 언론이 평소대로 ‘사실확인’ 보도를 열심히 하고, 증오발언에 대항하는 논평을 내는 것만으로 역부족이다. 새로운 방식의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두 번째 무기력감은 인터넷 영역에서 언론의 내용결정권이 점차로 사소해지는 현실에서 나온다. 인터넷에 유통하는 정보에 대한 최종 결정권이 점차 플랫폼 사업자에게 넘어가고 있다. 플랫폼 사업자는 규제당국의 등쌀에 내몰려 ‘원하지도 않았던’ 내용결정권을 얻게 됐다. 인터넷 게시물에 대한 삭제권이라는 형식으로 말이다. 이미 증가하고 있는 인터넷 플랫폼에 대한 의존성을 규제당국이 강화하는 형국이다.
이준웅 |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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