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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칼럼+옴부즈만

북한 3대 세습을 둘러싼 논란을 보며

이택광 경희대교수 문화평론가

북한 권력이양 문제와 관련한 논쟁이 진보진영 내부에서 뜨겁다. 경향신문이 사설과 이대근 논설위원의 글을 통해 문제 제기를 한 결과이다. ‘넘겨짚기’라는 비판도 없지 않았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양상을 보면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다. 북한이 결국 3대째 국가권력을 ‘세습’하기로 한 것은 기정사실이고, 이 문제에 대한 진보진영의 입장을 밝혀야 하는 것도 당면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왜 하필 민주노동당에 그 입장을 강요하는지 되묻기도 한다. ‘역매카시즘’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면서, 권력세습에 대한 비판을 굳이 민노당이 하지 않아도 된다고 강변한다. 북한의 내부문제에 대한 섣부른 비판이 남북관계를 악화시킬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란다. 이런 반론은 이 위원이 민노당에 북한의 권력세습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취할 것을 주문한 까닭을 무색하게 만든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발행하는 시사잡지 환구인물은 최신호(10월16일자) 표지인물로 나온 김일성 3대. 경향신문자료사진


이 위원의 문제제기에서 추려 들어야 했던 것은 ‘민노당’이라는 부르주아 대의제 민주주의제도 내에서 진보주의의 이념을 대변한다고 자임하고 있는 공당의 전망에 대한 의문이었다. 이 위원은 민노당에 이 진보의 전망과 북한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주문했던 것이다. 그런데 민노당을 비롯한 일부 진보세력은 특이한 반응을 보였다. 어떻게 든 북한에 대한 비판을 회피하려는 태도를 부지불식간에 드러낸 것이다.

흥미롭게도 권력세습 비판하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지탱해주는 것은 “북한 내부 문제”이기 때문에 관여할 일이 아니라는 논리이다. 그러나 북한을 독자적인 국가로 설정하는 이런 논리는 외교적인 차원에서나 가능한 수사일 뿐이다. 북한의 권력세습에 대한 민노당의 입장은 한국사회에서 진보의 전망을 어떻게 수립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기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사실 일부 진보세력이 북한의 권력세습에 대한 비판을 망설이는 까닭은 ‘조국통일’을 진보의 정언명령으로 믿고 있기 때문이다. 조국통일은 이들에게 ‘단일민족 국가건설’이라는 실패한 근대적 기획의 완성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통일을 이루고 진보를 완성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들은 여전히 한반도의 북쪽에 있는 ‘현실사회주의 체제’에 진보적인 측면이 있다는 점을 은연 중에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권력세습을 문제시하지 않는 것도 이런 생각 때문에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과거 사회주의 이론에 따르면, 사회주의국가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프롤레타리아독재이고, 북한의 권력세습은 이 사회주의적 전략전술을 자기 식대로 적용한 제도인 것이다. 물론 민노당이나 이를 지지하는 일부 진보세력이 이런 전략전술을 신봉하는 것은 아닐 테다. 하지만 국가권력을 진보세력이 장악해서 진보적 기획을 달성해야 한다는 생각을 공유한다는 측면에서, 이들이 심각하게 북한의 권력세습을 비판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넓게 본다면, 북한의 선택도 국가권력을 사회주의 세력이 계속 장악하기 위한 나름의 자구책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 논란을 지켜보면서 세계의 정치상황이 초국가적인 국면으로 진행되고 있는 마당에도 한국의 진보진영은 여전히 일국적인 시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남북관계는 북한의 오류를 비판한다고 나빠지는 것이 아니라 이런 국제정치 상황을 진보진영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때 위험에 빠지는 것이다.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 문제와 긴밀하게 얽혀 있었던 천안함 사태에서 배워야 할 교훈이 바로 이것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