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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시민비평

성공한 대통령은 언론과 사이가 나빴다

‘대서양에 의해 뉴스 전달이 지연될 수밖에 없었던 환경이 1770년대 영국과 미국을 갈라놓은 한 요인이었다.’ 언론사학자 미첼 스티븐스의 주장이다. 모든 인쇄물에 인지를 붙이도록 강요한 인지조례를 비난하는 결의문이 버지니아 하원에서 통과된 뒤 그 뉴스가 영국에 알려진 게 석 달 만이었다. 조세저항에 부딪혀 뒤늦게 인지세를 폐지했지만 그 뉴스가 미국에 전달되는 데 또 65일이 걸렸다. 정보 결핍이 식민지 사람들의 불만을 가중시켜 독립운동의 한 기폭제가 된 것이다. 


인터넷과 방송이 실시간으로 뉴스를 전하는 21세기에도 한국의 언론 수용자들 사이에는 ‘대서양’만 한 간극이 있는 듯하다. 나라를 두 쪽 낼 정도로 보수와 진보 세력을 갈라놓은 주역은 저널리즘의 표준을 외면한 한국 언론이다. 두 세력에 속한 사람들 사이에는 대화와 공존은 없고 대립과 적개심만 있다. 우리 사회의 이슈를 둘러싼 상반된 주장의 근거는 자기가 선호하는 언론매체의 논조인 경우가 많다. 


매체나 사람마다 견해는 다를 수 있고, 그것이 민주주의 사회의 바람직한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견해가 정보의 결핍 또는 왜곡에 근거해 일종의 집단의식으로 굳어진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특히 최근 국가정보원의 ‘선거개입’과 소위 ‘내란음모’ 사건에 대한 종합편성채널 등 보수언론과 공영방송의 보도 태도는 ‘언론이 직접 정치를 한다’고 볼 만큼 정도를 벗어나고 있다. 미디어오늘 분석에 따르면 이들 매체는 국정원의 선거개입에 대해서는 축소·왜곡 보도를 해오다가 내란음모 사건은 과장·편파 보도를 하고 있다. 


국정원이 터뜨린 내란음모 사건은 모든 이슈를 삼키는 블랙홀인데, 진정한 보수·진보 언론이 양립한 사회라면 집권당이 큰 정치적 이득을 얻기 힘든 사건이었다. 당장 뉴욕타임스는 “국내 정치에 개입한 혐의로 이미 충격을 준 국가정보기관이 다시 정치적 폭풍을 촉발시켰다”고 보도했다. 


[장도리]2013년 9월13일(출처 :경향DB)


사실 청와대 비서실장과 민정수석이 온건파에서 공안검사 출신 강경파로 바뀌고 역시 공안통인 황교안 법무부 장관과 팀을 이뤘을 때 유신시대의 공안 사건이 재연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김기춘 비서실장은 유신헌법의 산파였고, 민청학련과 인혁당 사건, 2·1명동구국선언 사건 등 수많은 내란음모 사건 때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 등의 요직에 있었다. 노태우 정부에서는 검찰총장이 되어 300여명의 시국사범을 구속하는 등 ‘공안정국 조성 전문가’로서 경력이 화려하다. 그런 그가, 걸려들기 딱 좋게 어설픈 짓을 한 사람들을 그냥 봐줄 리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공안정국 조성은 김기춘 등을 불러들인 박근혜 대통령의 뜻이라고 보는 게 옳다. 대통령은 초연하게 러시아로 날아가 외교활동에 전념하고 있는 듯하지만, 공안정국이 누구의 ‘희망사항’인지는 기시감이 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최후의 만찬’에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을 이렇게 힐난했다. “중앙정보부가 좀 매섭게 해야지. 야당 의원들의 비행(非行) 사실을 움켜쥐고 있으면 뭣해. 딱딱 입건해 잡아들여야 할 것 아냐.”


아니나 다를까? 내란음모 사건은 국정원 선거개입은 물론이고 경제민주화와 복지 공약 포기 논란 등을 모두 집어삼키고 말았다. 대통령 ‘지지율’은 더 치솟을 가능성이 높다. 새누리당은 내친김에 민주당과 문재인 의원까지 ‘종북’의 파트너였다며 의원직 사퇴를 거론했다. 통합진보당 내 일부의 시대착오적 발언을 빌미로 매카시즘이 정치판을 휩쓸고 있다. 실행 가능성도 희박한 ‘생각’을 처단한다며 엄청난 정치적 ‘액션’을 실행한 것이다. 


매카시즘의 본고장인 미국에서도 “생각이 아니라 행동만이 처벌될 수 있다”는 몽테스키외의 법사상을 받아들여 매카시즘의 광풍을 잠재운 지 오래다. 1919년에 이미 올리버 홈즈 대법원 판사는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없는 한 말과 언론은 보호돼야 한다고 천명했다. 국정원이 지난 5월 발언 내용을 입수하고도 검거에 나서지 않았던 이유는 ‘현존하는 위험’이 없었기 때문일 터이다. 



 일러스트 _ 김상민 기자



▲ 국정원과 보수언론이 합작하는 공안정국

박근혜 대통령이 제퍼슨과 링컨에게 배울 점은 무엇인가


언론은 이런 때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내란음모 보도와 관련해 언론이 취할 길은 피의사실 공표죄를 무시하며 마구 쏟아내는 국정원의 일방적 언론플레이에 놀아나지 말고 사실확인에 나서는 것이다. 130명이 집회에 참석했다는데 어느 진보언론도 그들을 찾아가서 사실을 재구성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기이한 현상이다. 참석자의 말은 가감해서 들어야겠지만 적어도 중요한 취재원임에는 틀림없지 않은가? 


지지언론을 확보하려는 노력은 지지세력을 확대하기 위한 정당의 정치행위다. 그러나 방법이 문제다. 국민 3분의 2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명박 정권이 종편을 허용한 것은 정권 재창출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출범 이래 무려 84건의 법정제재를 받아 공정성 등에 중대한 하자가 있는 종편을 감싸고도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하기야 미국에서 언론자유의 수호자처럼 떠받드는 토머스 제퍼슨도 지지언론을 확보하려 애썼다. 그는 대통령 취임 전 한 신문 편집인에게 정부 인쇄물을 발주하겠다며 워싱턴으로 회사를 옮기게 해 우군으로 삼았다. 제퍼슨은 반대언론을 혐오하면서도 때로는 귀를 기울였다. 링컨을 비롯한 성공한 미국 대통령들 중에는 언론과 사이가 나쁜 이가 많았다. 반면 박근혜 정권은 공영방송과 종편은 물론 대형 신문들까지 우군으로 확보하고 있다. 반대 목소리에는 철저히 귀를 닫는다. 견제가 약한 정권은 독재나 실패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세계 언론사와 정치사는 말해준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박정희·이명박 정권이 그랬다.


이봉수 | 시민편집인·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 hibongso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