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주간경향>에 연재중인 [정동늬우스]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조석준 기상청장의 ‘음주 뺑소니’ 전과가 드러나면서 그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조 청장은 1984년 6월 회식을 마치고 귀가하다 행인을 차로 치어 사망에 이르게 했다. 경찰은 현장에서 조 청장의 자동차 검사필증을 발견했고, 그를 음주 뺑소니 혐의로 체포했다. 이후 조 청장은 피해자 가족과 합의해 벌금형을 선고받았다고 밝혔다.(2011년 2월 15일자, 사퇴 목소리 커지는 ‘음주 뺑소니’ 조석준 기상청장, 벌금형 처벌도 미스터리)
|강윤중 기자
조 청장의 사퇴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는다. 이 정권의 공직자 행적은 불·탈법의 바다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음주+뺑소니’에 ‘사망’까지 이른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모르쇠다. “기상산업 시장을 1000억원 시장으로 만들겠다”는 조 청장에 대한 믿음 때문일까? 개신교 장로 대통령의 사랑과 관용 덕분일까? ‘전과’에 대한 동병상련을 느껴서일까? ‘베스트 오브 베스트’라 허물을 덮기로 한 걸까. 그 깊은 뜻을 알 도리 없지만, ‘애니싱 벗 로(Anything But Roh·노무현이 하지 않은 것이면 모두 좋다는 말)’에 따른 사면 같기도 하다.
여권의 ‘8·15 대사면’ 구상이 밑그림을 드러냈다. ‘광복 60주년’이라는 시대적 의미를 최대한 살려 화합의 장으로 삼겠다는 게 큰 골격이다. 650만명이라는 헌정사상 최대 규모부터 그런 의도를 보여준다.(중략) 다만 음주운전으로 인한 면허정지자 5만5000명과 면허취소자 1만8000명, 뺑소니 사범 등은 (행정처분 면제에서) 제외된다.(2005년 7월 16일자, 헌정사상 최대 여권 ‘8·15 대사면’)
행정처분 면제 대상에서도 제외시킨 음주와 뺑소니 사범을 차관급으로 사면복권시켜주는 이 놀라운 ‘국격’, ‘법과 원칙’, ‘공정사회’. 음주 뺑소니 사범에 대한 선처와 관용의 정신은 대한민국에서 나름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다. 이 역사와 전통은 물론 예외적이다.
음주운전을 하다 근무중인 경찰을 친 뒤 그대로 달아났던 법원 직원에 대해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이 검찰에서 기각돼 법집행이 공정치 않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중략)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제5조 3항 ‘도주운전자의 가중처벌’에 따르면 운전자가 교통사고를 낸 뒤 피해자를 구조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고 도주할 경우 최고 무기징역에서 최저 징역 1년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1991년 4월 19일자, 뺑소니 법원 직원 검찰서 영장 기각 “이례적 관대” 비난)
빽 있고 힘 있는 이들에 대한 ‘이례적 관대’는 이례가 아니라 상례였다.
술에 취해 난폭운전을 하던 현직 검사가 경찰의 검문에 불응하고 달아나다 경찰 순찰차의 추격 끝에 붙잡혔으나 경찰이 음주측정은 물론 조사도 하지 않은 채 훈방해 말썽.(중략) 인근 동부동 파출소로 연행된 주 검사는 “경찰서장과 경찰국장을 불러 달라”고 폭언을 하며 당직근무중인 백모 경장(53)에게 ‘앉아, 일어서’를 시키며 행패를 부리다 연락을 받고 나온 춘천경찰서 수사과장의 설득으로 귀가.(1991년 5월 26일자, 음주운전 뺑소니 검사, 연행되자 경찰에 행패)
주 검사? 맞다. 그분(주성영)이시다. 35세 때 벌어진 일. 이분 ‘설득’당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음주 뺑소니는 일반인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범죄행위였다.
22일 0시 5분쯤 서울 송파구 신천동 잠실대교에서 음주운전으로 연쇄추돌 사고를 낸 뒤 달아나던 정모씨(25)가 차에서 나와 한강으로 뛰어들어 자살을 기도.(중략) 한강순찰대에 의해 구조된 정씨는 경찰에서 “음주사고를 냈으니 감옥에 갈 것이 뻔해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았다”고 진술. (1991년 6월 23일자, 음주운전 사고 회사원, 뺑소니 끝 한강에 투신)
‘좋은 시절’은 이어진다. ‘좋은 선배’를 둔 ‘좋은 변호사’를 만나면 투신따윈 할 필요도 없다.
뺑소니 교통사고 전력이 있는 조석준 기상청장 임명을 풍자한 2월 13일 경향신문 ‘여적’ 일러스트.
|경향신문
지난해 말 뺑소니 음주운전 사건을 수임받은 초년 변호사 ㄱ씨는 ‘선배 좋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사건 의뢰인인 가해자가 음주에 뺑소니까지 한 데다 피해자 2명이 전치 4주, 8주의 상처를 입은 큰 사건이어서 내심 의뢰인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었으나 이례적으로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것. 그는 당시 인사차 찾아간 담당판사가 대학 1년 선배가 아니었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고 지금도 믿고 있다.(1993년 4월 19일자, 인간회복, 새롭게 태어나자)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다지만, 음주 뺑소니 사범의 씨는 따로 있는 게 한국 사회다. 90년대 이야기냐고?
만취상태로 운전하던 현직 검찰 간부가 교통사고를 내고 도주하다가 중앙선을 침범, 또 다시 충돌사고를 낸 뒤 뒤쫓아온 시민에게 붙잡혀 경찰에 넘겨졌다. 그러나 경찰은 음주운전에 뺑소니 사고까지 낸 현행범인 검찰 간부에 대해 “술에 만취했기 때문에 조사가 불가능하다”며 귀가조치한 것으로 드러나 “봐준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2005년 8월 2일자, 부장검사가 만취운전 충돌사고, 뺑소니까지)
주 검사님과 이 부장검사님 사례를 볼 때 검사의 음주 뺑소니 처벌 수위는 ‘귀가’인 셈이다. 연예인들의 음주 뺑소니 사건과 관대한 처벌도 곧잘 도마에 올랐다.
무면허 음주운전 및 뺑소니 사고로 구속된 인기 탤런트 신은경씨(23)가 이틀 만에 구속적부심에서 풀려나자 22일 시민들의 항의가 빗발.(1996년 11월 23일자, 신은경 석방, 서울지법에 항의 쇄도)
당시 경향신문에 걸려온 시민 전화 내용은 이렇다. “우리나라 법은 고무줄 같다. 사람에 따라서, 계층에 따라서, 부에 따라서 늘렸다 줄였다 제 마음대로다.”
2005년 뺑소니 사고를 낸 인기그룹 클릭비의 김상혁씨가 음주 무혐의 처분을 받고 불구속 입건됐을 때도 “일반 사람이 뺑소니를 치고 무려 11시간이 지난 후 출두하면 이렇게 관대했겠느냐”는 비난이 이어졌다.
요즘 연예인에 대한 마녀사냥식 여론재판과는 양상이 달랐다. 기득권과 특수 신분에 대한 오락가락 봐주기 식 법집행에 대한 비난과 분노들.
음주 뺑소니 사고를 낸 연예인 중에 연예계로 복귀한 이도 있고, 사라진 이도 있지만 아직 공직에 오른 이는 없었다. 1997년 음주 뺑소니 사고를 낸 가수 김흥국씨가 나중에 문화부 장관에 오르면 모를까.(김씨는 2009년 “유인촌도 문화부 장관하는데, 나도…”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상기하면 조석준 청장의 음주 뺑소니로 한 사람이 죽어났다. 김택근 논설위원이 ‘여적’에 쓴 글이다.
조석준 청장은 그런 사실을 인정하면서 “중요한 일을 맡으라는 요구를 국민에게 마지막으로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국가기관을, 더욱이 하늘과 소통하는 기상청을 개인의 잘못을 씻는 자리로 삼겠다니 망측할 뿐이다. 그가 진정 사회에 봉사하며 지난 일을 용서받고 싶다면 공직보다는 다른 일을 찾아야 할 것이다. 더욱 기가 막힌 일은 이런 사실을 이미 청와대가 알고도 임명을 강행했다는 것이다. 민심과 천심을 헤아린다면 두려워해야 할 일이다. 무도함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2011년 2월 14일자, 기상청장 직책의 무거움)
<김종목 경향신문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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