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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리즈=====/김종목의 미디어잡설

타짜 고위공직자

*이 글은 <주간경향>에 연재중인 [정동늬우스]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강원도 정선의 ‘강원랜드’ 카지노에서 평일 근무시간에 상습적으로 도박을 즐긴 공직자 370여명이 감사원 감사에서 적발됐다. 공공기관의 본부장급 간부는 3년 10개월간 베팅 금액이 100억원대에 달했다.(2011년 1월 20일자, 카지노 공직자 370명 적발)

감사원이 강원랜드에서 상습 도박한 공직자들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한 19일 연예인 신정환씨도 귀국했다. “도박은 남에게 해를 끼치는 ‘범죄’가 아니라 자기에게 해를 끼치는 ‘질병’”이라는 게 진중권씨의 트윗. 그런데 이 질병이 때로는 범죄로도 이어진 게 공무원들의 도박.


공금 25억8000만원을 차명계좌로 빼돌린 뒤 외국으로 도피했던 강원도청 산하 감자종자진흥원의 회계담당 공무원은 인터넷 도박에 빠져 거액의 빚을 지게 되자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확인됐다.(2008년 11월 26일자, 25억 횡령 부른 인터넷 도박)

도박자금을 마련하고, 도박빚을 갚기 위한 횡령액은 대략 20억원대? ‘통큰 공무원’. 판돈도 20억원대.

경기 부천 중부경찰서는 우체국 법인카드로 28억여원을 횡령한 혐의로 부천우체국 김모씨를 긴급 체포했다.(중략) 경마 등 도박을 하거나 카드빚을 갚는 데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2004년 1월 5일자, 우체국 직원이 28억 횡령, 법인카드 유용 도박빚 갚아)

중앙부처 산하기관과 지자체 소속 공무원들은 때로 ‘도박’으로 연대를 강화한다. 그리고 ‘특별히’ 사면된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소속 공무원은 근무시간 중 지자체 공무원 등과 함께 도박을 하다 적발돼 감봉 3개월 처벌을 받은 뒤 특별사면됐다.(2010년 10월 4일자, 채용 청탁·도박·성매수·횡령 농식품부, 잇단 비리로 얼룩)

2000년 10월 강원랜드 개장 이전까지 아쉬운대로 인터넷으로라도 열공.

충남·경북도청과 제주도교육청, 서울시 지하철건설본부 등 관공서 공무원들과 학교, 은행, 대기업 직원 등 20여만명이 근무시간에 인터넷 ‘사이버 카지노 도박’을 벌여 지난 4개월 동안 수십억원의 외화가 유출된 것으로 나타났다.(2000년 1월 20일자, 공무원 등 근무시간 중 ‘인터넷 카지노’ 들락날락)

1990년대는 공무원 도박판에 살풍경과 진풍경이 한데 어우러진 시절. 우선 고위공직자의 표상, 법조인들. 범죄를 다스리는 게 직업인 검사님도 수천만원대 도박판을 벌였다가 적발. ‘달러’ 도박으로 일반 공무원들과의 차별성을 입증.

도박 현장에서도 외화 수천 달러가 압수됐다니 외화가 어디서 새는지를 다시 확인시켜주고 있다.(중략) 이 시기에 제주까지 골프관광을 가 사업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거액의 도박판을 벌일 정도로 분별없는 집단인가에 대해 검찰 스스로 겸허히 반성해야 한다.(1997년 12월 8일자, 검사가 도박이라니)

그런데 혹시 이 검사님 사법연수원 시절 ‘도박 연수’를 받다 걸리신 분은 아닐까.

판·검사, 변호사로 배출될 사법시험 합격자들의 교육기관인 사법연수원에서 밤 늦도록 원생들간에 노름판이 벌어지고 있음이 확인돼 피교육생들의 ‘심심풀이’로는 지나치지 않으냐는 우려가 일고 있다. (중략) 연수원 관계자들은 이와 관련, “노름이 성행되면서 은행카드와 은행의 공무원 융자를 통해 수백만원대의 빚까지 지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1992년 5월 10일자, 법전 대신 카드 들고 밤샘까지)

공무원들의 ‘봉’은 건설업자들. 술접대, 성접대만 있다는 편견을 버릴 것.

울산남부경찰서는 ‘접대도박’을 통해 업자들로부터 1000여만원을 뜯어낸 울산시 하수관리과장 김모씨에 대해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중략)김 과장은 상대방의 피를 한장씩 더 받을 수 있는 쌍피는 자신만이 갖고 화투패가 좋지 않으면 자신은 빠질 수 있으나 접대자들은 연속으로 빠지지 못하도록 했다.(1999년 3월 8일자, 공무원이 업자와 접대도박)

그래도 ‘도박판 노동과 수고’를 통해 돈을 뜯어낸 건 양반축에 든다. 민원인에게 돈을 뜯어 판돈을 마련한 도박공무원들도 있었다.

서울시내 구청의 하급 직원들이 민원인들로부터 뜯은 돈 등으로 매주 정기적으로 모여 밤샘 포커판을 벌이다 적발됐다. (중략) 이들은 또 민원인과 접촉이 많은 업무의 성격을 악용, 지역 내 각 업체로부터 10만∼20만원씩을 거두어 300만∼400만원을 도박자금으로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1997년 9월 10일자, 민원인에 돈 뜯고 뜯은 돈으론 노름하고)

민원인 갈취에다 범죄조직과 공생한 이도 있었으니….

또 공무원 송모씨는 지난해 7월 4000여만원의 도박빚을 갚기 위해 ‘서울모녀팀’에게 동료 공무원 장모씨를 범행 대상으로 소개시켜준 뒤 꽃뱀 김모씨와의 성관계를 부추겨 1100만원을 챙긴 혐의다.(1997년 2월 10일자, 모녀 낀 꽃뱀 공갈단)

판돈을 잃으면 때로는 강도로 돌변했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17일 도박판에서 8000여만원을 잃자 폭력배 등을 동원, 도박판을 기습해 판돈 1억5000여만원을 털어 달아난 서울 강남구청 공무원 염모씨를 강도상해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1990년 1월 17일자, 공무원이 청부강도)

이 패가망신과 범죄의 나날들은 아스라한 옛날 이야기. 그런데 2011년 현재 고위공직자들의 카지노 도박은? ‘근무시간’이라지만 횡령 등 범죄 혐의는 밝혀진 게 없는 상황. 국가공무원들이 국가가 ‘특별법’으로 만든 ‘합법적’ 공간에서 도박을 한 행위는 합법? 불법? 규정위반? 품위위배? 그저 개망신?

<김종목 경향신문 기자 jom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