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BBC방송 기자가 학생인 양 가장해 북한을 방문, 취재한 사실이 드러났다.
영국 런던경제대학(LSE)은 13일 학생들과 교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BBC방송 기자가 우리 학생들 틈에 끼어 북한을 잠입취재했다”고 밝히고 “방송사와 취재팀은 이런 사실을 사전에 학교 측에 알리지 않았으며, 북한 방문에 동행한 학생들에게도 충분한 정보를 주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BBC방송은 매주 월요일 방송되는 시사프로그램 <파노라마>의 취재기자 존 스위니가 지난달 LSE 학생들로 이뤄진 북한 방문단에 끼어 북한을 취재한 사실을 인정했으나 “취재 전 학생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고 주장했다.
북한 ‘잠입취재’ 내용을 담은 <파노라마> 예고편을 소개한 BBC방송 웹사이트.
LSE 박사과정 학생들은 지난달 북한을 8일간 방문하면서 평양과 교외 지역, 비무장지대 등을 둘러봤다. 일간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스위니는 1980년 LSE를 졸업했고, 이 학교 졸업생이라는 점을 들어 이번 방문에 함께 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LSE 강사인 스위니의 아내도 북한에 동행했다.
스위니는 이 방문에서 ‘3대 세습통치를 거치며 북한인들이 세뇌를 당하는 모습’과 ‘북한 정권이 국민들을 아마게돈으로 몰고 가는 모습’을 취재한 뒤 프로그램에 담은 것으로 전해졌다.
스위니가 취재한 내용은 15일(현지시간) 방영될 예정인데 학교 측은 BBC에 방송을 그만둘 것과 공개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프로그램이 예정대로 전파를 타든 혹은 방송계획이 철회되든, BBC는 ‘취재 과정의 부도덕성’을 둘러싼 논란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문제는 함께 한 학생들이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취재를 감행했다는 것이다. 학교 측은 “만일 학생들이 북한을 나오기 전에 북한 당국이 스위니의 취재 사실을 알았더라면 큰 위험에 빠질 수 있었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학교 측은 “공익을 위해 세계의 위험한 지역에서 탐사보도를 하는 기자들을 전적으로 지지하고 갈채를 보내지만, 그런 행동에 우리 학교의 이름과 학생들을 이용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LSE는 스위니가 기자라는 걸 학생들이 알고는 있었지만, 북한 잠입취재임을 전혀 몰랐다면서 “의도적으로 학생들을 호도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북한이 기자들에게 취재 비자를 내주지 않는 극도로 폐쇄된 독재국가임을 고려하더라도, 신분을 속인 채 취재한 뒤 보도하는 것은 통상 저널리즘 업계에서 인정받기 힘든 불법 취재다.
북한 '잠입취재'로 논란을 빚은 존 스위니 기자. 사진 BBC
BBC는 현재까지는 방송을 강행한다는 방침이다. 이 회사 대변인은 “(스위니의 취재 때문에) 학생들의 위험이 커졌다는 것을 인정한다”면서도 사전에 방문단 학생들에게 취재 사실을 알렸다고 주장했다.
BBC는 웹사이트를 통해 “스위니 기자는 LSE 학생회와 방문단 학생들에게 이 문제에 대해 직접 해명하길 바라고 있다”고 밝혔다. 스위니도 트위터에 “LSE 측의 성명에 이견이 있다”며 학생들에게 설명하고 싶다는 멘션을 올렸다.
올해 55세인 스위니는 영국 시사잡지 ‘옵서버’ 기자 출신으로, 2001년 BBC로 회사를 옮겼다. 루마니아, 알제리, 이라크, 체첸, 부룬디, 보스니아 등지를 취재하며 탐사보도 전문 기자로 이름을 얻었다. 2002년에는 아프리카 짐바브웨를 방문해 로버트 무가베 독재정권에 희생된 이들의 묘지를 취재한 뒤 보도했는데, 이 일 때문에 무가베 정부가 BBC 취재진의 자국 입국과 모든 취재를 금지시키기도 했다.
경향신문 국제부 구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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