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가 수여하는 안종필 자유언론상의 올해 수상자는 최승호 MBC ‘PD수첩’ PD다. 그는 지난 8월 ‘4대강 수심 6의 비밀’ 편으로 상을 받았다.
동아투위가 밝힌 수상 이유는 “정부의 ‘4대강 살리기’ 사업이 사실상 운하 사업이나 다름없다는 점을 밝혀 큰 파장을 일으켰다” “방송 내용을 훼손하려는 저의를 갖고 있었음이 분명한 경영진의 압력을 물리침으로써 자유언론의 원칙을 지켜냈다”이다. ‘4대강 수심 6의 비밀’ 편은 김재철 사장 등 MBC 경영진의 방송 보류 결정으로 결방됐다가 한주 뒤에야 방영되는 고초를 겪었다. ‘PD수첩’ 역사에서 결방은 20년만의 일이었다.
최 PD에게 수상 소감부터 물었다. “(한국 언론계가) 정상적 상황이라면 제가 상 받으면 안 되는 겁니다”라며 웃었다. 최 PD는 “안종필 선배님은 자유언론 투쟁과정에서 목숨 걸고 싸우면서 해고되고, 감옥에 가셨던 분”이라며 “저는 직업으로서 언론행위를 했을 뿐인데, 과분한 상을 받았다”고 했다.
“국책사업 검증 프로그램을 한 겁니다. 지극히 당연한 일을 한 건데, 직업적 언론행위를 못하도록 한 압력이 있었고, 촛불집회 같은 저항의 이벤트가 생기면서 주목을 받은 거죠.” 최 PD는 “제가 마치 자유언론의 투사인양 과분한 상을 받는 자체가 이전보다 많이 위축된 한국 언론 현실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 저널리즘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최 PD는 “여론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는 언론의 취향과 스펙트럼이 넓어지고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조중동이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하는 문제는 넘어섰다고 본다”면서 “하지만 팩트를 발굴하고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언론사는 굉장히 제한적이고, 아직도 권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최 PD는 이명박 정부 들어 방송사 기자·피디들에 대한 해고·징계 사태 같은 ‘채찍’, 보수언론사 선정이 유력한 종편 등의 ‘당근’을 거론하며 “지금 영혼이 없는 저널리즘이 양산되고 있다”며 “이런 한국 저널리즘은 한국 사회 미래를 암울하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올초 환경전문기자 자리를 내놓은 박수택 SBS 논설위원의 “환경운동가, 목사, 신부, 승려 분들이 기자와 PD노릇을 하고 있다. 그리고 개그맨(장동혁)이 논평을 한다. 현직 기자·PD들은 묵언수행 중이거나 청중 노릇을 한다”는 말도 전했다.
<김혜수의 W>, <시사플러스 후>를 폐지한 MBC의 가을개편도 지적했다. 최 피디는 “한꺼번에 시사프로그램을 두개나 죽였는데, 국민을 위한 공영방송 MBC의 정체성을 훼손시킨 조치”라고 말했다.
그는 “KBS가 지금 제 역할을 못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 사회 전체를 위해 MBC가 사회 환경 감시 기능을 강화해야 할 때인데, MBC마저 그 기능을 줄어버려 안타깝다”며 “시사프로그램 없앴다고 국민들이 좋아할지, 그렇게 해서 무얼 얼마나 얻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PD수첩’은 한국 PD저널리즘의 대명사다. 삼성과 검찰 같은 기득권과 권력핵심을 파헤치는 작업뿐만 아니라 ‘황우석 사태’처럼 다수의 상식과 ‘보편적 믿음’의 허구를 깨는 작업도 마다하지 않았다.
최 PD는 “삼성, 대형교회 등 민간을 다루는 경험이 쌓이면서 검찰 같은 힘있는 권력 기관에 관심이 생겼고, 제보도 들어오면서 자연스럽게 지금처럼 우리 사회 핵심 문제를 다루는 경향성을 갖게 됐다”며 “다른 데서 특히 방송에서 워낙 (권력 기관을) 안 다루니까 우리한테 제보가 몰린다. ‘검사와 스폰서’도 PD수첩을 꼭 집어서 제보했다”고 전했다.
“PD수첩은 ‘알게 되면 피해가지 말자’는 슬로건이고 줄곧 지켜온 원칙입니다.” 최 PD는 “피해가지 않고 탐구하다 보면, 결국 방송하는 데까지 가게 된다”며 “첨예한 문제이기 때문에 방송 나가는 과정에서 난리가 나고 주목을 받는 게 반복되고 있다”고 했다.
최 PD의 말처럼 시비에 오르는 건 예사다. 중압감이 클 듯한데 최 PD는 담담했다. 그는 “제가 단련되어 있는 편”이라며 “또 24년 정도 PD 생활하면서, 가처분 소송 말고 소송에 걸린 적은 2001년 ‘한국의 대형교회’ 1건뿐인데 1심에서 이겼고, 소송 제기한 교회쪽에서 항소를 포기했다”고 말했다. 소송을 대비해 자료와 근거를 철저히 남겨둔다고 했다.
2005년 ‘황우석 신화의 난자 의혹’ 방영 때가 PD생활의 최대 고비였다고 한다. 최 PD는 “사실 황우석 사태 때 회사에서 징계당하고, 광고가 다 떨어져나갔다. 온라인 조사에선 90% 넘게 ‘PD수첩’을 반대했다”며 “그때 언론인으로서 감당하고 당할 수 있는 극한의 상황을 겪었기 때문인지 그 뒤로는 웬만해선 안 놀란다”며 웃었다.
이어 “2008년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이후 일어난 사태 이후 정권 탄압을 많이 받았고, 그 과정에서 프로그램이 없어지는 상황까지 갔다”며 “PD수첩은 탄압받으면서 강해졌고, 권력·성역을 비켜나지 않고 살아남아 자신감이 있다”고 말했다.
온갖 압력과 협박, 회유에도 끄덕없을 것 같은데, ‘검사와 스폰서’ 편 때 검사들을 취재할 때는 스트레스를 받은 듯 했다. 1편에 나온 당시 박기준 부산지검장의 “네가 뭔데” “너 저기 무슨 PD야”라는 반말은 검찰의 속성과 행태를 압축하는 말이었다. 취재 당시 기분을 물었다.
“아 그때요? 처음 들을 때는 황당하죠. 그래도 참아야 합니다. 제가 같이 화를 내면 안되죠. 상대가 말을 안하거나 전화를 끊어버리니까요. 그래서 참는 것도 훈련해야 합니다(웃음). 그런데 박 검사장만 호통친 건 아니에요. 여러 분이 그랬습니다. 저도 나이 먹을 만큼 먹었는데, 저보다 어린 검사가 호통 칠 때는 ‘저 친구한테 저런 말을 들어야 하나’ 하고 스트레스도 받고 짜증도 나죠.”
최 PD는 ‘검사와 스폰서’ 방영 이후 과거처럼 쉽게 유흥문화를 즐기는 행태는 많이 줄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최 PD는 “3편에서 누누이 지적했지만, 진상규명 결과는 사실과 다른데다 축소·은폐가 이루어졌다”며 “방송에서 지적한 부분에 대해 끝까지 답변, 해명을 않고 있다”고 말했다.
‘검사와 스폰서’ 4편은?
“PD수첩은 국민여론하고 같이 갑니다. 앞으로도 검찰이 문제가 많다고 하면 국민과 함께 지켜볼 겁니다.”
최 PD는 ‘PD수첩’ 등의 책임PD를 거친 뒤 지난해 다시 ‘PD수첩’ 취재PD로 왔다. 기자직으로 말하면 부장을 하다 다시 현장기자가 된 셈이다. 최 PD는 “앞으로 계속 현장에서 취재PD로서 프로그램을 하고 싶다”며 “한국 언론계에선 현장에 나이든 사람이 가면 조롱하는 경향이 있는데, 외국 같이 고참들이 계속 현장에 나가는 일을 해야 그 층이 두터워져 한국 저널리즘 심도가 깊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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