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디어칼럼+옴부즈만

‘종편 선정’ 이후 한국사회

방송통신위원회가 종합편성채널과 보도전문채널 사업자를 곧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사법부로부터 “심대하고 중대한 위법과 위헌이 있는 법안”이라는 지적을 받고도 뭉개고 밀어 붙인, 민망하고 후안무치한 바로 그 미디어 법안이 이제 정책으로 실현되는 것이다. 최근의 방송 사업자 선정에서 관심은 종합편성채널에 몇 개의 사업자를 선정할 것인가에 집중되어 있었다. 현재의 미디어 광고 시장의 규모로 보아 종편채널을 2개 이상 선정하는 것은 과잉공급으로 공멸할 우려가 크다는 것이 시장의 판단이었던 반면, 정부 입장에서는 종합편성 도입의 실제적인 효과라고 할 수 있는 여론시장의 보수적 재편을 위해 선정되는 사업자가 많을수록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최종 심사를 앞두고 최시중 위원장은 일정한 기준을 충족하는 신청자는 모두 허가하겠다는 선정 방침을 밝히면서 “결과는 시장 자율에 맡기겠다”고 말했다. 여론시장의 효과적 재편이라는 집권세력의 원래 의도에 충실하게 부합하는 선택을 한 것이다. 이제 지상파 방송뿐만 아니라 신문과 인터넷을 포함하여 동일한 광고시장을 나누어 먹는 모든 미디어 간에 치열한 생존경쟁이 일어날 것이며, 이것은 전체 미디어를 극심하게 상업화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여론 독과점화·미디어 상업화

대신 종편채널에 선정된 사업자들은 지상파에 근접한 채널 배정, 규제 완화 등의 특혜를 통해 생존권을 보장받게 될 것이다. 여기에다 중간광고 허용과 광고 금지 품목 해제, KBS 수신료 인상 등을 통해 광고시장을 확대해주는 배려까지 준비되어 있다. “망할 각오를 하고 들어오라”는 빈말과는 달리 화끈하게 밀어주고 싶다는 의도를 숨길 수가 없었을 것이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선정 방침에서 잘 드러나듯이, 미디어 시장의 과도한 상업화보다 더 큰 문제는 여론의 독과점화이다. 이미 널리 알려진 대로 미디어법의 요체는 신문 시장의 7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보수신문들에 방송 진입의 길을 열어주려는 것이다. 문제는 방송 진출로 여론시장을 압도적으로 지배할 가능성이 많아진 보수신문들이 경제적 이해관계와 이념적 성향에서 지나치게 편향된 관점을 견지해 왔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보수언론이 광범위한 일반 대중의 삶의 경험과 이해관계를 대변하기보다 특정한 집단의 이념과 경제적 관점에 편향되어 있는 것은 언론 기업의 소유구조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미디어가 독과점화되었다는 것은 소수의 집단이 권력과 자원을 독점하고, 그 권력과 자원을 통해 미디어를 지배하고, 일반 사람들의 생각을 소유하게 되는 과정이 진행된다는 것이다. 내년 말쯤 본격적으로 방송이 시작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보수신문이 일관되게 견지해 왔던 신념과 이념적 성향에 동화되고 그들이 원하고 꿈꾸어 왔던 세상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

고소득자의 세금을 덜 걷고, 대기업에 더 많은 자유를 주고, 비정규직이 많아질수록 우리의 삶이 더 나아질 거라고 믿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것이다.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이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의 계급구조도 더 급속하게 재편될 것이다. 미디어는 시민 대중의 삶과 현실을 만들어가고 변화시키는 사회적 제도인데 시민 대중은 이제 그것에 개입할 수 없다. 미디어의 소유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다. 소유의 권력은 선출된 권력보다 강고하다.

보수의 역사에 MB 큰 족적으로

미디어의 소유 권력을 통제할 수 있는 몇 가지 대안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미디어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가진 정권이 선출되어 편집권 독립을 위한 강력한 법제화를 시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언론 기업 내의 민주적 문화를 정착시켜 소유권이 적절하게 견제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미디어가 공공재라는 사회적 합의를 확고하게 하여 편집권 독립의 정당성을 사회 전반에 공유시키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소유의 권력이라는 강고한 힘 앞에 이러한 대안들이 무력해 보이는 것이 오늘 우리의 미디어 현실이다. 이명박 정부는 한국 보수의 역사에 커다란 업적을 남긴 것으로 기록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