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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넘게 기자생활을 하며 생긴 오랜 버릇 중 하나는 지상파 방송의 ‘9시 뉴스’를 챙겨보는 것이었다. 이제는 8시에 뉴스를 하는 곳이 더 많아졌지만, 어쨌든 지상파 방송사의 메인뉴스를 봐야 하루를 온전히 마무리할 수 있었다. 방송뉴스가 딱히 재밌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하루종일 취재를 해 기사를 마감한 뒤에도 혹시나 기사에서 빼먹은 사실이 있나, 언론계 용어로 ‘물먹은 뉴스(타사의 단독기사)’는 없는지 살펴봐야 했다. 수습기자 시절 선배들이 그렇게 하라고 가르쳤다. 사무실에서 야근을 할 때는 물론이고, 퇴근한 뒤에도 꼭 챙겨봤다. 나 역시 그래야 안심이 됐다. 방송사 메인뉴스에 물을 먹지 않은 것을 확인한 뒤에야 회식 자리에서도 술이 잘 넘어갔다. 그런 습관이 몸에 익기까지는 당연히 아픈 경험이 있었다. 어느 날은 버스를 타고 퇴근하다 출입처 기자실로 돌아가기도 했고, 어느 날은 회사에서 야근을 하는 선배의 전화에 부랴부랴 집에서 노트북 컴퓨터를 펼쳤다. 그러다 보니 저녁 약속이 없는 날에는 아예 출입처 기자실에서 방송뉴스를 다 보고 퇴근하는 것이 일상이 되기도 했다.

 

22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앞에서 열린 mbc아나운서 출연중단 선언 기자회견에서 이재은 아나운서가 회사측의 탄압사례를 발표하는 동안 황선숙 아나운서등 동료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이를 듣고 있다. MBC 이재은 아나운서가 22일 오전 서울 상암동 사옥 앞에서 황선숙 아나운서 등 동료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하면서 부당한 출연 배제를 비롯한 회사 측의 탄압 사례를 공개하고 있다. 이들은 “2012년 파업 뒤 MBC에서 가장 심각한 블랙리스트가 자행된 곳이 아나운서국”이라며 “파업 이후 11명이 부당 전보됐고, 방송 출연 금지가 계속되면서 12명이 회사를 떠났다”고 밝혔다. 이상훈 기자

 

그러나 요즘은 지상파 방송의 메인뉴스를 예전만큼 열심히 보지 않는다. 특히 MBC 메인뉴스는 앵커가 누구인지도 모를 정도로 본 지 오래됐다. MBC 뉴스는 이제 그래도 되는 까닭이다. “알통 굵기가 정치적 성향을 좌우한다” “비 오는 날에는 소시지빵이 잘 팔린다”와 같은 뉴스들을 텔레비전 앞에서 기다렸다 제 시간에 볼 이유가 없다.

 

MBC 뉴스가 망가진 이유는 아주 단순명료하다. 일 잘하는 기자들이 더 이상 뉴스를 만들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지 MBC 뉴스에서 내가 알던 기자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나를 퇴근길 버스에서 내리게 하고, 집에서 노트북을 펼치게 만들었던 그 기자들이 방송에 거의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는 ‘브런치’ 요리를 배우러 갔다 하고, 누군가는 드라마 세트장 관리직으로 인사발령이 났다 한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니 MBC 뉴스는 거의 구제불능 수준이 되어버렸다. 그랬던 기자들이 최근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손에 마이크도 쥐었다. 다만 그들이 잡은 마이크는 아직 기자의 것이 아니다. MBC 기자들은 제작거부를 선언하고, 김장겸 MBC 사장과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현장에서 시위자로 나서고 있다. 보도자료를 내고 어색하지만 예전에 알던 타사 동료기자와 인터뷰를 하기도 한다. 

 

이번 싸움은 쉽게 사그라들 것 같지는 않다. 지난달 시작된 MBC 구성원들의 제작거부는 기자들뿐만 아니라 PD, 아나운서 등 전 분야로 이어지고 있다. 싸움을 위해 일손을 내려놓은 이들이 이제는 300명 가까이에 이른다. 언론노조 MBC본부는 24일부터 엿새간 총파업 찬반을 묻는 조합원 투표를 할 예정이다. <무한도전>의 김태호 PD를 비롯한 MBC 예능PD 56명은 지난 21일 총회를 열어 일찌감치 총파업 동참을 결의했다.

 

언론계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왜 이제야 나서느냐”고 그들에게 묻는다. “그동안 어디 있었냐”고 다그치기도 한다. 그러나 MBC를 계속 지켜본 사람은 안다. 지난 5년간 MBC 구성원들은 언론인으로서, 생활인으로서 수없는 싸움을 벌여왔다. 동료들을 떠나보내고, 사측의 온갖 징계를 감수하면서도 그들은 MBC를 지키고 있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이번 기회에 그들이 완전히 돌아오길 간절히 바란다. 나를 비롯한 경쟁자들이 MBC 메인뉴스를 기다리며 긴장하던 시절을 재연해줬으면 좋겠다. 비록 내 저녁 생활이 더 피곤해질지언정 그들이 다시 마이크를 잡은 모습을 보고 싶다. 이참에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기자들에게도 하지 못했던 말을 지면에 담아 전한다. ‘힘내라 마봉춘, 돌아와라 MBC.’

 

홍진수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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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디어로그 칸미디어